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시은 Sep 20. 2020

표현하면 달라지는 것 들

엄마도 가끔 울고 싶을 때가 있어

소중한 가족을 멀리 보낼 때의 그 아픔과 상실감은 경험해 보지 않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준비 없이 갑자기 떠나보내는 쪽과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가진 뒤에 보내는 쪽 중에서

더 아픈 쪽을 고르라면....

(두 가지 모두 심장을 쥐어짜는 아픔이지만.... )

내 경험상 나는 전자 쪽이 더 아팠던 것 같다.


아침까지 '이따가 만나~'하고 헤어진 엄마가 오후에 병원  영안실에 누워 계셨다.

따뜻하던 엄마의 얼굴에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엄마는 이따가 만나자는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그렇게 허무하게 가족의 품을 떠나셨다.

그때 당시 나는 이 거짓말 같은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허망하게 엄마를 보내고 나는 '엄마 없는 아이'가 되었다.


그 후로 한참의 시간을 보낸 후에 아빠가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아빠는 힘든 수술도 아프단 말씀 한마디 없이 받으시면서 이겨내려고 애쓰셨다.

너무나 간절히 신께 빌었다

제발... 아빠를 이렇게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그런데 신은 내 편이 아니었나 보다.

아빠는 수술 후 1년 만에 다시 재발되었고 이번엔 척추를 타고 뇌까지 전이되어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아빠는 삶에 대한 미련을 놓아버리셨고 모든 치료를 거부하셨다.

 마지막엔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셨다.

초점 잃은 눈으로 "누구여..??" 할 때 그 착잡함은 어떤 표현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아픔이었다.

아빠가 내 곁을 떠나셨다고 생각하지 않고 엄마 곁으로 가신 거라고 생각하는 게 그나마 마음의 위안이 되어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아파서 고통스러워하시던 아빠가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그 또한 위안이었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40년의 인생 중에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이다.

 

얼마 전 아빠를 만나러 납골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늘 그렇듯 아빠의 사진을 보니 눈물부터 나왔다.

예전에는 아이가 놀랄까 봐 애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피하면 그때서야 아빠하고 대화를 하며 하염없이 울다 돌아오곤 했었다.

그런데 이제 엄마의 슬픔을 공감할 줄 아는 아이에게 엄마의 눈물을 굳이 감추고 싶지 않아서  혼자 있을 때처럼 울기도 하고 아빠와 대화를 했다.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아이가 소리 없이 다가오더니 나를 꽉 안아주었다.

말없는 위로가 그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를 통해 배웠다.

"엄마, 외할아버지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어서 슬픈 거지? 그래서 울었지? 내가 생각해 봤는데 갑자기 엄마나 아빠를 다시는 못 보게 되면 나도 너무 슬퍼서 엄마처럼 막 눈물이 날 것 같아. 엄마 많이 슬프겠다.

나중에 오래 나랑 살다가 하늘나라 가서 그때 할아버지 실컷 만나.

오늘은 우느라 힘들었으니까 내가 안마해줄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가 말해 주었다.

평생 엄마랑 살고 싶어서 과학자가 되어 죽지 않는 물약을 개발한다던 녀석인데 이제  제법 현실성이 생긴 것 같다.

너의 위로가 참 많은 힘이 된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엄마도 가끔 울고 싶을 때가 있어.

가끔 엄마가 갑자기 울거든 조용히 방문 닫아주고 엄마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좀 줄래?

그렇게 조금씩 타인의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연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