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원 없이 푸른 대서양만 바라보다.
두어주전 어느날, 나는 새벽 3시에 잠을 깨야했다.
여행을 앞둔 분주한 하루를 보낸뒤 나는 피곤에 절어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지난밤 열 시가 넘어 딸 집에 도착을 하고 딸과 허그만 한 뒤 곧장 잠자리에 들었던 터였다.
나를 흔들어 깨우는 남편에게 "도대체 이 시간에 왜 깨우는 거냐"고 버럭 화를 내자 남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크루즈여행은 어려울 것 같아."
이번 여행의 주관자 사위가 많이 아프단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나가보니 거실에 웅크리고 혼자 앉아있던 사위가 열이 나고 설사를 한단다. 아무래도 저 상태로 크루즈 여행은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는 아이와 함께 곤히 자고있는 딸을 깨워 의논하기 시작했다.
크루즈 여행, 까짓것 못가도 괜찮았다.
사실 이번 크루즈 여행은 2년 전에 예약한 거였다.
딸의 임신과 출산으로 두 번이나 연기되었다가 손녀의 첫돌 즈음해서 나서 보기로 한 거였다.
어린 젖먹이를 데리고 여행하는데 크루즈만 한 것이 또 있을까.
게다가 이번 크루즈는 사위의 버켓리스트로 Haven으로 업그레이드 되어있었다.
일반보다 무려 두세 배에 이르는 비용을 지불한 터였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던 크루즈를 못 가게 생긴 거다.
사위는 지독한 감기몸살의 증세인 발열과 설사로 도무지 여행을 할만한 컨디션이 아니었다.
그러면 당연히 취소를 해야지.
우리는 이왕 휴가를 낸 거 딸 집에서 손녀와 좋은 시간을 보내면 될터여서 크루즈 취소를 강권했다.
하지만 딸과 사위는 약을 먹고 잔 뒤 아침에 상태를 보고 결정을 하겠단다.
이번 여행의 리더가 그들이니 우리는 따를 수밖에..
출발 바로 직전에, 장인장모까지 이미 합류한 상황에 몸이 아픈 사위나 딸은 얼마나 난감했을까.
아이들에대한 짠한 마음을 다스리며 우리는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극적으로 사위가 회복되어 뉴욕으로 출발했다.
한밤중의 해프닝으로 우리가 늦잠을 잤나보다.
거실에서 식구들의 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딸이 여행 짐을 꾸리고 있었다.
간밤에 먹은 약과 충분한 수분으로 사위가 많이 회복이 되었단다.
사실 회복이 되었다기보다는 약으로 증상이 완화된 것이겠지.
어쨌거나 약으로 열과 설사가 제어가 되니 무리를 해서라도 길을 나서보려는가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이지만 젊은 그들의 체력을 믿어보기로 했다.
노르웨이지안 크루즈에 순조롭게 승선했다. 그것도 무려 헤이븐이라니.
버뮤다로 향하는 6박 7일 크루즈는 뉴욕에서 출발했다.
펜실베이니아의 딸 집에서 뉴욕까지는 두 시간 정도.
아기 차 시트까지 설치된 실내에서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뉴욕이다.
여행은 집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인가 보다. 두 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지나갔다.
Norwegian 크루즈 항구에 차를 주차하고 유모차와 가방들을 들고 보딩 수속을 진행했다.
우리가 타는 크루즈는 3500여 명의 승객을 수용하고, 올해 4월에 첫 운항을 한 크루즈라고 한다.
몇년전 쿠바를 노르웨이지안 크루즈로 다녀왔던 좋은 경험 때문인지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게다가 우리가 묵을 Haven은 두 개의 방과 작은 거실, 넘실거리는 검푸른 파도를 볼 수 있는 발코니가 있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테이블 위의 과일 바구니와 샴페인이 우릴 환영하고있었다.
이제는 사방팔방 어디고 기어 다니는 손녀와 우리는 6박 7일간 안성맞춤의 숙소에 짐을 풀었다.
이미 감기를 앓고 있는 사위에게 독방과 쿼런틴을.
약으로 증상은 완화시켰지만 사위는 엄연한 감기환자.
딸은 우리 부부에게 큰방을, 사위는 혼자 쿼런틴을 할 수 있는 작은 방을, 그리고 손녀와 자신은 소파 겸 침대가 있는 거실에서 지내기로 했다.
손녀를 위해서는 미리 요청한 대로 아기용 요람이 준비되어 있었다.
자, 이제 모든 것이 세팅이 되었다.
배고프면 원하는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심심하면 배안의 재미거리를 찾아다니고 그것도 심드렁 해지면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면서 낮잠을 자면 된다.
나는 가져온 책들을 읽으며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풀어놓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 게 크루즈 여행이니까.
아, 이게 얼마만의 휴식이란 말인가!
승선 다음날부터 목 뜨끔거리던 나, 셋째 날부터 몸져눕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생각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걱정했던 대로 나도 아프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오는 차 안에서도 사위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가급적 물리적 거리를 유지했건만 바이러스는 방어력 약한 내 몸 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승선한 이틀째부터 목이 뜨끔거리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으로 목이 아프고 으슬으슬 춥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괜찮은 척 했지만 재채기와 콧물 그리고 미열을 감출수만은 없었다.
젠장, 격식 갖춰 서빙받는 레스토랑도, 물놀이도 다 물 건너가버렸다.
Haven 멤버들만 이용할 수 있는 레스토랑의 음식은 격조도 있고 무엇보다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맛있는 것들이 메뉴판에 가득했건만 콜록거리고 콧물 훌쩍거리는 형편으로는 곤란했다.
물놀이?, 최근 들어 더 나온 아랫배를 감출수 있는 프릴 달린 원피스 수용복과 멋진 스카프와 모자까지 사가지고 왔건만 가방에서 꺼내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틀의 항해 후 도착한 버뮤타도 둘러보질 못했다. 하루 세 번 Ibuprophen을 두 알씩 삼키며 강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나면 정말 완전히 뻗어버릴 것 같아 포기해야했다.
어떤 때는 포기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크루즈를 타지 않는 한 다시 오기는 어려운 버뮤다였지만 나는 신포도처럼 버뮤다를 쉽게 포기해 버렸다. "영국령의 작은 섬나라일 뿐일 텐데 뭐.."라면서..
그렇게 나는 내 손안에 들어왔던 버뮤다를 흘려보냈다.
이번 여행이 완전히 꽝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손녀와 생애 첫 여행을 했다.
무엇보다 우리 부부는 생애 처음 여행을 나온 손녀와 늘 함께 있었다.
쿼런틴을 하고 있는 사위는 방에서 쉬어야했고 하루 종일 아이와 실랑이를 하는 딸도 쉬게 할 겸 우리 부부는 기운만 나면 손녀를 유모차에 태워 방밖으로 나섰다. 아프기 시작하는 나도 약을 먹어가면서라도 손녀와의 산책을 포기하고싶지 않았다.
화려한 천장 장식, 복도에 전시되어있는 그림들, 멋진 조형물들, 많은 사람들, 식당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음식냄새, 이 대부분의 것들은 아이가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었다.
유모차에 탄 아이는 두리번거리며 새롭고 낯선 환경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런 아이를 옆에 두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바라보는 바다는 평화 그 자체였다.
어쩌면 사위도, 나도 제대로 '병가'를 쓴 셈이다.
사위는 말할 것도 없고 나도 전일 근무자로서 감기로 콜록거렸다면 근무지에서의 민폐는 물론 앓으면서 일하느라 심신이 너덜너덜 해졌을것이다.
하지만 아픈 사람에게 크루즈만한 휴식처가 어디 있을까.
매일 청소해 주는 침실에 누워, 없는 입맛 살펴가며 골라서 음식을 먹고, 느긋하게 쉴 수 있었으니 그만한 병가가 어디 있으랴. 게다가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의 Haven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누워 쉴수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
어쩌면 그렇게 쉬면서 바이러스와 싸웠기에 더 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벼르고 벼르다 나선 크루즈였는데 허약한 사위와 나로인해 우리 모두 제대로 즐기질 못했다.
손녀와 텀벙텀벙 물놀이도 못했고, 다 함께 모여 맛난 음식을 즐기지도 못했고, 버뮤다의 크리스탈 동굴도 보지 못했다.
그러면서 소망이 하나 생겼다.
둘째 아이까지 장가들어 가족이 생기면 일 년에 한 번은 함께 크루즈를 타고 싶다는 소망말이다.
쾌적한 환경에서, 준비된 음식으로 가족 모임을 한다면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수고로움 없이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크루즈 여행이 아쉬운 만큼 그 소망도 크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 부부만의 소망으로 그칠지 아니면 실현이 될지는 두고 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