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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 여행을 망쳤던 또 다른 주범, 스콜

열여섯 번째 이유

by 포그니pogni


스콜(Squall)


동남아 여행을 준비하면 가장 걱정되는 게 무엇일까? 일단 음식은 한국에서도 동남아 음식점을 쉽게 접할 수 있어 이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아무래도 날씨가 가장 걱정이지 않을까?


일단 동남아는 크게 '건기와 우기'로 나뉘어 있어 우기 시즌에 방문하지 않는다면, 웬만하면 날씨 때문에 큰 곤란을 겪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다. 나트랑 여행에서 하루 종일 비와 강한 바람을 퍼붓는 스콜을 만나기 전까지 말이다.


우리나라 소나기처럼 동남아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스콜'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스콜”은 갑작스럽게 강한 바람이 불며 짧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는 기상 현상을 말해요. 주로 열대 지방의 늦은 오후에 발생하며, 몇 분에서 수십 분 정도 지속되죠. (출처 : 위키피디아)


내가 아는 스콜은 짧은 시간 동안 강하게 퍼붓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화창해지는 그런 자연 현상이었다. 이전에 약 2주 동안 태국 - 싱가포르 - 말레이시아 배낭 여행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만났던 스콜은 위 정의에 부합했다.


그런데, 베트남 나트랑 여행에서 만난 스콜은 마치 태풍처럼 긴 시간 동안 강하게 비와 바람을 뿌려 여행을 망치는 또 하나의 주범이 됐다. 기후변화로 인하여 지구가 많이 아픈가 보다.


어쨌든 늦은 오후도 아니고 하필 오후 12시부터 오후 4~5시까지 도저히 우산을 들고 돌아다니기 버거울 정도로 비를 뿌려대고 있으니, 빈펄섬에서 계획했던 빈원더스에도 가지 못했고 시내 마지막 날 0.5박 일정 완전히 망쳐버렸다.


여러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많았는데, 날씨까지 이런 식이니 출장 아닌 여행으로 해외에 와서 그렇게 짜증을 냈던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SAM_3365.JPG 말레이시아 '말라카(Melaka)'의 밤

개인적으로 10년 전, 말레이시아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남부 도시 '말라카(Melaka)'에서 만났던 스콜이 기억에 남는다. 스콜의 사전적 정의에 딱 들어맞았으며, 뜨거웠던 아스팔트도 식혀주고 동남아 여행의 운치를 더해주는 멋진 순간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오후 늦게 스콜이 찾아오고, 말라카에서 숙박했던 게스트하우스 테라스에서 편의점에서 사 온 13도짜리 소맥을 마시는 것 같은 짙은 농도의 Strong Beer를 한 캔 마시면서 스콜을 감상하는 경험은 낭만 그 자체였다.


그게 낭만적이었던 이유는 계획했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남은 휴식 시간에 비를 뿌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냐짱에서는 당시 하루 종일 빈원더스에서 무얼 하고 놀지 계획을 다 마쳤는데 스콜 때문에 아예 돌아다닐 수조차 없게 됐으니 그야말로 망연자실했다.


또한, 전체 여행의 마지막을 꽤 근사하게 마무리하고자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려고 했는데, 역시 비로 인하여 숙소에 있다가 참다 참다 쇼핑몰로 갔으니 썩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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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펄섬에서 빈원더스 일정을 통째로 날렸던 오후, 하루 종일 객실에 틀어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를 맞으면서 객실 풀장에서 수영도 하고, 들어와서 맥주도 마시고, 과일도 먹는 등 아무리 호캉스를 즐기고 있어도 스콜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후 3~4시 즈음이라도 흩뿌리는 비가 멈췄으면 빈원더스로 바로 달려갔을 텐데, 야속하게도 오후 6시에 가까워져서야 끝이 났다. 그래도 하루 종일 객실에만 머물기에 시간이 아까워 밤이 찾아오자 빈펄 하버라도 다시 달려갔던 것이다.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여유를 갖는 것도 물론 충분히 낭만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보통 동남아에 오면 짧고 굵게 일정을 계획하는데, 그야말로 이런 조건 하에서는 불청객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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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날 오후에도 0.5박 숙소에 체크인을 마치자마자 불청객이 찾아왔다. 어쩜 마지막날까지도 이럴까? 전날에도 객실에 하루 종일 있었는데, 도저히 좀이 쑤셔서 객실에 있을 수가 없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역시 멈추지 않던 스콜. 그렇게 그랩 택시를 불러 시내 쇼핑몰로 이동했다. 그런데, 쇼핑몰에도 공실이 많았던 것은 함정 카드. 그나마 맥도널드와 그 안에 있던 커피 전문점의 아보카도 커피가 그 일정을 살렸다고 해야 할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 역대급으로 많았던 여행지 냐짱. 그랬다, 뭐가 안 되려고 하니 날씨까지 최악이었던 그날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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