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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an 08. 2022

다시 한 달 오미크론 비상사태

비상사태로 시작된 새해, 험난한 시작

지난 4일 미국 메릴랜드의 래리 호건 주지사가 30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12살부터 15살 어린이들의 부스터 샷을 허용하고 1000명의 주 방위군을 동원해 주내 지역 보건관계자들을 지원하기로 했단다. 예상했던 조치이다. 지난 두어 주부터 메릴랜드, 버지니아주와 워싱턴 디씨를 중심으로 오미크론 감염이 무서울 정도였다. 지난 가을부터 어느 정도 회복된 일상에 젖어들 즈음, 우리는 다시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곳곳에 비치해 강박적으로 사용하고 무엇보다도 사람들과의 만남을 최소화하고 있다.

새해벽두부터 잔뜩 움츠러들게 하는 이 상황에 마음이 답답해진다.


상황 1.

지난 1월 2일 늦은 저녁.

모든 저녁 일과를 마친 레지던트 한분이 넘어졌다.

이제 60살을 겨우 넘긴 아직 젊은 분이지만 뇌손상으로 일찌감치 균형감각을 잃고 자주 넘어지던 분이었다.

마지막 먹는 약까지 다 먹은 그녀에게 스텝은 침대 옆의 이동식 변기에서 용변을 보라고 이르고는 방을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취침 전이니 코모도보다는 화장실을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화장실을 다녀오던 그녀는 방문을 닫으며 균형을 잃고 넘어져버렸다. 그리고 방문 근처에 있던 가구의 모서리에 얼굴을 찢기고 말았다. 그녀가 넘어지는 '쿵' 소리에 놀라 이층으로 뛰어올라간 우리는 그녀 얼굴에서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보았다.

뒤이어 이어진 조치들. 손에 잡히는 대로 페이퍼 타월을 집어 지혈을 시키고, 911에 전화를 걸고, 필요한 서류를 복사하고, 아직까지 거실에 남아있던 다른 레지던트들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렇게 몇 분 만에 도착한 네댓 명의 응급구조요원들.

마스크와 장갑을 꼈지만 하루 종일 불특정 다수의 환자들을 실어날랐을 그들이 부츠를 신은채 집안으로 들어올 때 나는 평소보다 훨씬 불편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또한 상황을 설명하고 스스로 걸을 수 있던 그녀를 부축해 데려오며 나는 붕대가 감긴 그녀 얼굴의 상처보다도 그녀가 마스크를 미처 쓰고 있지 않음에 더 신경이 쓰였다.

정작 피를 흘렸던 사고보다 낯선 응급요원들과의 접촉이 신경 쓰이는 넌센스라니... 

그녀는 이미 코로나 환자로 꽉 차 버린 지역 종합병원으로 가지 못하고 30분 거리의 병원 응급실로 보내졌다.


병원에서 뇌 스캔 등을 모두 마친 그녀는 찢어진 부분이 꿰매 진 채 새벽 세시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하룻밤은 응급실에서 보내고 이른 새벽에나 내보내는 병원들의 관행에 비추어볼 때 어지간히 병원이 만원이었던가보다.


자, 오미크론 환자들로 북새통이었을 응급실을 다녀온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는 일단 그녀를 5일간 격리하기로 했다. 격리를 위해 그녀의 룸메이트를 다른 방의 빈 침대로 옮기고 그녀에게 마스크를 씌웠다. 물론 식사도 방으로 가져다주었다. 불가피한 용변을 제외하고는 방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금했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면서 지내는 그녀가 답답할 때마다 핑곗거리를 찾아 방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지만 이번 주말까지는 안 되는 일이다. 

답답해하는 그녀만큼이나 답답한 우리 집 상황이다.


상황 2.

사실, 이번 주에 내가 참여하는 독서모임이 있을 예정이었다.

두 주 전 이미 심상찮은 코로나 상황으로 한번 모임을 건너뛰었기 때문에 이번 모임은 거의 한 달 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주 모임도 결국 하지 않기로 했다. 

주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그동안의 막연했던 불안이 구체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톡으로 주고받는 메시지 가운데 멤버 중 한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 모임 여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오미크론에 감염이 되었고 그 때문에 뉴욕에서 내려오던 딸이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고 다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신도 감기몸살이 있다고 고백을 한 것이다. 이미 코로나에 걸렸던 경험이 있는 그녀는 자신 역시도 감염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이번 모임도 물 건너갔다. 

다시 두 주 뒤로 미루어진 모임은 아마도 줌이나 듀오를 통한 온라인 모임이 되어야 할 듯하다.


상황 3.

이번 주중에도 네 건의 병원 진료가 있었고 네 건 모두 직접 대면 진료가 아닌 전화진료로 진행되었다.

카이저 보험( 의료보험회사 중 하나 )을 가진 사람의 일상적 전화 진료와 정신과 진료뿐만이 아니라 주치의의 정기적인 일반 진료조차 방문진료가 아닌 전화진료로 바뀐 것이다. 

전화 진료 전 내가 레지던트들의 바이탈과 몸무게를 미리 재고, 특이사항이나 변동은 없는지 점검해 의사 선생님들에게 알려드리고는 있지만 청진기로 그들의 심장과 폐, 복부의 소리를 듣고 안색과 태도 등을 살펴보는 대면 직접 진료와 비 할 수 있을까?


상황 4.

욕창이 심한 분의 치료를 위해 홈헬스 컴퍼니의 간호사가 일주일에 두 번 할머니를 방문 치료하고 있었다.

지난달 중순경, 오지 않는 간호사를 기다리다 그곳으로 전화를 한 나는 어처구니없는 소식을 들었다.

소속 간호사들 중 몇 명이 코로나에 노출이 되었고 그들로 인해 모든 간호사들이 노출이 되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간호사들을 보낼 수 없단다. 당연하다. 하지만 이를 어쩐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헤쳐나가야겠지. 간호사들이 오지 않는 날에 우리가 했던 것처럼 당분간은 일주일 내내 우리가 욕창 드레싱을 하면 될 터였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래야 할까???




비상사태는 30일간이란다. 정부는 앞으로 4-6주가 고비일 것이라 한다.

감염자 수가 급증하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주정부는 주 방위군을 동원하고, 병원과 의료시스템이 긴밀하게 작동하도록 주 보건부 장관의 권한을 강화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조치는 병원 부족을 막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게 하며, 사람들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이전의 무조건 셧다운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하지만 비상사태는 말 그대로 비상사태 아닌가.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이 계절만 지나면, 아니 이번 달만 지나면 좀 나아지겠지 기대하며 열두 달을 보냈는데 올해도 첫 달부터 비상사태라니... 

앞으로 한 달간, 아니 한 달 보름 정도 견디다 보면 다가올 봄날처럼 코로나의 기세가 누그러들까?


며칠 전 신년인사로 노 은사님과 나눈 이메일에서 은사님은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하셨다.

구순을 앞둔 은사님은 전염병으로 옥죄어진 우리의 삶이 생기 없이 무기력해질까 봐 걱정하고 계셨다.


어젯밤 내린 흰 눈꽃으로 뒤덮인 앙상한 나뭇가지의 작은 씨눈들을 바라본다.

꽁꽁 싸매진 껍질 속 보이지 않는 푸른 기운은  차가운 겨울을 인내하는 생기의 상징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두 분의 물리치료 스케줄을 한 달 뒤로 미루면서 '한 달간의 자, 타의적 고립'이라는 추운 겨울을 생각한다. 

담담히 인내해야 할 시간들을... 그 시간 동안 차오를 생기들을... 다시 맞을 평범한 일상의 새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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