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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un 23. 2023

제 몸으로 여우를 막은 어미닭

어미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5마리 병아리들

"지금 어디예요?, 빨리 이쪽으로 와요, 큰일 났어, 닭들이 여우한테 잡아먹혔어!!"


막 코스코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십여분은 넘게 걸릴 거리였다.

여우라고?, 새벽이나 늦은 저녁, 아니 가끔 벌건 대낮에도 간혹 보이던 그 녀석일까?

몸집이라고 해야 중간크기의 강아지만 한 것이 다 닳은 빗자루 몽둥이 같은 꼬리로 겨우 여우임을 알 수 있었던 녀석이 그렇게 간 큰 짓을 했단말인가?

지금은 햇살 따가운 늦은 오후시간 아닌가?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어미닭 주변을 종종거리던 병아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검정닭들이 알을 품고 싶어 했다. ( 검은색 닭들의 특별한 모성 호르몬이란....)

아침마다 품고 있는 무정란들 빼내기를 반복하다가 녀석들의 간절함에 못 이겨 기어이 유정란을 구해 넣어주었다. 사실 알을 품고 있는 두마리의 검정닭들은 엄마와 딸이다. 검순이로 이름 붙여진 어미닭과 검순이가 품어 태어난 딸은 나란히 앉아 정성스레 알들을 품었다.

그렇게해서 태어난 병아리들은 모두 5마리. 

유정란을 얻어오던 농장의 마당에서 보았던 닭들처럼 검정과 회색, 갈색이 어우러진 털색을 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검순이와 딸은 5마리의 병아리들을 함께 돌보았다. 이를테면 엄마와 딸의 공동육아랄까..

먹이활동을 하도록 어미닭들과 병아리들을 뒷마당에 풀어놓으면 두 마리의 어미닭들은 다섯 마리의 병아리들을 함께 몰고 다니며 지렁이를 잡아주고는 했다. 한 가족이라는 유대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어떤 병아리가 내 자식인지 헷갈려서 그러는 것인지는 몰라도 두 마리의 어미닭들이 함께 몰고 다니며 병아리들을 거두는 모습은 보기에도 흐믓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며칠 한가롭게 뒷마당을 누비던 닭 가족들에게 예상되던 위기가 닥쳤다.

시력이 좋기로 유명한 지역 텃새인 검정 독수리가 이번에도 닭들을 공격한 것이다.

뒷마당에서 들려오는 퍼드덕 소리와 닭들의 비명에 놀라 뛰어나가보니 덩치 작은 검정 독수리를 향해 검정닭 한 마리가 닭장 지붕 위까지 날아오르며 맞짱을 뜨고 있었다. 

어설프게 병아리들을 노리던 검정 독수리는 죽기살기로 덤비는 어미닭의 기세에 눌려 황급히 날아 도망가버렸다. 올해 처음 어미가 된 젊은 검정닭의 기세는 내가 보기에도 놀라웠고 믿음직스러웠다.

그렇게 뒷마당의 평화가 유지되는가 싶었다. 

젊은 어미닭의 기세라면 까짓 덩치 작은 독수리나 까마귀 따위야 걱정할 것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모두 미처 여우는 생각하지 못했다.

라쿤이야 야행성이니 저녁이면 닭들을 닭장 안으로 들여보내고 문단속을 하면 걱정할 것이 없었다.

간혹 보이던 여우도 설마 울타리까지 쳐진 우리 집 뒷마당을 넘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날 햇빛 쨍쨍한 늦은 오후에 벌어진 여우의 습격은 가슴 벌렁거리도록 참담했다.

갈색 닭 한 마리가 목이 부러진 채 숨 가쁘게 헐떡이고 있었고 사방엔 사투를 벌이느라 뽑힌 닭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흰닭 한마리는 얼마나 놀랬는지 제법 높은 나무 위에까지 올라가 있었고 나머지 닭들과 병아리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우리가 헐레벌떡 뛰어들어가자 그제서야 닭들은 숨어있던 풀숲에서 나와 우리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늘 먹이를 주는 사람들의 등장에 안심한 기색이었다.

그런데, 어쩌지, 검정 어미 닭 한 마리가 보이질 않았다. 병아리들 곁에는 검정닭 한마리만이 있었다.

남아있는 검정 닭을 유심히 보니 그 녀석은 검순이였다. 

아뿔싸!!!, 여우의 먹이가 된 어미닭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어미가 되었던 검순이의 딸이었다.


여우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아마도 젊은 어미닭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용감하게 나섰던가보다.

하지만 상대는 노련한 여우 아닌가?!... 

내 어깨 높이의 나무 울타리를 정말 여우같이 훌쩍 넘어왔던 여우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던가보다. 

창고 앞 후미진 울타리 근처에는 두어 개의 푸른빛 도는 검은 깃털만이 남아있었다.

젊은 어미 닭은 온 몸으로 막아서다 푸드덕거리며 자신을 방어할 틈도 없이 공격을 당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이, 다섯 마리의 병아리들과 다른 닭들은 울타리 주변의 풀숲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검정 어미 닭을 잃은 뒤로는 불가피하게 병아리들과 닭들을 닭장에 가두어 키우고 있다.

하늘에는 독수리와 까마귀들이, 땅에는 라쿤과 여우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두 마리의 어미들로부터 땅이 주는 맛난 먹이들을 얻어먹던 병아리들은 이젠 사료만 먹고 있다.

안된 마음에 쌀을 조금 가져다가 뿌려주고는 있지만 어미가 쪼아 앞에 던져주던 지렁이만 하겠는가.

어린아이 주먹만 하던 병아리들이 어른 주먹만 하게 자란 것을 기특하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제 몸 던져 어린것들을 지키려 했던 젊은 어미닭이 생각나 마음이 짠해진다.

한낱 짐승일지라도 제 어린것들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여우와 대적했던 그 기개에 숙연해지기까지한다. 그렇게 먹혀버린 어미닭에게서 나는 모든 '어미'들의 삶의 무게를 다시한번 깨닫는다.


그 어미가 지켜낸 다섯 마리의 병아리는 어떻게든 잘 키워볼 생각이다. 

제 목숨 바쳐 지켜낸 어린것들이니 우리라도 그렇게 지켜주어야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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