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동생에게 - 2
수능이라는 전쟁
안녕. 이 편지를 두 번이나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두 번째 편지다.
그리고 첫 번째로는 낯부끄러워서, 두 번째로는 네가 내 사랑을 너무 부담스러워할까 봐서 전하지 못할 편지다.
이 편지가 두 번째라는 것은, 네가 재수를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바겠다. 글쎄, 너는 ‘재수생’이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여기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말하건대 나는 그 타이틀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내 주위엔 재수생뿐만 아니라 삼수생, 그리고 아예 대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입학을 한 후배 형님들도 있다. 그러니 한편으론 내겐 N수생이라는 타이틀이 멀지만은 않은 셈이다. 너도 알겠지만 너 같은 사람 많다. 혹여, 재수생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럽다면, 그럴 필요 없다. 꼭 한 번에 대학을 갔다고 해서 자랑스러워할 것도 못 되는 것처럼, 한 번에 대학을 못 갔다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나는 오히려 네가 재수를 했기에 더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그 전쟁을 또 치렀으니 말이다.
글쎄, 어쩌면 내가 너를 너무 어리게만 보는지도 모르겠다. 지난번 편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분명 내 기억 속엔 아주 조그맣던 네가 각인이 되어있는지, 너를 너무 어리게, 유약하게, 약하게만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오늘 너를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동안 네 앞에서 일부러 눈물을 숨기거나 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유독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여러 이유들을 생각해 봤지만,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진 않았다. 그냥, 여러 감정들이 북받쳐 올랐던 것 같다. 네가 대견한 것도 있고, 나 또한 속이 후련한 것도 있고 등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눈으로 새어 나왔나 보다.
그러다 문득, 내가 너를 전쟁터에 보냈다고 생각해서 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기인 하지만 사실 이 말은 꽤나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이유였다.
너도 알다시피, 네가 수능을 뚜드려 패줄 수 있을 만큼의 공부적 피지컬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는 것은 분명 네가 문제에 지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내 맘속에서 아주 유약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네가 문제 몇 개에 뚜들겨 맞는 게, 전쟁이 아니라면 뭘까? 네가 문제로부터 뚜들겨 맞아 패잔병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니 눈물이 났던 것일 테다. 당연히 몇 개는 틀릴 테니까, 문제에 뚜들겨 맞아 멍투성이 되지는 않을까, 피떡이 되어 다음 문제를 쳐다볼 엄두도 못 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모습을 상상하니 아직 시험이 진행 중인 이 시간에도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마침 방금 내 스마트워치에 알람이 울렸다. 탐구 영역의 시작을 알리는 알람이다.
오늘 아침, 괜스레 너와 하루를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능 시간표에 맞춰서 알람을 설정했다. 알람을 설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숱하게 월요일마다 모의고사를 볼 때 수능 시간표에 맞춰 시간을 맞췄기 때문에 아주 수월하게 알람을 설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교시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알람을 설정했는데, 나는 교시가 시작하는 알람이 울릴 때면 속으로 너를 응원했고, 교시가 끝나는 알람이 울리면, 속으로 너를 다독였다. 그러면서도 사실 나는 계속해서 무서움이 들었다. 내 동생이 수능에 많이 뚜들겨 맞은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웃긴 이야기지만, 내가 수능을 보던 해에도 나는 이만큼이나 수능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나 수능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포털사이트에, 기타 커뮤니티에 검색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튼, 그렇게 검색을 하다 보니 마침 어제 내가 너를 위해 준비했던, 이른바 ‘찍기 tip’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너의 부탁으로 통계적으로 봤을 때, 무제 유형별로 가장 많이 나왔던 답을 데이터화 했고 그를 통해 ‘모를 경우 n번으로 찍어라!’라고 말했는데, 그게 아주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비문학 3점짜리 문제는 4번으로 찍는 것이 유리하겠다고, 수리영역 ‘ㄱㄴㄷ’ 문제는 ‘ㄱㄷ’가 유리하겠다고 정리하여 일러줬는데, 정답은 그게 아니었다.
이 사실이 정말 내 가슴을 사무치게 아프게 한다. 네가 괜히 나 때문에 흔들렸을까 봐, ‘ㄱ’이 정답인데, 이상하게 ‘ㄱㄴㄷ’가 아닐까 싶어서 계속해서 시간을 쓰게 만든 건 아닐까. 그런 심리적 요인을 내가 제공한 것만 같아서 나는 정말 너무 아프다.
문득 그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마 인터넷 밈 왕을 자처하는 수험생인 너는 이 이야기를 잘 알 것이다. 한 사람이 수능날 아침에 아침밥을 먹는데, 그 사람의 어머니가 미역국을 해줬단다. 그래서 그 수험생이 시험 못 보라고 기도라도 하는 거냐며 어머니께 발끈했는데, 그때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네가 오늘 시험을 못 보면, 오늘 미역국을 끓여준 내 탓을 하기를 바라서 그랬다’라고 말했다는 그 오그라드는 그 이야기 말이다.
그래 나도 지금 차라리 그런 마음이다. 차라리 오늘 수능을 망친다면,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내 탓을 해라. 내가 이상한 답으로 찍으라고 이야기했으니, 차라리 나를 원망해라.
네 잘못은 하나도 없다.
나는 어제 네가 방에 들어갔을 때, 네 공부의 흔적들에 우연히 시건이 갔다. 거기엔 난잡하게 흩어져있는 모의고사 시험지들이 있었고, 그리고 여러 색깔의 문제집들 이 책상 위에 흐트러져 있었다. 나는 단언컨대 저만큼이나 많은 문제집과 모의고사 시험지를 쌓아놓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너는 정말 최선을 다한 것이다. 네 잘못은 정말 단 하나도 없다. 그냥 전부 다 내 탓이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래, 이건 어쩌면 너보다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는 내게 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수능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너를 전쟁터에 보냈다는 둥, 내 탓을 하라는 둥, 마치 수능이 인생의 전부인 것 마냥 이야기하긴 했다만, 사실 너도 나도 잘 알고 있다. 수능은 절대로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수능을 잘 보더라도, 못 보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지난밤 우스개로 네게 말했지만 수능을 잘 봐도 망한 인생인 것이고, 수능을 못 봐도 망한 인생인 것이다. 물론 그건 농담이었지만, 아무튼 수능을 잘 보건 못 보건 똑같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는 사람이라고 다 수능을 잘 봤을까? 사회적으로 실패한 인생을 살아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사람이라고 다 수능을 못 봤을까? 게다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그리고 실패한 사람을 나누는 기준도 불분명하기 까지 하다. 그러니 수능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수능은 도대체 왜 보는 걸까 하는 물음이 네게 남을 것이다.
그 답으로 나는 지난번에 수능을 백신과 비교했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대한민국 학생들이, 병균이 가득한 사회로 나오기 전에 나라에서 맞춰주는 백신. 어른들이 준비한 조금은 따끔한 고통. 뭐 이런 식으로 비유를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생각에 변화는 없다. 그런데 그냥 한 가지 생각이 더 들어서 이야기하자면, 이번엔 수능을 계단에 비유하고 싶다. 수능을 잘 보면 그 계단의 정 가운데를, 균형에 맞춰서 아주 잘 밟으며 올라가는 것일 테다. 그리고 반대로 수능을 잘 못 보면 정가운데를 밟지 못한 채 올라가는 것이 될 거다. 그런데, 생각해봐라. 계단을 오를 때, 발이 계단에 다 닿으며 오를 수도 있겠지만, 발 끝으로 계단의 끝부분만 밟으며 오를 수도 있다.
수능은 그냥, 그런 계단의 한 칸이다.
어떻게 오르건 간에 한 칸을 올라서는 건 똑같다.
게다가 수능은 그저 인생이라는 계단의 한 칸일 뿐이다. 앞으로도 너는 수많은 계단을 만날 것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계단을 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너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칸에 서있는, 쉽게 말해 ‘틀린 사람’ 말고, 같은 칸에 서있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얘기하고 보니, 이전의 비유가 더 참신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는 건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
그래,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것처럼 수능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그러니 오늘의 결과로 너무 좌절하지 말아라.
그런데 오늘의 결과로 자만할 수 있겠다면, 그래 조금은 자만해라. 그건 괜찮다.
사랑한다.
내년에 이런 편지를 또 쓰고 싶지 않다.
아니 네가 하겠다면 또 뭐 말릴 수 없겠다마는 이제 쓸만한 비유가 없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라도 이런 편지를 또 쓰지 않게끔 해줘라.
+ 결국 넌 집으로 돌아와 ‘이 정도면 선방했다.’라고 우리에게 알렸다. 그래 그 의미인 즉, 아쉬움은 남지만 만족스럽다는 이야기겠다.
나는 네게 고득점을 바란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는 그거면 됐다.
너의 만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