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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Dec 30. 2021

오미크론이 방해한 신년맞이 카운트다운

다시 빗장을 걸어 잠그며

이틀 뒤면 올해의 마지막 날이다.

코로나로 뒤범벅이 된 한 해였지만 우리는 운 좋게도 잘 비켜나가며 버텨왔었다.

매년 12월 31일 날.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도 끝내는 신년맞이 카운트다운을 해왔었는데 올해는 낮잠을 자고서라도 눈 부릅뜨고 새해를 맞을 생각이었다. 

평생 처음 겪는 어려움들을 잘 이겨내 온 한 해를 축하하고 잘 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 어질러진 주변과 상황을 정리하고 각자 나가서 살고 있는 아이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이미 여느 해처럼 빅 파티나 모임이 없어진 아이들도 기꺼이 그러기로 했다.


얼마 전 공사를 마친 우리의 작은 공간은 점점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방 한 칸을 제외하고는 모든 공간을 어르신들과 공유하던 삶에서 비록 원룸이지만 우리만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바쁜 일상 탓에 미처 정리되지 못한 짐들이 한 공간에 뒤섞여 몇 주를 보내고 있었다.

내 평생 소망인 나만의 화장실과 옷장이 생겼다는 것으로 이미 충분했으므로 액자들이 키보드 위에 쌓여있건 책상 위에 공구들과 잡동사니들이 뒤섞여있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날, 아이들이 함께하기로 하면서 더 이상 그대로 둘 수가 없게 되었다.

우선 딸 부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멋진 사진들을 계단 벽면에 붙였다. 삼각형의 흰색 빈 공간이 아홉 장의 사진액자들로 멋지게 살아났다. 그동안 한두 개씩 만들어 아무 벽면에 걸어놓았던 크고 작은 액자들은 어둠침침한 옷장 벽면에 모두 모아 걸었다. 그곳을 바라보면 내 결혼초 20대 중반의 내 모습과 어린아이들과 뒹구는 30대의 내 모습, 그리고 성장한 아이들과 함께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남편은 우리 삶의 단상들이 모여있는 그곳에 작은 등을 설치해 늘 볼 수 있도록 한 뒤 그 벽면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이제 송구영신 할 준비는 다 되었다. 얼마 전 누군가가 선물한 캘리포니아 어느 수녀원에서 만들었다는 푸르츠 케이크와 샴페인 한 병만 준비하면 될 터였다.

그런데 오미크론은 우리의 소박한 가족 이벤트를 허용하지않았다.


지난 주말 워싱턴 디씨,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이 다녀갔다.

필요한 음식들을 챙겨가고 밀린 빨래도 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을 집안으로 들일수가 없었다. 아들이 코로나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삼십여 명의 레지던트 동료 중 7명이나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단다.

"너는? 검사는 해봤니?"

"검사는 음성이에요.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걸리고 말 거예요. ㅠㅠㅠ"

코로나에 걸려 자가격리에 들어간 동료들의 빈자리 때문에 평소보다 더 많이 일을 하고 있는 아들은 밀려드는 코로나 환자들로 압도되어있는 듯했다.

그런 힘겨운 아들을 격려하고 위로해줘야 했지만 나 역시 우리 시설의 노인분들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난 주차장에서 녀석의 빨래 바구니를 건네받고, 아들은 먹고 싶은 짜장면을 식당에 가서 혼자 먹고 와야했다.

무엇보다도 세탁된 옷가지들을 건네받고 음식물을 차 뒷좌석에 챙겨 넣고 돌아서는 아들에게 나는 허그조차 해주지 못했다.


새로운 가족을 꾸린 딸은 엄마 아빠와 함께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하고 싶어 했다.

이박삼일의 일정을 짜고, 우리집 근처의 에어비엔비를 예약하고, 일정 중에 스파에 갈 계획을 세웠다.

"딸, 스파에서는 마스크를 벗어야 하지 않냐?"

"그렇지.... 왜 걱정돼?"

"그건 좀 그러네. 스파는 우리 집 다녀간 뒤에 가면 안 될까?"

"........"

그렇게 딸은 일정 중에 가기로 했던 한국식 스파(찜질방)도 취소하고 우리와 함께 할 저녁식사도 마스크를 벗어야 하니 따로 먹기로 했다. 이미 코로나는 우리들의 가족 이벤트를 방해하고있었다.

그때 공교롭게도 사위의 누나가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들은 열흘 전에 뉴욕에서 가족모임을 한터였다.

"엄마, 아무래도 내가 걱정이 되어서 안 되겠어요. 처음엔 엄마가 너무 신경을 써서 당황스러웠는데 지금은 내가 못가겠어요. 가까운 사람들이 걸리고, 얼마 전 나도 그들과 만났으니 우리도 노출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속상하지만 이번에는 각자 집에서 보내기로 해요. 카운트 다운은 줌으로 하면 되지 뭐.."

모든 일정을 취소하기로 한 딸의 목소리가 잦아들어갔다.


모이지 않기로 한 결정에 실망하는 딸과 사위, 아들을 보면서 짐짓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편치 않다.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은 모이지 못했더라도 새해맞이 카운트 다운은 함께하고 싶었던 작은 바람이 어그러져서 나 역시도 실망스러움이 크다. 

요 며칠 사진액자를 다시 벽에 걸고, 낡은 등을 갈아 끼우고, 어지러운 전선들을 정리하며 가족의 작은 이벤트를 신이 나서 준비하던 남편의 실망도 클 것이다.

하지만 너무 쉽게 전염이 된다는 오미크론으로 입소어르신 가족들의 방문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마당에 내 가족들의 방문을 허용하기는 더 마음 불편하다.


"아이들 못 와도 괜찮아. 여기 이렇게 사진들이 있잖아."

애써 실망감을 감추고 사진으로, 줌 만남으로 카운트다운을 하자는 남편의 말에 그저 고개만 끄떡이고 만다.

당분간은 다시 스텝들의 실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해야겠다.

바깥을 드나드는 우리들로부터 병약한 어르신들을 보호해야지. 

한해의 마지막 주, 며칠째 이어지는 우중충한 날씨만큼이나 우울한 연말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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