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워나가는 수밖에. 나는 영어를, 너는 한국말을.
영어는 미국 이민자인 우리 부부의 고질적 난제이다.
이민 초기엔 언어장애를 극복해보겠다고 클래스도 듣고 열심을 냈었지만 시간과 함께 영어는 그저 내가 갖는 사회적 장애정도로 받아들이며 살게 되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한국사람들과 주로 교류하고, 어지간한 일들은 이메일이나 텍스트로 의사소통하면서 그럭저럭 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점차 미국 사회에 익숙해지면서 똥 배짱만 늘어 "왜 내 영어를 못 알아듣냐??"라고 영어가 유창한(?) 미국인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지경까지 이르고 말았다. (살아나가기 위해 선택한 방어기제지만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ㅠㅠㅠ)
그렇게 애써 무시하던 영어 의사소통의 문제가 최근 들어 다시 내 머리를 아프게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못 하거나 서툰 연인들을 만나면서 다시 내 영어문제가 골칫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 가족여행 중 어느 날 저녁이었다.
즐거운 하루를 보낸 우리는 다시금 풍성하게 차려진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있었다.
처음 하게 된 가족 여행인 데다 기분 좋게 마신 와인으로 우리 부부는 말이 많아지고 있었다.
여행과 술로 한껏 유쾌해진 우리들의 주제는 어느덧 올 가을에 있을 딸의 결혼식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전통혼례를 했던 우리 탓인지 아니면 한국인이 아닌 사람과의 결혼 탓인지 딸아이는 부득부득 결혼식 중 폐백을 하겠다고 우겼다.
한국인끼리의 결혼이라면 폐백이 무엇인지, 그 절차는 어떤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이지만 대만인인 사위와 이민 3세대인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폐백이란 이해하기 힘든 너무나 한국적인 풍습 일터였다.
그럴 땐 사진자료만 한 것이 어디 또 있겠나.
남편과 나는 전화기를 꺼내 들고 구글 포토에 저장된 우리의 결혼식 사진을 불러내 전통 한국식 결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한국 전통혼례의 상징과 의미가 좀 심오한가?!
우리의 영어는 그 심오함을 실어 나르기엔 역부족이었다.
방금 전까지 어설프게나마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던 우리 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영어를 포기하고 어느 순간부터 한국말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부부간의 사랑을 상징하는 기러기를 들고 신랑이 신부 있는 곳으로 와서 초례상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서로에게 술잔을 권하고 절을 하고.... 성혼을 알리고.... 이게 폐백인데 폐백은 시댁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고... 자손 번성하라고 밤 대추를 손싸개에 던져주고... 주절주절..."
어찌 내 수준의 영어로 이런 고급진 한국 문화의 디테일을 전할 수 있으랴..
그렇게 영어를 포기한 순간부터 시작된 우리 부부의 유창한 한국말은 속사포로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너무 주책이다 싶은 자각이 들 즈음, 나는 딸이 우리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사위에게 동시통역을 하고 있는 것을, 그리고 사위는 그런 딸을 바라본 채 우리의 말을 듣고 있음을 느꼈다.
동시에 그들 옆에 앉은 아들의 표정이 점점 싸해져가고 있음을 눈치채고 말았다.
주섬주섬 쏟아놓은 말들을 주어 담으며 식사를 마치자 아들은 끝내 누나에게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엄마 아빠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J는 누나를 쳐다보고 있잖아. 그것은 대화의 기본이 아니지. 나는 J가 그럴 때마다 이해가 안 돼.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도 지금 말하고 있는 분들을 쳐다보면서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J가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이해하게 도와줘야 하잖냐."
이번에는 동생의 말에 누나가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그렇게 피차일반 감정이 상한 아이들은 우리들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대화를 계속했고 나중에는 불편해하는 우리 눈을 피해 뒷마당으로 나가 대화를 이어갔다.
"그저 둘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어야겠지. 둘 다 성인이니 설마 막장을 찍진 않을 거야."싶으면서도 두 아이의 '위태로운 대화'를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쓸데없이 떠들어댔던 우리의 주책스러움과 부족한 영어 소통 능력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한참 동안 둘은 영어가 서툰 우리 부부와의 영어 대화에 대해서, 한국말을 못 하는 J의 대화 참여방식에 대해서, 각자의 성격과 생각의 차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중 누나의 말 한마디가 아들의 고집스러운 문제제기를 누그러뜨렸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J네 집에 갔을 때 두 분 부모님이 자기들끼리 중국말로 무슨 말을 하면 그냥 내가 기분이 나빠져. 분명히 내 험담을 하고 있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나를 불편하게 해. 내가 엄마 아빠 말을 동시통역하는 것은 J가 나처럼 그렇게 느끼지 않게 하고 싶어서야. 그리고 나는 중국말을 배우고야 말겠어!"
딸과 아들의 대화를 전해 들으며 나는 민망함과 미안함에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사위가 우리를 쳐다보지 못하고 통역하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나, 그런 사위의 태도를 못마땅해하는 아들의 마음이나, 한국말을 못 알아듣고 혹여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마음 써야 하는 딸의 마음이나 오직 한 가지, 우리 부부의 부족한 영어 능력 탓이라는 생각에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다시 영어를 생활화해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최소한 한국말을 못 하는 식구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브로큰일지라도 영어로만 대화하기로 했다.
결국 언어란 사용해야 내 것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어쩌면 한국말 못 하는 사위나 며느리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태어날 손주들에게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은 내가 반드시 넘어야 할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들의 생각이 나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우리들과의 대화에 영어를 좀 더 많이 사용해주시겠다는 것은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나중에 내 아이들에게는 한국말로 해줘요. 그래야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배우게 되거든요."
"엥??, 그,, 그래. 알았어..( 우리들 보고 이중 언어자로서의 자질을 갖춰달라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구나ㅠ")
내 앞에 놓인 것은 내 영어실력이라기보다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민 1세대의 가족 내 언어 통합이었다.
아이들의 '위험한 대화'는 이민자 가족의 언어 통합의 극복에 관한 것이었다.
모국어가 다른 이민 1세대와 2세대와의 언어적 숙명, 그저 한걸음 한걸음 같이 극복해나가는 수밖에...
그래, 나도 영어 사용을 생활화하도록 할 테니 너희들(사위와 예비 며느리)도 한국어를 배워보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