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이유
보통 나트랑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귀국 편은 늦은 밤 혹은 새벽 시간대 비행기가 많다. 그래서 냐짱 시내에서 가성비 좋은 숙소를 찾아 0.5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도 돌아가는 항공편이 밤 12시였기 때문에, 빈펄 럭셔리(Vinpearl Luxury) 리조트에서 출국일 체크아웃을 마치고 시내로 돌아와 0.5박 숙소로 유명한 나트랑 버고(Virgo) 호텔에서 쉬었다가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시내에서 뭐 해야 하지?
이것이 바로 가장 큰 숙제였다. 이미 시내투어도 마쳤고, 웬만한 명소는 여행 1~2일 차에 다 돌아다닌 것 같다. 사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마지막 날 0.5박 일정을 어떤 걸로 채우냐가 큰 숙제 중에 하나였다.
"ㅇㅇ아, 마사지받고 카페에서 쉬고 짝퉁 쇼핑하다 보면 0.5박 금방이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오고서 주변 지인들과 여행 후기를 이야기하며,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출국일 전까지 일과가 마사지받고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짝통 쇼핑을 하고 여기에 물놀이가 주를 이뤘기에 솔직히 이야기하면 마지막 날 시내를 돌아다니는 게 재미없었다.
즉, 할 게 너무 한정되어 있었던 베트남 0.5박 나트랑 여행 일정이었다는 이야기다.
쇼핑몰은 공실이라서 구경거리가 없고, 박물관이나 미술관 같은 문화 예술 공간도 거의 전무했으며, 냐짱 백사장도 살고 있는 부산 바다보다 더러운 것 같아 매력이 없었다.
마지막 일정, 나는 뭘 했을까? 시간 때우는 것이 일이었던 나의 0.5박 여정 목록은 아래와 같다.
빈펄섬에서 시내 0.5박 숙소 이동
LA NHA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 (쌀국수)
도떼기시장 그 자체였던 CCCP 커피 방문
도저히 살 게 없었던 시내 짝퉁 가게 쇼핑
공실 가득 쇼핑몰 탐방 (빈컴플라자 / AB 센트럴몰)
강력한 스콜로 인하여 일정 잠시 중단
어쩔 수 없이 침향탑 주변 냐짱 해변가 산책
제일 화가 났던 것은 짝퉁이 지배한 도시라 쇼핑몰에 쇼핑거리가 없었고, 들어가는 시내 짝퉁 가게에서 판매하는 것도 다 비슷했다. 즉, 살 게 없었다.
옷을 하나 구매하긴 했는데, 세탁기 한 번 돌려보니 역시 짝퉁은 티가 난다. 이래서 나는 웬만하면 정품을 사는 편이다.
아내랑 아무 목적 없이 시내를 계속 돌아다녔다. 해외여행을 왔는데, 이렇게 재미없게 시내를 돌아다녔던 적은 역대급이라고 할 정도로 거의 처음이었다.
게다가 날씨까지 안 도와줬다. 전날에도 스콜이 심해 놀이공원을 못 가서 숙소에만 있었는데, 이날도 한낮에 스콜이 발생해 숙소에만 있어야 할 판이었다. 밖이 재미없어도 또 숙소에만 있는 것도 싫었기에 어쩔 수 없이 택시 타고 쇼핑몰에 가고 그랬다.
이미 빈펄 럭셔리 숙소에서 방갈로 호텔 마사지샵에서 1일 1 마사지가 포함된 패키지를 예약했고, 마사지를 계속 받았기에 굳이 마사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카페는 차라리 스타벅스에 있는 편이 낫다 싶었다. 마치 우리나라 개인 카페를 일회성으로 가고 안 가는 것처럼 내가 방문했던 카페들은 커피가 맛있지도 않고, 분위기가 이국적이지도 않고, 매력도 없었다.
그리고 짝퉁 쇼핑은 시내투어를 했을 때, 이미 담시장에서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 게다가 새로 생긴 빈펄 하버 쇼핑몰에서도 짝퉁이 가득했기에 정말 메리트가 1도 없었던 나트랑 시내 여행이었다.
내가 냐짱에서 뭘 했어야 했을까? 이미 호캉스 빼고 별로인 곳으로 내가 '낙인'을 찍어버렸기에 더 흥미가 없었던 것일까? 돈이 아까운 것을 떠나서 시간이 무척 아까웠던 마지막 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