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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ul 16. 2022

나의 아름다운 정원

소박한 내 꿈이 영그는 곳

독서모임에서 작가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만났다.

작가가 자라면서 마음속에 담았을 '아름다운 정원'이 동구라는 소년을 통해 그려지고 되살아나고 있었다.

인왕산 자락의 가난한 동네에서 너무 차이 나게 잘살던 삼층집의 아름다운 정원, 그곳에서 어린 동구가 잠시 잠깐씩 누리던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는 선홍빛 눈송이 같던 능소화와 아름다운 곤줄박이가 있었다.


"정원은 고요했다.... 숲의 향기만 코끝이 찡하도록 강렬했다. 하늘을 가리도록 무성한 8월의 잎사귀들이 짙푸른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끝이 아물아물하도록 높은 느티나무 꼭대기에서 한점 한점 나리는 능소화는 푸른 화염에 미련 없이 몸을 던지는 선홍빛 눈송이 같았다. 나는 두 팔을 높이 쳐들어 아름다운 정원을 찬미하면서 능소화 꽃 사이에서 이 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 능소화의 찬란한 영혼, 붉은 자줏빛 원피스를 나부끼며 떠나가신 박 선생님 같은 그 황금의 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열 살 동구는 난독증이 있는 아이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새끼야!"로 자신을 부르는 할머니나 침묵과 윽박지름으로 일관하는 아버지 같은 가족들이 자신에게 사랑을 주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병이었다. 그런 동구에게 '박 선생님'이 나타난다.

박 선생님은 비틀즈의 가사처럼 힘든 가족상황으로 위축되어있는 어린 동구에게 지혜의 말을 들려준다.


"그건 말이야, '사랑의 힘'이라는 거야. 엄마가 좋아해서 결혼한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 아버지잖아. 그러니까 아버지가 엄마한테 잘해주시면 엄마는 할머니가 심술을 부려도 훨씬 쉽게 견딜 수가 있을 거야. 아버지가 엄마 편이니까 얼마나 든든하시겠니."


"중요한 건, 동구야, 엄마와 아버지와 할머니의 일은, 어른들의 일이라는 거야. 동구 네가 돕고 싶어도 잘 안 될 수도 있어. 그분들은 당신들의 방식으로 살아오셨기 때문에 동구가 아무리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도 그분들이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일지도 몰라. 또 네가 아버지께 이렇게 해보세요라고 말씀드리면 어린아이가 주제넘게 나선다고 혼이 날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오늘 내가 알려주는 방법은 네 마음속에 잘 묻어두고 이다음에 네가 커서 실천에 옮기면 돼. 일단은 동구가 어른들 마음을 헤아리고, 아버지나 할머니나 엄마에게 늘 힘이 되는 큰아들이 되면 어른들이 정말 기뻐하실 거야."


이런 박 선생님이 10.26, 12.12와 5.18을 관통하며 사라져 버렸다. 동구의 남다름을 이해해주고 지혜를 나누어주던 선생님은 영원히 동구의 마음속, 아름다운 정원에서 흩날리는 능소화와 함께 곤줄박이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가족을 연결해주던 존재, 동생 영주의 죽음이 가져온 엄마의 절망과 정신병원 입원, 할머니와 아버지의 와해 앞에서 힘겨워하던 어린 동구는 꿈속 낯익은 정원에서 박 선생님을 만난다. 그리고 박 선생님은 Mother Mary처럼 words of wisdom을 건넨다.


"누군가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는 그 사람이 왜 저러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봐.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지 않겠니."

"그러면 할머니는? 할머니는 이해가 되니?"

"그래? 그러면 할머니를 이해하기 위한 연구를 해봐야겠구나.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진정한 대책을 세울 수 없는 법이니까. 할머니는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시는 걸까? 엄마뿐만이 아니라 너와 아버지도 할머니 때문에 그렇게 큰 괴로움을 겪고 있는데 말이야."

"그래. 그건 네 말이 맞아. 하지만 할머니는 다른 식구들과 달라. 할머니는 아무런 희망이 없거든."


꿈속의 정원에서 박 선생님의 지혜의 말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동구의 가슴팍엔 황금빛 깃털이 맺히고 주홍빛 능소화가 온몸을 휘감는다. 

엄마 아버지나 자신과는 달리 아무런 '희망'이 없는 할머니에게 희망이 되어주기로 마음먹은 동구는 할머니와 고향으로 내려가 살기로 한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 어린 소년 동구가 가슴에 품었던 피안은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었을 것이다.

그 정원은 힘겨운 현실로부터 동구를 구해주고 미래의 삶을 이끄는 터전이 되어준다.





젊은 시절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일터'였다.

사는 동안 가치있게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던 대로 사람 돕는 직업을 선택한 나는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박봉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었다. 이제 겨우 가꿔나가기 시작한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 삶에 지친 많은 이들을 초대하고 그들과 함께 무성한 잡초를 뽑고 작은 텃밭을 일구곤 했었다. 그러다보면 어떤 때는 여름날의 능소화보다 더 진한 빛깔의 장미를 만나기도하고 향기 진한 백합에 넋을 놓기도 했었다. 어느 여름 그 정원에는 유독 잡풀만 무성한 적도 있었고 또 어느 여름에는 그 잡풀 사이에서 꼼지락거리는 어린것들이 숨쉬는 작은 토끼집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 시절 '나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나는 어리숙하지만 열정 가득한 젊은 정원사였다.


나이 든 지금,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벌과 닭과 꽃과 사람들이 언제든 찾아들 수 있는 우리집 뒷마당이다.

호박넝쿨이 울타리를 타고 올라가고, 딸아이 약혼 기념으로 심은 라일락이 한 뼘쯤 더 자란 꽃밭이 있고 그 위로 새파란 포도송이가 송알송알 맺히고 있는 곳.

무려 3갤런 가까이 꿀을 따서 이웃들에게 달콤함을 나누어줄 수 있게 해 주었던 두 개의 벌통이 있는 곳.

모정을 어쩌지 못하는 검순이가 또다시 품어 깨어난 네 마리의 검정 병아리들이 엄마와 함께 종종거리며 휘젓고 다니는 그곳.

이른 봄엔 한주먹의 딸기와 봄 상추를, 한여름엔 고추와 오이, 깻잎을 내어주는 작은 텃밭이 있는 그곳.



그곳은 이웃들과의 작은 만남이 있는 곳이다.

레지던트 가족과 친지들이 언제든지 찾아와서 그들의 부모와 평화로운 한때를 보낼 수 있는 그곳.

한동안 소원했던 친구들을 불러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곳.

책 읽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날이 저물도록 책 이야기와 나눔을 이야기하는 그곳.

무엇보다 이따금 아이들이 찾아와 뛰어노는 강아지들을 바라보며 평화의 시간을 갖는 그곳.



지금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곳,

벌과 병아리들을 바라보며 생명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놓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오늘도 나는 어미와 함께 풀밭을 종종거리는 병아리들을 보러 어떤 이웃이 찾아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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