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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Aug 09. 2023

미국에서 한 달 살이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미국에서 18년째 살고 있는 내가 '미국에서 한달살이'를?, 에이, 그럴 리가...

일의 전모는 이렇다.

휴학 중인 조카가 미국에 와보고 싶어 했다. 대학 2학년생인 조카는 다음학기에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갈 예정이다. 본격적인 해외살이를 하기 전에 안전한(?) 이모 곁에서 해외살이를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가보다. 

Why not?

오겠다는 조카에게 흔쾌히 허락은 했지만 정작 녀석의 비행기 일정이 잡히니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한 달 살이 일정을 만들어나갈까?, 미국생활에 아무런 경험이 없는 녀석인데?, 그럼 내가 도와야 해?

"도대체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우선 한 달이라는 기간은 커뮤니티 칼리지의 이솔 과정을 등록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기간이다. 

학생인 조카에겐 커뮤니티 칼리지의 이솔과정에 등록하는 게 가장 좋은 옵션이지만 현재로선 불가능했다.

하필 근처의 미국교회에서 운영하는 영어 클래스조차도 그때가 방학이란다.

미국에서 제일 해보고 싶다는 '클래스에서 영어로 떠들어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면 어떻게 한다지?


"이번 미국여행은 놀러 오는 것도, 그렇다고 공부하러 오는 것도 아니야, 워킹홀리데이라고 해두자. 어때?"

노인 시설인 우리 집에서 한 달 동안 우리의 하루 일과를 같이한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카의 미국 한달살이를 '워킹홀리데이'로 규정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어떤 경험들이 펼쳐질 수 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워킹홀리데이답게 우리의 하루 일과에 동참시키기로 했다.

하루의 시작은 부지런한 닭들과 함께하면 좋겠지. 닭장에 가서 먹이를 주고 달걀을 집어오는 것만큼 생산적인 게 있을까. 그다음은 텃밭에 물 주기.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조카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게 분명했다.

그다음은 나와 함께 노인들의 아침식사를 돕게 하자. 20년간 엄마아빠의 막내딸로만 살았지 한 번도 누군가의 식사를 도와주는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조카는 그 작은 일조차도 큰 경험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지역 도서관을 이용하는 거였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엔 꽤 크고 잘 꾸며진 도서관이 있다.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지하게 많은 영어책말고도 한쪽 구석에 한국어책, 중국어책과 힌디어 등 외국어로 된 책들까지 마련되어 있다. 그뿐인가?, 월별 이런저런 클래스들이 요일별로 마련되어 있어 관심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다. 

옳지, 도서관에서 교양 클래스도 듣고 책도 읽고 도서관 사서들과 스몰 토크도 하면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 도서관을 둘러보고있는 조카의 모습 )


세 번째, 우리 주변의 인맥을 잘 활용해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거였다.

"미국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라고 묻는 우리에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미국사람들과 만나게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스무 살의 젊은이가...

내 아이들도 이미 30대의 성인이 되어있는 마당에 난감한 일이었다.

그때 남편이 몇 년 전 요가를 배우며 만났던 일본인 요가 선생님을 생각해 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있는 조카는 능숙한 일본어를 구사하고 있으니 그녀와 만나면 영어로 떠드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외국인과 떠들기'는 가능할 것 같았다. 

( 카운티의 아시안 페스티벌을 즐기고있는 사람들 )


이렇게 시작된 조카의 미국 한달살이는 시작되었다.

7시에 시작되는 조카의 하루 일정.

내가 아침마다 만들어 마시는 레몬꿀차를 같이 한잔 마시고, ( 내키지 않을 법한대도 거절 않고 마셨다.)

묵은쌀 한 컵 떠다가 닭들에게 주고 대신 낳아놓은 달걀 한두 개 주어 오고,

먹여드려야 하는 노인분들의 아침식사를 도와드리고,

우리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씩 해야 하는 그로서리 쇼핑에 따라다니고,

그러고도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도 가고, 올드타운에 가서 혼자 돌아다니고, 파머스 마켓구경 가고, 등등등

( 한시간 거리의 트래킹을 따라가서 발목 아픈 강아지를 업고 걷고있다. )
(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서 딸기를 사고있다. )

그런 중에도 조카가 특별한 일정 없이 집에만 머물 때는 아무리 워킹 홀리데이라고는 했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하필 조카가 방문한 기간 동안 풀타임과 파트타임 직원이 두 사람이나 바뀌는 바람에 나는 조카와 놀러 다닐 여유가 없었다. 같이 가기로 했던 뉴욕,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여행도 조카 혼자 다녀와야 했고, 워싱턴 디시의 관광도, 꼭 보고 싶다는 뮤지컬도 조카 혼자 보러 갔다. 평소 조용조용한 성격에 말소리도 작은 녀석이 의외로 씩씩하게 혼자서 잘 돌아다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과, 특히 젊은이들과 떠들고 싶은' 마음은 도와줄 방법이 별로 없었다.

남편은 우선 YMCA에서 요가를 가르치고 있던 하루미 씨에게 다짜고짜 이메일을 보내고 조카와 함께 그녀의 요가 클래스에 참여했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미 씨와의 만남은 그녀 아이들과의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졌다.

하루미 씨에게는 조카보다 한두 살 어린 자녀들이 넷이나 있었다. 둘은 자신의 아이들, 나머지 둘은 남편의 아이들이다. 조카와 그들은 마침 지역에서 열리는 아시안 페스티벌에도 함께 갔다. 이 지역에서 18년 동안이나 살아온 나조차도 잘 알지 못했던 아시안 페스티벌이다. 그리고 그들은 주말에 다시 만나 근처의 몰로 놀러 갔다. 미국의 청소년들이 주말에 만나 놀 수 있는 공간은 몰이 가장 좋다. 웃고 떠들며 먹고 구경할 수 있는 곳. 드디어 조카는 제 또래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미국 한달살이의 재미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름 보람 있게 하루하루가 지나고 어느덧 마지막 한주를 남겨놓은 즈음.

조카가 느닷없이 파티를 주선하고 싶단다.

그동안 저에게 관심과 친절을 보여준 사람들을 다 초대해 직접 만든 칵테일을 대접하고 싶대나 뭐래나...

하참,,, 파티가 어디 칵테일만 가지고 되는 것인가?...

속으로 한숨이 나왔지만 평소 자기주장과 표현이 많지 않은 아이이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것이 그저 반가워서 싫은 내색 없이 조카의 "Thank you and good bye party"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렇게 조카와 둘이 나선 파티준비 장보기.

우선 코스코에서 그릴로 구울 고기와 과일을 사고 나쵸칩과 딥, 그리고 후식을 샀다. 코스코에서 장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즈음, 갑자기 떡볶이를 해주고 싶단다.

웬 떡볶이?, 미국사람들에게?, 요샌 K-Food이 유행이어서 외국인들도 잘 먹는대나 어쩐대나..

오케이, 그렇게 우리는 아시안 그로서리에 다시 갔다. 떡볶이 떡, 양배추와 어묵을 사고 나오려는데 느닷없이 생크림이 필요하단다. 

생크림? 왜애~~???, 그 이름도 생소한 '로제 떡볶이'를 만들려면 생크림이 필요하단다.

조카 녀석의 입에서 로제 떡볶이 운운이 나올 때부터 내 머리 위로 김이 풀풀 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신선한 생크림을 사기 위해 월맡으로 향하는 내 표정은 벌레씹은 표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다음 날.

남편은 새우 볶음밥 준비에 분주하고 나 역시 재료들을 하나하나 씻고 접시에 담느라 분주했다.

하필 날씨도 한 시간 전에 소나기가 예고되더니 때맞추어 장대비가 쏟아져내렸다.

즐거운 마음보다는 "해줘야 해서" 준비하는 파티에 비까지 쏟아지니 후회막급이었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준비하고 있는 파티, 몇 사람 오지 않더라도 우리끼리라도 조카가 말아준다는 칵테일을 마시며 즐겨야지.. 그놈의 로제 떡볶이도 먹으면서..

천만다행으로 장대비는 가랑비로 바뀌고 얼마뒤엔 가랑비도 멈추었다. 

그렇게 시작된 Thank you and Good Bye Party!!!

하루미 씨 아이들과 놀러 나갔던 조카가 돌아와 로제떡볶이를 만들면서 시작된 파티에는 하루미 씨 부부와 아이들, 앞집의 John네 부부와 아들, 올드타운에 놀러 갈 때마다 들러 차 한잔 얻어마시며 놀았던 미셸 아줌마, 1.5세 이민자 엄마로 고등학생 딸을 키우고 있는 준과 딸, 내 독서클럽 멤버 몇 분( 조카는 내 독서클럽 모임에도 참석했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와 아들 등 초대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참석했다.

소나기는 때맞추어 멈춰주었고 뒷마당의 가제보와 천막에 삼삼오오 모여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우리가 준비한 음식 외에도 앞집의 올가가 가져온 러시안식 샐러드는 같은 러시아 출신인 하루미 씨 남편에겐 반가운 고향 음식이었다. 우리집 뒷마당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고향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 그리고 문제의 로제 떢볶이는 생크림과 우유가 들어가서인지 마치 크림 파스타맛이어서 정말 모든 사람들이 맛있게 먹었다. (이건 또 무슨 반전이람..)

소나기 온 뒤의 선선한 날씨 속에 밤 9시가 넘도록 진행된 파티는 즐거웠고 그 즐거움 가운데 파티를 준비하면서 쌓였던 피곤과 짜증스러움은 조용히 사라졌다.

( 로제떢볶이를 만들면서 파티는 시작되고..)
( 파티에선 누가 뭐래도 우선 먹는게 중요하다. )
( 조카가 말아준 칵테일에 취해 말이 많아진 이모부 )


조카의 미국 한달살이의 피날레는 파티 후 하루미 씨가 초대한 요트를 타고 하는 불꽃놀이였다.

파티 다음날은 미국 독립기념일이라 여기저기서 불꽃놀이가 있었다. 미국인들에게도 그날의 불꽃놀이는 특별해서 초저녁부터 모여들어 자리를 잡고 즐긴다. 그런데 하루미씨 가족이 요트를 타고 나가 항구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를 보자고 조카를 초대한 것이다.

요트를 타고 나가 바다에서 바라보는 항구의 불꽃놀이라니!!!

생전 요트를 타본 적도, 제대로 된 불꽃놀이도 보지못했다는 조카는 최고로 낭만적인 불꽃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 요트를 조종하고있는 소년의 진지한 모습 )
( 요트에서 바라보았다는 석양의 모습 )

조카는 다시 한국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 달여 뒤면 교환학생으로 또 해외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오지랖 넓은 우리 부부의 제안으로 진행되었던 '미국에서의 한달살이'는 교환학생으로서의 생존에 피와 살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한 사람과의 만남이 또 다른 만남들로 이어지는 놀라움을 경험했듯이 좋은 만남들을 원 없이 만들어보길..

그들과 '로제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며 왁자지껄 흥겨운 파티를 즐겨보길..

또래의 젊은이들과 원 없이 떠들고 또 떠들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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