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우리를 작아지게 하는 곳으로 떠나십시오.
자취생인 제가 이직을 준비할 무렵, 공부에 집중하고 싶거든 집을 벗어나라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집이란 공간에는 자잘한 일감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서, 무언가에 몰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겁니다. 듣고 보니 그럴싸한 말이었어요. 집에 앉아있다가도 잠시 몸을 틀면 빨랫감이 눈에 들어오고, 아침 식사 후 그대로 싱크대에 놓아둔 그릇들이 보이고, 잠시 물을 마시러 문을 열면 냉장고엔 유통기한이 오늘내일인 각종 재료들이 넘쳐납니다. 그렇게, 공부는 잠시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고, 우리는 당장 해결해야 할 것 같은 일부터 시작합니다. 이런 일감은 매일같이 발생하고, 공부는 매번 두 번째, 세 번째가 되다가 우리는 시기를 놓쳐버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일단 새로운 무언가에 몰입하고 싶다면, 현실의 고락에서 멀리 떨어져야 합니다.
몇 년 전 보라카이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습니다. 친한 언니들과 함께였지만, 우리는 때로 각자의 시간을 즐기곤 했어요. 점심을 먹고 나른한 오후에 숙소 근처의 해변으로 느긋하게 걸어갔습니다. 사람이 별로 없는 해변가 구석, 야자나무 아래에 혼자 자리를 잡고 모래사장 위에 대충 수건을 깔고 엉덩이를 붙였어요. 멀리서 느껴지는 복작거리는 사람들의 소리는 ASMR처럼 들려오고 파도소리는 해변 전체를 풍덩거리며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햇볕은 아직 따사로웠지만 저 멀리 잔뜩 위세를 떠는 구름 한 뭉텅이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게 보였어요. 조금 이따 비가 올 거라는 것을 알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나는 쉬고 있고, 지금 편안하고, 비 좀 맞는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어요. 비가 와도 넓은 백사장은 여전히 그대로, 더 넓은 바다도 여전히 그대로일 것입니다. 나는 문득 눕고 싶어 졌어요. 그래서 모래알들 사이로 몸을 푹 담갔습니다. 맨살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알알이 모래들은 몸을 덥히고, 동시에 눈 앞에는 야자수 이파리 사이로 끝없는 하늘이 펼쳐졌어요. 그 순간, 모순되게도 내가 떠나온 과거 나의 일터, 병원이 생각났습니다. 비교적 최근임에도 불구하고 그 과거는 아주 아득하게 느껴졌어요. 하늘은 우주의 반영이고, 광활한 우주 안에서 몇 년의 시간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누군가는 현실 도피에 불과하다며 비난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퇴사 후 몇 개월에 걸친 긴 여행 끝에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이런 여행을 미리 했으면 좋았을 법했다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저는 퇴사 후 여행만을 꿈꾸며 작은 현실 속에 매몰되어 아등바등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이었거든요.
병원에서 퇴사를 결심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퇴사를 고민하는 이유는 대부분 똑같습니다. 알고 보니 내 능력이 보잘것없어서 이직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이직을 했는데 그곳이 여기보다 직원 복지나 조직 문화가 별로라면? 다른 일을 해봤는데 적성에 안 맞으면? 그럴지도 모르고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시간이 되면 출근하고, 퇴근하는 길에 잠깐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다시 출근 시간이 됩니다. 시간은 그렇게 속절없이 흘러가기만 하고 우리는 지칩니다. 지친 사람은 쉽게 생각을 거두곤 합니다. 고민하기를 미루고, 답은 나오지 않은 채로 하염없이 떠나는 시간 속에,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면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제야 사람은 고민을 끝내고 답을 내립니다. 선택지가 하나밖에 남아있지 않거든요. 그렇게 현실에 매몰되어 살아가거나 혹은, 쿵 하고 바닥으로 추락한 화분의 파편들처럼 현실로부터 억지로 분리됩니다. 하고 싶은 이직을 포기하거나,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채로 아주 지친 상태에서 퇴사하는 겁니다.
다만 병원에 남는 삶이던지 떠나는 삶이던지 후회하지 않으려면 당신이 직접 고심하여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결정을 내리기에 병원이나 집은 확실히 좋은 공간이 아닙니다. 고민에 파고드는 것을 방해하는 일감들이 공간 사이에 촘촘히 녹아있거든요. 선임들은 매서운 눈초리로 일하고 있고,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한껏 긴장합니다. 모니터가 울리면 하던 생각은 전부 가루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시간마다 할 일이 넘쳐나니 나에 대한 생각은 병원에서 사치입니다. 만일 일을 다 끝내고 시간이 남아있다 해도 다를 것은 없습니다. 퇴근길 높은 층수에서 내려오는 병원의 번쩍거리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당신은 이 공간이 사뭇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유니폼을 입고 있고, 평범하고 싶은 본능에 생각을 맡겨버립니다. 생각의 모양과 크기는 변화를 멈춰버리고 맙니다. 집이나 기숙사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신규 간호사 시절부터 우리는 집에서도 병원 생각에 사로잡히곤 했으니까요. 오래된 습관에 절여진 뇌는 딱 그 정도의 생각에 머물고, 우리는 판단을 미룹니다. '역시 아직은 잘 모르겠어.'
바다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바닷물 속으로 첨벙거리며 들어갈 것이 아니라 먼 백사장, 그중에서도 높은 곳에 올라가 조망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닷물 속에서 눈을 뜨고 두리번거리면, 바다와 바싹 접하고 있을지언정 전체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는 알 수가 없거든요. 몰입할수록 대상과 가까워질지언정 당신의 시야는 좁아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한 번쯤 대상과 멀리 떨어져 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보라카이의 그 해변 한 자락에서, 잠시 감정적인 것들은 물길에 내려놓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과거의 세계를 유영해봅니다. 더 이상 우리를 옥죄던, 고통스럽게 하는 모든 존재는 사라집니다. 앞으로 다시 돌아가는 세계에는 나타날지 모르지만, 지금은 잠시 잊기로 합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살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러나저러나 태양은 작열하고 파도는 치니까요. 그러면 옅게 남아있던 감정마저 모두 파도에 쓸려가고 몸은 한결 가벼워지며, 다시금 내면의 생명력이 마음속 깊은 밑바닥부터 태동하기 시작합니다. 생명력은 당신의 척추부터 손끝 발끝까지 모자람 없는 에너지를 불어넣고, 더 이상 과거의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휴식이란 그만큼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꼭 보라카이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넓고 크고 높고 웅장하거나 여하튼 일단 우리를 작게 만드는 곳으로 떠나십시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높은 건물 없이 시야가 탁 트인 공간에서 넉넉한 시간을 갖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우리의 자그마한 몸뚱이는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자연스레 머리를 수그리게 됩니다. 찬란한 태양과 널따란 바다 앞에 인간은 짧은 수명의 작은 짐승에 불과하며 우리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체감하게 됩니다. 언젠가 내 전부처럼 느껴지던 병원의 조직이, 나의 일터가, 사실 이 지구의, 아니 이 원대한 우주의 십억 분의 일도 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요. 모두의 무게가 동등해지는 그 순간 우리는 올곧이 자신의 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생각하고, 인생의 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바다 한가운데 떠오르는 햇살처럼 슬며시 얼굴을 내밉니다. 현실의 소중함을 재차 깨달을지도 모르고, 반대로 고통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결론은 잔존일 수도 있고, 퇴사일 수도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는다면 어느 쪽이던지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이것은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여 얻은 인생의 발견일 테니까요.
어찌 되었든 간에 당신을 위한 결정을 하길 바랍니다. 다만 당신의 짧지 않은 인생의 길이감을 충분히 느끼고 현명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휴식을 하고, 여행을 떠나세요. 간호사가 한 번의 휴가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치를 봐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 한 번의 휴가가 앞으로는 달라질 미래를 선사할 수도 있거든요.
무더운 날 보라카이의 그 해변에서 나는 결국 '간호'라는 기존의 가치가 갖는 묵직한 무게감을 느낀 동시에, 다니던 병원은 내 인생의 중간 정착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짜 목적지에 당도하기 전에 잠시 들르는, 기억하지 못할 이름들의 수많은 중간 정차역 말입니다. 당신의 기차가 어디를 향하여 쉬지 않고 빠르게 달리고 있는지, 우리는 결국 어디에 다다를 것인지, 그 질문 사이에 우리 삶의 목적과 시간이 뒤엉켜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