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마로 Mar 05. 2020

바람이 불어오고 불어나가는, 책들의 풍경

나는 바람이 인도하는 문장을 읽다가 문득 도서관이 궁금했다.

책에 둘러싸여 있는 의자, 책들이 나를 내려다본다. 사방에 흩어진 책들, 목재로 된 책장들, 온도를 따스하게 데우는 히터들, 공중을 채우는 공기는 훈훈했다. 창문으로 따사로운 빛이 들어와, 책 읽기 적당한 공간을 제공한다. 




이용자들이 머물다 떠난 자리.

옆자리엔 항상 보일 법한 청년이 앉아 있다. 의자에선 온몸을 뒤척이며 글자들의 의미에 난감해하고 거부하다가, 페이지를 뒤로 넘기며 신경질을 부린다. 그러다 책의 두께를 가늠하다가 한숨 소리를 낸다. 소음을 유발하던 이용자는 어느 순간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어느덧 열람실에 저녁이 다가온다. 낮의 시간이 밤에 정처 없이 떠내려가는 시간, 정오는 그저 마냥 밀려날 수 없다며 엎치락뒤치락 하는 순간이다. 

도서관 천정에 달린 조명등이 익숙하다. 전등이 있던 천정을 보다가 문득 도서관 연혁이 궁금해졌다. 전등이 있기 전에 분명 형광등이 불 밝혔을 천정이 보였다. 

데스크에는 사서들이 보였다. 중년을 훌쩍 지나 한때는 젊은이였지만, 도서관 업무를 하면서 도서관과 함께 늙어간. 



첫해에 들여온 도서만큼 나이가 든 사서. 그 책은 이미 오래된 서가로 방출되었고 사서가 도서 대출 업무를 하고 있다. 이 도서관에 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이용자들은 편한 일이라고, 도서관에선 언제나 별일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정적과 함께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휴관일을 생각해보면.

이용자들은 굳게 닫힌 문과 휴관일 안내를 보고 발길을 돌릴 것이다. 발걸음들은 문 앞에서 멈추고.

휴관일에도 자리를 지키며 숙직을 했을 사서가 생각났다. 사각 건물에 네모난 창문을 바라보며 믹스 커피를 들이켰을 나날들에 대해 사실 일반 이용자에 불과했던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사서의 삶을 생각하다 말고 책을 마저 읽었다. 


도서관 이용이 끝났음을 알리는 안내 음성이 들려올 때까지. 

페이지를 넘기던 소리, 옮겨 적는 필기구, 펼쳐놓았던 물품을 백팩에 넣는 소리들을 들었다.

공식적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 

나는 그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책장에 꽂힌 도서들이 가득한 곳에서 오늘 건져올린 몇 개의 문장을 스마트폰에 타이핑한다. 

문장을 소리 내어 읽다가, 그 문장이 펼치는 우주의 진리에 새삼 감동받는다.

이 밤은 내가 모르는 미지의 시간으로 가는 길을 안내했다. 

나는 그곳에서 길을 찾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m16 비밀 첩보원 출신 서머셋 모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