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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 percent May 14. 2024

나 사실 회식 좋아했네

피 튀기는 외상외과 인턴 -2

특별히 회식을 꺼리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지만,

교수님들과 함께하는 회식은 언제나 기합이 잔뜩 들어가기 마련이다.


교수님 잔이 비어있으면 채워드리고, 타이밍을 봐서 짠을 치고 뭐 이런 구시대적인 풍습 같은 것들이

안타깝게도 병원에는 찐하게 남아있어서

인턴의 회식이란 마냥 웃고 떠들며 고기를 집어먹을 수는 없는 그런 환경이다.

막내라면 당연히 회식 때 그 정도는 신경써야한다,

싶은 건 아무래도 내가 이 문화에 찌들어버린 탓일까.


오, 하지만 외상외과 회식은

내가 가본 그 어떤 회식보다 즐거웠다.

그날따라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인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보그것도 큰 이유 중 하나일 것 같기는 하다만.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것은 교수님들의 성향 때문인 것으로

물론 앞서 말한 손을 잔에 갔다댄다던가

잔을 드린다던가 하는 구시대적 유물은 이곳에도 남아있지만

유독 교수님들과 교류가 많은 과이기에

그냥 아는 선배들과 술자리를 온 느낌이었다.


아침마다 70명의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고 교수님께 직접 브리핑을 하면서

매일같이 얼굴을 뵙다보니 웬만큼 친한 선배보다도 자주 뵌 셈이다.

그리고 새벽에 T star (중증외상환자) 콜이 울리면 교수님께 바로 노티를 드려야하다보니

거리감마저 많이 줄어든 상태.

처음에는 새벽에 문자를 드리는 것도 죄송했지만 이제는 급한 환자인 것 같으면 곧바로 전화를 드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자리가 무르익어갈수록,

2차로 3차로 갈수록 사람들은 흐느적거리고,

3차는 노래방이라는 언뜻 들으면 경악할만한 술자리에도

교수님께서 마이크 2개를 들고 아이유 노래를 열창하는 모습이 그저 너무 재밌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일하는 교수님들과 외상전담간호사 선생님들은

지금 이 순간을 최대로 즐기시려는 모습이었다.


화끈했던 회식이 끝나갈 무렵, 교수님께서는 내 눈을 보며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너의 눈에는 불꽃이 있어."

"누차 말하지만,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메이저를 하라는 말씀이시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상외과에 오라는 말씀이시다.

남들이 정말 힘들었다는 이 과가 회식까지도 너무나 재밌었던 것을 보면

아무래도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나..  


내 솔잎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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