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의 즐거움을 새삼 느끼곤 한다. 일요일 오후 세 시 즈음, 볕을 받으며 걸음을 옮기는 건 나만의 취미는 아닐 것이다.
골목이 주는 그 세심한 풍경을 찾는 것은 확실한 즐거움이다.
일요일 오후, 방구석에 있기보다는 산책을 택했다.
내가 살던 옛 동네,
초등학교 주변 동네를 걷다가, 문구점을 지나서 시장으로 접어들었다.
대파, 두부, 브로콜리 등을 파는 야채상. 떡집, 정육점, 파전집 등이 즐비한 점포를 통과하여 빌라가 들어선 거리를 거쳐 낡은 아파트 단지에 도달했다. 어린 시절 걸으면 한참 걸리던 길이, 어른 보폭으로 한달음에 올라설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1980년대에 지어진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아파트 단지 언덕에 오른다.
저 아래로 바둑판처럼 펼쳐진 골목을 본다. 골목은 내가 지금껏 걸었던 경계에서 벗어나 확장되며 방사형으로 흩어져갔다.
절제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내가 지금껏 걸어보지 못한 골목이 저렇게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골목의 끝에는 길이 가지 치고 계속 무한 확장된다. 골목은 무성한 나무와 같다.
계속되는 동네 주민의 발걸음에 매끄러워진다. 결국엔 삶의 국면들에 둘러싸인 풍경은 미지의 세계다.
나는 길이라는 미로 속에 살아왔다. 막다른 골목, 서둘러 집을 찾는 발걸음,
디시 집에서 나와 일터로 향하는 여정.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해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기도 했지만, 분명 이 골목에서 자랐고, 골목을 따라 머나먼 나라로 다녀오기도 했다.
골목은 온몸으로 읽는 책과 같다.
골목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간판의 글자들을 읽자면, 나름대로 해석하면서, 문자가 주는 변화무쌍함에 매료되기도 한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골목이 준 평화와 안식에 감사의 인사를 했다, 나만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