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 마일의 Blue Ridge Parkway를 완주하다.
(지난번에 올린 '스모키 마운틴을 가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Blue Ridge Parkway는 Great Smoky Mountains National Park에서부터 버지니아의 Shenandoah National Park을 잇는 도로로, 말 그대로 Ridge (능선)을 따라 놓여있는 길이다. 그러다 보니 애팔래치안 산맥을 따라 셰넌도어 국립공원과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을 포함한 산맥의 뛰어난 전경을 무려 469마일 동안 보면서 달릴 수 있다.
우리는 동부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길이라는 이 길을 이번 기회에 완주해 보기로 했다.
하이웨이를 이용하면 하루 만에 돌아갈 수도 있지만 블루 릿지 파크웨이를 이용하게 되면 최소한 이틀은 잡아야 한다. 우리는 중간지점인 버지니아 로어녹 근처에서 하룻밤을 쉬어가기로 하고 스모키 마운틴을 출발했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테네시와 노스 캐롤라이나의 경계석과 기념탑, 그리고 애팔래치안 트레일이 마주치는 Newfound Gap에 들렀을 때였다.
거기서 우리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의 일정 구역을 걸으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조지아주에서 시작해 메인주까지 이어지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종주하지는 못하더라도 두 주의 경계지점에서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조금이라도 경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트레일 입구에 모여 리더의 설명을 듣기도 하고 사진도 찍은 뒤 다 함께 구령을 외치고는 출발했다.
대부분이 우리 나이 또래로 나이 든 분들이었던 그들을 바라보다가 우리 둘도 자연스럽게 그들 뒤를 따랐다.
그렇게라도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잠시 걸어보고 싶었던거다. 어느 안내 표시판에 적혀있던 것처럼 '우리도 애팔래치안을 걸었다.'라고 말할 수 있게는 되었지만 그러고나니 왠지 아쉬움이 더 커져버리고 말았다.
내 인생에 풀 마라톤도 물 건너가더니만 애팔래치안 트레일도 이렇게 시늉만 하고마는가 싶은.. 쩝..
그래서 선택한 것이 블루 릿지 파크웨이 드라이빙 종주였다.
비록 차로 하는 완주라 할지라도 파크웨이의 시작부터 끝가지 달린다면 그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연초 남편 혼자 나선 캠핑에서 Roanoke까지의 파크웨이를 경험했던 그는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던 터였다.
그렇게 Asheville 근처 블루 릿지 팍크웨이 Visitor Center에 들러 지도와 상세한 설명을 들은 후 출발했다.
비지터 센터의 직원은 중간중간의 명소들을 알려주며 들려가라고 했지만 이틀만에 블루 릿지를 타고 가려면 그럴 여유가 없었다. 사실 블루 릿지 파크웨이를 제대로 살펴보며 달리려면 4-5일은 걸린단다. 아쉽지만 중간중간 명소를 들르고 트레일을 걸으며 완주하는 것은 또다시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블루 릿지 파크웨이는 노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주 경계로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진다.
스모키 마운틴이 있는 노스 캐롤라이나 지역은 주 경계가 끝날 때까지 여전히 가파른 능선길이다.
반면 버지니아로 넘어오면 두드러지게 완만해진다. Roanoke 주변이나 조금 가파를 뿐 완만하고 부드러운 능선이 셰난도우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어떤 파크웨이를 달리든지 나의 시야에 담기는 산들과 숲, 그리고 하늘과 구름은 나를, 우리를 계속 속세가 아닌 신선계에 머무르게 한다.
스모키 마운틴 지역을 벗어나기 전 앞서 가고 있던 오토바이 몇 대와 차 한 대가 멈춰 선다. 그들의 발길을 멈춰 세운 무엇인가가 있다는 소리이다. 우리도 그들 뒤에 다가가 차를 세운다.
아하, 곰 세 마리이다. Black bear다. 두 마리의 어린 곰 두 마리가 천진스럽게 나무 위에 오르며 장난을 치고 있고 어미곰이 옆의 나무 아래에 있다. 어미곰은 주변에 멈춰서는 오토바이들에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우리 차까지 다가가자 얼른 돌아선다. 어미가 뒤돌아 기슭으로 내려가자 제법 높이 올라가 있던 아기 곰들이 후다닥 나무 밑으로 내려와 사라진다.
Visitor Center의 직원이 알려주었던 것처럼 Deep Gap 부근에서부터 Blue Ridge Music Center 못미처까지 공사로 우회하게 되어있었다. 우리는 221번 도로와 18번 도로로 우회하면서 노스 캐롤라이나의 시골길을 달렸다. 어느 지역 즈음이었을까, 낮은 언덕배기 산들에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용 나무들이 잔뜩 심어져 있었다. 산의 한 면은 아주 어린 나무들이, 그 옆으로는 1년생들이, 또 그 옆으로는 다 자라서 올해 크리스마스에 쓰일 수 있을 만큼 자라 있는 나무들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딱 한번 생나무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든 적이 있었다. 온 집안에 퍼지는 나무의 향과 운치를 빼면 계속 떨어지는 잎들, 크리스마스 이후에 버려야 하는 번거로움, 무엇보다도 크리스마스를 장식하려고 생나무를 잘라 버렸다는 사실이 무척 마음 불편했었다.
생나무보다도 더 생나무 같은 인조 트리로 장식하게 된다면 저 나무들이 베어지지 않고 자라 숲을 이룰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차창밖의 풍경과 함께 스쳐 지나갔다.
저녘무렵, 부지런히 달려 찾아간 캠프 그라운드는 아직 개장이 안되어있었다. 바로 다음날부터 개장한단다.
어쩐지 전화연결조차 안되더니... 자, 그러면 어쩐다지? 마침 캠핑장 입구에는 어디선가부터 달려왔을 모터사이클 멤버 세 명도 황당해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부지런히 어딘가에 전화를 하더니 십 분 정도의 거리에 사설 캠핑장이 하나 있단다. 그는 우리에게도 그 사설 캠핑장의 주소를 알려주고 출발했다. 세명 모두 많이 지쳐 보였다.
Crooked Mt. Camp Ground.
우리가 이번 여행 중 마지막 밤을 보낸 곳이다. 그동안 우리가 묵었던 캠프 그라운드는 산속에 땅을 평평하게 고르고 텐트를 치거나 차를 주차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면 이곳은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넓은 운동장 같은 액티비티 공간이 있고, 바로 옆의 개울을 따라 일렬로 조성되어 있던 캠프 사이트.
마침 소나기가 왔었던지 모래로 뒤덮힌 캠핑장은 젖어있었고, 개울물은 꽐꽐 소리를 내며 흐르고, 앞에 펼쳐진 넓은 운동장 끝에는 안개가 잔뜩 끼어있었다.
뭐라 딱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워도 보이스카웃 캠핑장이나 또는 남북전쟁 시의 군영 캠핑장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종일의 드라이빙에 지친 우리는 서둘러 저녁식사를 끝내고 모닥불을 지폈다. 젖은 땅이었지만 다행히 불이 피어올랐다. 밤과 함께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지고 개울물 소리는 더 크게 들렸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고 피곤한 나는 잠에 빠져들 줄 알았다. 하지만 늦은 저녁밥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운무와 개울물 소리, 그리고 왠지 군영 캠핑장 같은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곳이 격전지였을지도 모른다는 으스스한 생각 때문이었는지 나는 새벽 두 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음날의 드라이빙은 안개비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비치는가 싶다가 어느 순간 안개비가 내리고 다시 운무가 걷히고 햇살이 비취기를 거듭했다. 그러던 중 Roanoke을 조금 벗어난 Great Valley Overlook에서 나는 두 사람의 하이커를 만났다. 그즈음부터는 애팔래치안 트레일과 블루 릿지 파크웨이가 거의 겹쳐져있다. 그들은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걷거나 걸으려는 사람들이었다.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가벼운 배낭을 메고 있었다. 당일치기 하이커일까? 아니면 종주?
궁금한 것을 못 참는 남편이 그녀에게 물었다.
"얼마동안 걸었어요?"
"두 달이요. 조지아에서부터 걸어왔어요."
"오 마이 갓, 그렇게 가벼운 장비로요?"
"그럼요. 앞으로 메인주까지 넉 달 동안 더 걸을 예정이에요."
씩씩한 그녀는 애팔래치안 트레일 종주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존경스러운 마음에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했다.
또 한 사람은 6-70대의 나이 드신 여성이셨다.
그녀는 어디선가 승용차를 타고 와서 overlook에서 내리더니 걸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 걸으시는 거예요?"
"예, 나는 13년 동안 걷고 있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매년 조금씩 걷는 섹션 하이크를 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완주하겠지요. "
그토록 가벼운 장비로, 그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고독하게, 그토록 긴 여정을 걷는 그들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어쩌면 그것이 미국 또는 미국인들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들의 완주를 빌며 우리의 길을 달렸다. 그리고 이전에도 가본 적이 있는 셰난도어 국립공원 스카이라인 드라이브 앞, Northern End of Blue Ridge Parkway에서 이틀에 걸친 우리의 완주를 마무리했다.
4박 5일간의 스모키 마운틴과 블루 릿지 파크웨이 여행이 끝났다.
매번 여행을 하고 나면 내가 둘러보았던 곳에 깃든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랬다. 스모키 마운틴의 갈래갈래의 길들, 캠프 그라운드들, 트레일들, 그리고 overlook과 건물들. 도대체 누가 그것들을 다 만들었을까?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CCC( Civilian Conservation Corps )의 18세에서 25세 사이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마련한 국가적 사업에 참여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길을 내고 터를 닦으면서 가족의 생계뿐이 아니라 자신들의 젊은이다운 투지와 정신적 힘을 키워냈을 것이다.
나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같은 국가 지도자를 가질 수 있었던 미국이, 이런 국립공원을 만들고 보전할 수 있었던 미국이 많이 부러웠다.
뿐만 아니라 장장 6개월이나 걸리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혼자 묵묵히 걷는 젊은 하이커나 구간 구간 쪼개어 십여 년에 걸쳐 완주하고자 하는 나이 든 하이커의 집념과 정신력에 고개가 숙여졌다. 온전히 자신에 집중하며 스스로 선택한 순례길에서 그들이 마주할 진정한 홀로서기는 어떤 것일까?...
비록 두 도반(남편과 강아지 보리)과 함께 자동차로 한 완주이지만 동부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블루 릿지 파크웨이를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달렸다는 것에도 작은 보람을 느낀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은데 나에게 남겨진 체력과 시간은 유한하다. 필요하다면 두 발이 아니라 자동차로, 또는 비행기를 이용해서라도 더 많이 찾아가고 마주해야겠다고 또다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