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입장과 동시에 출구를 찾는 아이러니
다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정해진 사직서 양식이 있었다. 그 양식을 처음 접하고 나는 헛헛한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퇴사 사유'란에는 객관식으로 선택 가능한 항목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에는 '동료 관계'도 있었고, 세부 선택지로는 '부서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직서는 부서장을 통해 그 위 직급의 사람에게 전달될 예정이었다. 문득 나보다 먼저 그만둔 후배 간호사가 생각났다. 그는 부서장과 작은 것부터 큰 사건까지 다양하게 트러블이 많았다. 그렇다면 그 친구는 퇴사 사유에 '동료관계-부서장'이라고 적었을까? 그 답은 누구나 유추 가능할 것이다. 병원은, 퇴사자가 직무를 포기하는 '진짜' 이유에는 관심이 없는 게 분명했다.
내가 다닌 병원은 퇴사 절차가 복잡했다. 부서장과 면담하여 퇴사를 확정하고 사직서를 작성한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그 위의 직급인 임원과 한 차례 면담한 후 행정관리 임원과 일정을 맞춰 또 면담한다. 마지막으로 인사팀 직원과 면담을 진행하면 모든 절차가 끝이 난다. 그렇다. 약 한 달간 최소 네 번의 면담을 해야 하는 것이다. 내 면담은 평균적으로 30분~1시간 정도 걸렸다. 취업준비생 시절 입사 면접은 5명이 30분을 나눠 썼으며 2번에 불과했다. 시험까지 3번이라고 쳐도 퇴사 면담보다는 적다.
퇴사를 2주가량 남겨놓고 임원진 면담을 진행할 때였다. 안부 인사나 사직서에 관한 평범한 이야기가 잠시 오가고, 임원은 이내 부서장이나 병동에는 별 문제가 없는지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역시 나오지 않았다. 면담하는 그 임원의 낯이 매우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서장이 있는 시간에 병동을 자주 방문하곤 했으며 부서장과 그의 사적 친밀함은 병원 내에서 유명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부서장과의 경험으로, 면담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깨달은 바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남은 2주를 편안하게 보내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면담이 끝날 때까지, 말을 최대한 아꼈다. 나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나는 안전에 대한 욕망이 매우 크다. 누구는 안 그렇겠냐만은. 차를 탈 때도 반드시 안전벨트를 가장 먼저 확인하고, 애초에 위험성이 높아 보이는 놀이기구는 타지 않으며, 비행기를 타면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비상탈출방법을 경청하고, 영화관에 가면 <영화 시작 전 비상 상황 시 탈출구 안내>에 귀 기울인다. 입장하기 전부터 비상 대피로는 눈에 꼼꼼히 담아둔다. 그리고 어떤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면 꼭 '교활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는 말을 곱씹곤 한다. 아무래도 삶에 대한 욕망이 강한 모양이다. 병원에서도 똑같다. 어떤 행동을 할 때, 발생 가능한 미래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며 행동한다. 그런데 문제는, 발생할 만한 사건을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퇴사 과정을 이야기하며 일관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있다. 조직 문화와 시스템이다. 우리는 타락한 개인을 보며 쉽게 비난하지만, 조직과 시스템의 문제에 대해서는 왜인지 시큰둥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관리자나 상사가 해고당하거나 중징계를 받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가끔 중징계를 받아야 마땅할 것 같은 사건이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간호사 커뮤니티에서 시끌벅적 회자되기도 한다. 근데 내가 병원 사회에서 그러한 사건의 권선징악적 결말을 경험한 적은, 내 기억에는 단 한 번도 없다.
우리 병원은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해, 괴롭힘과 관련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신고를 하는 제도가 있었다. 이마저 없는 병원도 많았으니, 그나마 선진 사회였다. 다만 짧지 않은 근무기간 동안 신고가 들어와 어떤 처리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신고가 없었거나, 신고가 있어서 처리를 했지만 비밀리에 했거나. 어느 쪽이거나 이 제도 자체에 큰 결함이 있다는 근거가 된다.
1. 신고가 없다.
내가 다닌 병원은 간호사만 수천 명에 달하는 대형병원이었으므로, 괴롭힘이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괴롭힘을 주된 이유로 퇴사를 고민하는 경우를 직접 목격한 적도 있다. 다만 그들이 그 사실을 병원 측에 알렸는지는 의문이다. 개인이 신고를 안 한다면, 수동적인 개인을 탓하기 전에 조직의 시스템을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신고 제도가 시작되고 첫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하자. 묵인되거나 별반 효과를 보지 못했거나, 혹은 더 나아가 신고자가 오히려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그 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사례를 기준으로 본인 행동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다. 신고하면 나에게 불이익이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실제로 이런 경험은 개인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예시는 가정이지만 꽤 그럴싸하다.
병원에서는 익명으로 주기적인 부서장 평가를 시행한다. 첫 평가를 앞두고 솔직하게 하겠다는 나의 말에 선배 간호사가 이런 조언을 해준 적이 있다. 근데 익명이라고 해도 다 알아. 이름만 안 쓸 뿐이지 네 정보 기입하고 진행하잖아. 나는 고민 끝에 '합리적'으로 거짓을 선택하기로 했다.
신고가 없거나 그 수가 현저하게 적다면 병원 측에서는 본인의 '익명' 시스템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 말뿐인 익명이지는 않은가? 안전한 퇴로 하나 없이 강자에게 덤빌만한 사람을 기대하기보다는, 약자의 보호체계를 단단하게 구축해야 한다.
2. 처리를 했는데 비밀리에 했다.
내가 병원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비밀리에 조용히 진행하는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이었다. 조직 내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것을 꺼내어 햇볕에 비추기보다는 빠르게 닦아 다시금 그늘 안으로 넣어두었다. 내가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다들 쉬쉬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만일 어떤 부서장이 부하 직원을 괴롭혀서 징계를 받아 타 부서로 발령받았다고 하자. 그렇다면 새로 그 자리를 맡게 된 신임 부서장이 더 이상 괴롭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운에 맡겨야 하는 것일까? 실제로 대부분이 운에 맡긴다. 확신을 주기 위해 시스템을 돌아볼 생각은 잘 안 한다. 그래서 많은 간호사들이 부서장이나 여타 관리자의 잘못된 일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친다. 참자. 바뀌었다가 더 이상한 사람이 올지도 모르잖아. 어떤 사람은 이런 개인을 비난할지도 모르지만, 이들의 선택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고발당한 부서장은 타 부서의 '같은 직급'으로 발령받고, 그다음 후임으로 들어온 신임 부서장도 결국 똑같은 행태를 보인 경우가 그들의 기억에 차곡차곡 쌓여있을지도 모른다.
처벌을 '잘' 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타락한 개인을 보복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수의 계도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런 행위가 처벌받을 만한 큰 문제라는 것을 모두에게 알려서 자정작용을 유도해야 한다. 원인을 묻어두고 조용히 부서 이동만 할 게 아니라, 그 전후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원인과 결과를 모두에게 공개해야 한다.
경험상,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들은 대부분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도 한때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원래 다 그런 거야. 나때도 그랬어.'라는 말속에서 그들의 행동은 쉽게 합리화된다. 원인을 감추고 쉬쉬하면, 그런 사람들은 징계를 받게 된 게 '잘못'때문이 아니라 '운이 나빴기'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잘못을 고칠 생각보다 몸을 사릴 궁리를 한다. 뭐든 일단 문제가 되면, 꺼내서 모두에게 보이고 공개적으로 논해야 한다. 무엇이 왜 잘못인지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개인 탓을 백 번 하느니, 한 번의 시스템 정비가 효과적이다.
만약 임원이 부서장에게 면담 내용을 전달하고, 그로 인해 내게 부당한 영향이 미치면 나는 남은 2주의 시간 동안 어떻게 병원을 다녀야 할까? 사유가 '동료관계-부서장'이라고 쓰여있는 사직서를 부서장이 읽고 부적절한 행동을 취하면 나는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을까? 나는 그저 그 사람들이 올바르게 행동할 거라는 믿음 아래 용기를 내야 하는 것일까? 평범한 개인은 그런 고민 속에서 합리적이지만 정의롭지 못한 선택을 내린다. 본인의 명운을 걸고 곧 떠날 조직의 밝은 미래를 위해 진심 어린 조언을 내놓고 싶은 '대단한' 개인은 별로 없다.
잘 생각해보면 애초에 비판 한 마디에 명운을 거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그런데 그게 현실이다. 비판 한 번 했다가 비판의 정당성과는 상관없이 개인의 처지가 나락에 떨어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그런 경험의 축적은 우리의 용기를 쉽게 꺾어버린다. 용기 내지 않고 입을 다무는 개인을 탓하기 전에, 안전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내 안전이 확실할 때 사람은 용기를 발휘한다. 건설적인 조언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조직이라면, 내부의 시스템부터 샅샅이 뜯어보라. 그곳에 해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