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보구의 빨간 벙커 )
지난 일요일에 열린 `코오롱 제66회 한국 오픈`과 `BC카드, 한경 레이디스컵 골프대회`는 승부에 `운`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준 골프대회였다.
우정힐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코오롱 제66회 한국 오픈`에서는 김민규 선수가 재작년에 이어 또다시 우승했고, KLPGA가 주관한 `BC카드, 한경 레이디스컵 골프대회`에서는 박현경선수가 윤이나선수와 4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했다. 이 두 명의 우승자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팽팽하던 승부의 균형추를 기울게 하는 것은 `한 톨의 쌀`이었다. 그것은 `행운`이었다.
먼저, 김민규 선수의 우승에 방향을 튼 행운의 여신은 우정힐스의 시그니처 홀로 불리는 PAR3 13번 홀에 나타났다. 물 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섬 같은 이 홀은 200M가 넘고 하얀 벙커가 꽃잎처럼 그린을 에워싸고 있다.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는 홀이다. 두 타차의 선두를 유지하고 있던 김민규 선수가 친 볼은 낮게 날아갔다. 볼은 왼편으로 날아갔고 물장구를 치고 튀더니 이내 사라졌다. 카메라에 물의 파장이 넓게 퍼지는 장면이 비췄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투샷 스윙`(한 홀에서 선두로 달리던 선수가 보기를 하고 따라오던 선수가 버디를 해 순위가 뒤바뀌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해설자는 다음 샷을 해야 할 곳을 설명하고 있었다. 잠시 후 그린으로 내려오는 선수들을 향해 진행요원이 사인을 보내는 것 같았고 중계진들은 김민규 선수의 볼이 러프에 살짝 걸려있다고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김민규 선수는 자신의 볼을 확인하고 그다음 어프로치는 홀컵에 가까이 붙였다. 파로 홀을 마무리한 김민규 선수의 얼굴은 변화가 없었지만 알 수 없는 자신감이 깃든 것 같았다.
박현경 선수와 윤이나 선수의 연장 4차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승부는 두 번째 샷에서 갈렸다. 윤이나 선수보다 드라이버 거리가 짧은 박현경 선수는 우드를 들고 먼저 두 번째 샷을 했다. 화면에는 남은 거리가 240M가 남았다고 표기되어 있었다. 박현경 선수가 친 볼은 그린 주변 페어웨이에 떨어지더니 첫 번째 바운스가 약간 높이 솟구쳐 앞으로 떼구르 굴러서 그린까지 올라갔다. 그린까지의 거리가 더 짧게 남았던 윤이나 선수의 샷은 그린 주변의 경사면을 못 오르고 프린지에 떨어졌다. 박현경 선수의 이글 퍼트가 부담스러웠는지 윤이나 선수는 어프로치가 정교하지 못했고 버디 퍼트마저 홀컵을 돌아 들어가지 않았다. 박현경 선수는 이글퍼트를 홀컵에 붙였고 짧은 버디로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 경기의 승자가 된 김민규 선수는 디 오픈 출전 자격을 얻게 됐고, 박현경 선수는 시즌 2승을 달성했다. 김민규 선수가 낮은 탄도로 홀을 공략하려고 했을 때 바람이 어디로 불었는지 물의 표면장력이 어떠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박현경 선수가 240m의 우드샷을 쳤을 때 볼이 떨어진 지첨이 경사면이었는지 특별히 단단한 지면이었는지 역시 알 수 없다. 물의 요정이, 흙의 정령이 이 승부를 이끌었는지 알 수 없다. 단지 행운이 따르는 느낌은 들었고 그것 역시 추측할 뿐이다.
누군가 승리의 방정식을 만든다면 거기엔 반드시 땀과 노력, 실력의 상수에 `운`의 변수를 더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