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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Mar 02. 2024

좀 추워도 괜찮아요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아버지 제사에 갔다. 산사 뒤편으로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산등성이에 보였다. 요사채를 지나 대웅전 가는 길에는 속절없이 홍매화가 피어있었다.

 대웅전의 쪽문을 열자 냉기가 느껴진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품고 있던 한기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전기난로를 피우고 절을 해도 달라붙은 번뇌처럼 떨쳐낼 수 없다. 구순의 어머니는 연신 절을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하얗게 뿜어져 나온 입김이 오늘의 제를 마주하는 어머니의 마음 같다. 저 정성으로 냉기를 녹여내고, 남편에게 내어 줄 따순 자릴 만들고 있을게다.

 자리 배석은 불심의 깊이로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불심이 깊을수록 불상에 가깝고, 믿음이 없을수록 전기난로에 가까웠다. 신도 한 분이 법요집을 나눠주고 페이지를 알려주자 독경소리가 합창으로 들린다. 따라 읽다 보니 나도 모르게 불심이 생겨난듯하다. 영가를 부르는 큰스님의 독경소리에 맞춰 절을 하고 천장을 올려다본다. 기둥과 대들보가 선명하게 채색되어 현란하다. 푸른 용이 날아오를 기세다.

 불상과 마주하자 묘한 기분이 든다.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주하는 느낌, 상징이 깃든 사물을 엿보는 기분이랄까. 마주하면서 갖게 되는 관계의 언어들이 떠올랐다. 구원의 시간과 자비의 소리가 그 속에 깃들어 있을 것 같았다.


 큰 스님은 화엄경을 마지막으로 염불을 마쳤고, 제사를 마치는 절을 하고 고개를 들자 추위를 못 이긴 용 한 마리가 서까래로 내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밖으로 나오자 오히려 따뜻했다. 저온 저장고 속에서 나 온 기분이라고 대웅전에 용문신한 온풍기를 기증해야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한마디 한다.

" 대웅전이 따뜻하면 불심이 상해서 안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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