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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안테스 Sep 19. 2023

믿지 말 걸 그랬어요

아들의 편지

" 아들! 또 어디다 정신을 빼놓고 있어? 오늘 학교 일찍 가야 하는 날이라고 했잖아!"

현관문 앞에서 멍하니 서있던 예준이는 아버지의 호통에 놀라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에요. 아빠. 준비해서 가야 하는 것이 있는데, 갑자기 기억이 안 나서 그랬어요"

아버지는 한 소리 하시려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다, 이내 내가 먹은 아침상을 치우는

일을 하시기 시작했다. 출근길이 더 지체되면 지각을 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셨는지

이내 상을 치우는 손길이 빨라진다.

우산함에서 하얀색 우산을 하나 꺼내 들고, 현관문의 손잡이를 돌린다.

"예준아... 오늘 어떤 날인지 알지? 오늘은 학교 끝나고 어디 가지 말고 일찍 와라"

"네, 알겠어요"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아침에 비가 오고 있어, 우산함을 열었는데 하얀색 우산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비를 좋아한다. 비가 오는 날에 걸어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비가 오면 그렇게 온 동네를 걸어 다니다 옷이 흠뻑 젖어 들어오기 일쑤였다.

"준! 개구리도 아니고, 무슨 애가 비만 왔다 하면 그렇게 좋아하니?

자! 이거 받아. 우산이 꼭 헬멧처럼 생겼지? 엄마가 특별히 주문했다.

헬멧처럼 생겨서 옆 부분은 어깨까지 쏙 들어가고 앞부분은 옆 보다 짧아서

앞은 잘 보일 거야. 이제 비 오는 날 걸어 다녀도 어깨가 다 젖어서 들어오지는 않겠지?"

"와~ 엄마. 너무 마음에 들어요. 이런 우산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내 특별히 우리 아들을 위해 열심히 인터넷 검색 좀 했지."

우산함을 열었는데, 하필 그 우산이 보였다.

그날의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떠 올라,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고

결국 아버지한테 한소리를 들은 것이다.


학교에서도 집중이 안된다.

하루종일 정신이 나간 것처럼, 그렇게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가

결국 담임선생님께 불려 가서 잔소리를 듣고 말았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갈 시간이 되어 갈수록 마음이 진정이 안된다.

두려운 건지, 설레는 건지... 알 수 없는 마음에 하루 종일 혼란스럽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빠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으신다.

"우리 예준이 왔구나... 평소에 오는 시간보다 일찍 온 거 보니

오늘은 어디 들렀다가 오지 않고 바로 왔나 보구나?"

"아빠는 내가 뭐 매일 늦은 것처럼...., 오늘 같은 날 늦으면 안 되잖아.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빠가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보신다.

"그래, 기다릴 테니. 어서 가자꾸나. 저기 네가 갈아입을 옷 꺼내놨으니,

어서 갈아입어. 오랜만에 보는 건데 이쁘게 하고 가야지"

나는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을 가지고 조용히 내 방으로 가서 갈아입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참 경치가 좋다.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아 그런지 시원스럽게 차가 달린다.

올림픽 대로를 달리 던 차가 춘천방향으로 고속화 도로를 타자 더욱 속도를 낸다.

1년 만이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어느새 1년이 지났다.

양평 000 공원... 목적지의 정문이 보인다.

정문을 통과해 잘 꾸며진 공원을 한참이나 오르고서야 아빠는 한 건물 앞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예준아... 안 막히고 왔다. 그렇지. 엄마 기다리겠다. 얼른 들어가자"

"네, 아빠. 그런데 저 잠시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그래. 일층에 화장실이 있었던 것 같구나. 같이 갈까?"

"아니에요. 저도 어디 있는지 알아요. 금방 갔다 올 테니 아빠 먼저 가있으세요"

아빠가 물 끄러니 내 눈을 쳐다본다.

이내 알겠다는 듯이 늦지 말라는 당부를 하시고 돌아서서 2층으로 가는 계단을

향해 걸어가신다.


1층 화장실 거울을 보며 심호흡을 한다.

'가장 멋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자. 할 수 있지. 절대로 울면 안 돼. 알았지.

그럼 엄마도, 아빠도 속상하실 거야'

거울 속의 나를 보면 다짐에 또 다짐을 한다.

2층으로 올라가니 저 쪽 끝에 아빠가 서 계신다.

조심히 아빠 뒤로 가서 손을 잡는다.

"아빠. 엄마는 그대로네. 그렇지. 여전히 이쁘고..."

"그러네. 엄마 미모는 여전하구나. 오늘 예준이 본다고... 그런지.

더 이쁜 것 같구나"

아빠와 나는 케이스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 사진을 말없이 쳐다본다.


오늘은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급하게 수술날짜가 잡히고 나한테는 해외 연수를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근무하시던 대학교에서 교환연구원으로 선발되어서 해외로 3개월간

연수를 가신다고 말이다.

"예준아... 그만 화 풀면 안 되겠니. 정말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엄마가 꼭 가야 한데.

나도 우리 준이 때문에 안 가려고 했는데, 마침 엄마 대신에 가려고 했던 분이

다치셔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됐단다.

딱 3개월만 참으면 되니까... 응... 이번 한 번만 예준이가 이해해 주면 안 될까"

한동안 시위하듯 엄마랑 말을 안 했다.

묻는 말에 단답형으로 "예" "아니요"라고만 했다가, 아빠한테 제대로 혼이 난 적도 있다.

"엄마... 그러면 학급발표회 전에는 꼭 돌아오는 거지?

담임 선생님이 내가 쓴 글이 최종 선정이 돼서, 학부모 참관일에

부모님들 앞에서 발표하라고 하셨단 말이야..."

"그럼... 엄마가 꼭 그전에는 돌아올게. 우리 예준이 이제 마음 좀 풀렸어?"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헝클어트린다.

"됐어... 어차피 내가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거잖아.

엄마한테 중요한 일인 거잖아... 나 만큼..."

"말도 안 되지. 세상에 우리 예준이만큼 중요한 일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이지.

우리 예준이... 외할머니 말씀 잘 듣고.... 공부는... 음 안 해도 되니까,

절대로 절대로 아프면 안 된다. 알았지"

이내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뭐 어린앤가... 걱정 마. 잘 먹고. 게임도 조금만 하고, 공부도 알아서 할 테니.

엄마야 말로 아프지 말고. 거긴 간호해 줄 사람도 없잖아"

"ㅎㅎ 우린 예준이 장가가도 되겠는데. 다 컸네. 엄마 안심하고 갖다와도 되겠네"

"꼭이야. 무조건 학부모 참관일에는 돌아오는 거야.

엄마 오면 아빠랑 외할머니랑 다 같이 오는 거야. 알았지"

"그럼. 약속할게. 우리 다 같이 예준이 발표하는 거 들으러 가야지"

그렇게 돌아서는 엄마에게 외친다.

"뭐... 굳이 선물을 사 온다면 받아는 줄게~"

그렇게 엄마는 해외로 연수를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

엄마가 병원에 있는 동안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머물면서 나를 챙겨주셨다.


엄마랑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를 주고받고, 통화를 하면서 지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고, 엄마가 돌아오기로 약속한 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아빠. 나도 공항에 갈레요. 이번주에 엄마 돌아오는 날...

그런데 엄마가 어제부터 답장도 안 하고, 전화도 안 받는데 아빠한테는 연락이 왔어요?"

"어제부터 내가 보낸 카톡의 읽었다는 표시 1이 사라지지를 않아요"

아빠가 머뭇거리더니 나에게 말한다.

"아마 돌아올 준비 하느라 정신이 없을 거야. 그리고 거기는 현지 시간으로 새벽이고,

전날에 돌아올 준비 하다고 엄마도 일찍 잠이 들었겠지"


다음날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멍하니 창밖과 핸드폰 카톡에 사라지지 않는

1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예준아~~ 담임선생님이 너 얼른 교무실로 내려오레"

반장이 다급하게 교실문을 열고 들어와 나에게 말한다.

"왜? 무슨 일 있으시데?"

"나도 모르지. 교무실에서 청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담임선생님 전화를 받으시더니

너 데리고 오라고 하는데"

교무실로 가는 중에 불현듯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교무실로 들어가니 담임선생님이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예준아. 아버지께서 데리러 오 실 테니, 선생님이랑 같이 나가자꾸나"

"네! 아빠가요? 왜요? 제 가방은요?"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실 거야. 가방은 선생님이 챙겨 놓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무엇인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지만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왠지 더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내 아빠차가 학교에 도착했다.

차가 출발하고도 우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엄마 도착해서 데리러 가는 거야?"

"응, 엄마 보러 가는 거야"

아빠는 목이 잠겨있는 듯, 헛기침을 연신 했다.

엄마가 오기로 약속한 날보다 빠르다.

혹시 돌아오는 날이 당겨져서 엄마랑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인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엄마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내 마음이 들떴다.

"아빠. 여기 어디야? 공항 아니잖아.

병원이잖아. 왜 여기 온 거야"

"예준아... 아빠 말 잘 들어. 이제 아빠랑 엄마 보러 갈 거야.

그런데 엄마가 많이 아파... 사실은 연수를 받으러 간다고 했지만,

사실 엄마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어.

예준이가 너무 걱정할까 봐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단다. 미안하다 예준아."

나는 그날 엄마를 만났다.

병상에서 만난 엄마는 무척 여위어 있었다.

울며 불며 소리치고, 두고두고 후회할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그날이 내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다.


1년 만에 만난 사진 속의 엄마는 예전의 그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아빠가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한다.

"예준아... 사실은 너한테 줄 게 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매일 너한테 편지 쓰듯이 일기를 썼단다.

네가 보면 더 마음 아플까 봐 엄마가 너한테 주지 말고 화장할 때

태우라고 했는데... 차마 그럴 수가 없더구나. 이제 시간이 지났으니

너한테 주마"

아빠는 엄마 사진이 들어있는 봉안함 문을 열고, 엄마 사진 액자 밑에 있는

노트를 꺼내 건네주셨다.


책상에서 숙제를 하고 있다가 자꾸만 책상 모서리에 있는 노트로 눈길이 간다.

아빠에게 건네받은 엄마의 일기는 일주일째 저 자리에 있다.

그 안의 내용을 도저히 볼 생각이 자신이 없다.

혹시나 내가 엄마를 더 힘들고 아파했을까 봐,

나의 철없는 행동이 저 일기 속에 고스란히 쓰여있을까 봐....

차마 일기를 꺼내 읽지 못하고 있다.

창밖에 내 마음을 아는지 소리 없이 비가 내린다.

책상 모서리에 있는 일기를 들어 첫 장을 넘겨본다.

'사랑하는 우리 예준이에게'

붉어지는 눈시울에 힘을 준다. 다짐을 하듯 입술을 깨물고 첫 페이지를 넘긴다.


일기는 온통 나에 대한 얘기로 가득하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안함.

혹시 나중에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엄마를 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에서의 고통에 대한 얘기는 어디에도 없다.

내가 아침에 잘 일어났는지, 밥은 먹었는지,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눈뜨고 잠들 때까지 온통 내 얘기뿐이다.

일기 제 마지막장은 내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만나기 전날에 쓴 편지였다.


'우리 예준이... 내일이면 엄마를 만나러 오고 있겠구나.

얼마나 놀랐을까... 우리 아기. 엄마 얼굴 보면 속상할 텐데...

아빠한테 부탁해 깨끗한 환자복도 갈아입고,

얼굴도 최대한 아픈 사람 같지 않게 꾸며달라고 했는데도... 우리 아기. 많이 놀라겠지.

미안해. 예준아. 엄마가 거짓말해서...

우리 예준이 속이고 연수 간다고 거짓말해서.

우리 예준이가 처음으로 양말을 신던 날이 생각난다.

실패를 거듭하며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는 양말과,

세상 진지한 너의 표정에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대견한 마음 한편에 밀려들던 아쉬움.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이 하나씩 줄어들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단다.

예준이가 스스로 하나씩 해내던 그 순간이

엄마에게는 가장 기쁘고도 슬픈 순간이었단다.

어디까지 챙겨야 하나 하다가, 바라는 것이 줄어들고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없어져간다.

더우니까 떨어지라는데도,

내 등에 착 달라붙어 있는 우리 예준이.

더 이상 엄마의 온기를 우리 아가에게 전해줄 수가 없겠구나.

예준아... 너를 만나고 그 어느 순간 기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다.

너의 처음을 함께 하였지만,

앞으로의 너의 모든 처음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구나.

사랑한다. 예준아...'


오늘은 6학년 학부모 참관수업일이다.

초등학교의 마지막 참관수업이 될 거다.

일주일간 해외 출장을 가신 아빠는 오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 공개수업이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교실 뒤는

친구들의 엄마, 아빠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담임선생님이 공개 수업에 참관하러 오신 부모님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공개수업이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발표와 조별활동이 시작되면서 학급은 이내 활기가 넘쳐흐른다.

"자... 오늘은 마지막 공개수업 일정입니다.

저번 시간에 선생님이 '믿음'이라는 주제로 글쓰기 한 것 기억나지요"

담임선생님의 말에 조별활동 정리를 하던 친구들이 일제히 대답한다.

"예. 선생님!"

"자.. 이제 오늘 공개수업 마지막으로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해요.

자 한 명씩 나와서 발표를 해보겠습니다"

친구들이 한 명씩 나와 발표를 시작했다.

믿었던 친구가 거짓말로 자신을 속인 일, 의심받는 상황에서 끝까지 나를 믿어 주신 부모님 이야기...

각양각색의 친구들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내 발표차례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이 커진다.

사실 발표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발표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지만

오늘만은 피하고 싶다.

담임선생님이 저번 시간에 글쓰기를 하면서

오늘 공개수업일에 발표를 할 거라고 했으면 난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자.. 그럼 오늘의 마지막 발표는 예준이구나. 자~모두 박수!"

친구들의 박수를 받으며 난 교실 앞으로 걸어 나갔다.

교탁 위에 올려진 종이를 한번 쳐다본다.

그리고 교실 뒤에 서 계신 외할머니를 바라본다.

'헉... 아빠가 왔구나. 출장 때문에 오기 힘들지도 모른다고 하셨는데...'

어린 내가 언뜻 보기에도 아빠는 서둘러 온 느낌이 확연하다.

발표할 종이를 두 손으로 집어 올린다.

좀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몇몇 친구들이 웅성거린다.

담임선생님을 한번 쳐다봤더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신다.


혹시 외할머니와 아빠가 속상할까 봐 계속 망설여진다.

한참을 손에 쥔 종이를 쳐다보다 읽기 시작한다.


"제목, 믿지 말 걸 그랬어요.

당연하지 않은 것인데,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어요.

내가 부르기만 하면,

언제든 달려와 줄줄 알았어요.


당연할 것이라 믿었고,

반복되는 일상이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들...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당연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만

자격이 있나 봅니다.


PC방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게임하고 있을 때

엄마한테 전화가 걸려오면 받지 않곤 했습니다.

조금 더 놀고 싶은데... 얼른 들어오라고 잔소리를 할 테니까요.

예준~~

전화 왔는데 안 받아?

있다가 하면 돼.

왜?... 받아! 엄마 같은데...

있다가...

내가 하면 돼...


뭐가 그렇게 당당해.

있다가가 어딨어.

왜 항상 뒷전이야.


사랑의 크기만큼 서열을 매긴다면

엄마는 무조건 일등이다.

그러면 잘해야지?


그니까...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한테 난 항상 일등일 테니까.


그니까

나중에...

공부 안 해도

노력 안 해도

엄마 시험의 일등은 나니까.

그니까 나중에...

벼락치기해도 일등 하니까.


배시시 웃으며

등에 찰싹 달라붙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등 주니까.


친구들과 약속한 PC방에 얼른 가려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한다.

엄마가 이거 조금만 더 먹고 가야지 하면서

내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구이를 쳐다만 보고

후다닥 식탁에서 일어난다.


지금 안 먹어도

내가 언제든 해달라고 하면 먹을 수 있으니까...


언제나 그럴 줄 알았어요

사진 속 당신은 웃고 있습니다.

다 안다는 듯...

그러게 이놈아

해줄 때 받지.

해주고 싶어도 못해주잖아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때 미루고

안 받고 안 먹은 건 괜찮고.

챙겨주지 못하게 된 걸

아쉬워하는 듯합니다.


정말 그래?

나 안 미워?

뭘 믿고 그랬을까.

아니지. 확실히 믿는 구석이 있었지.

뭘 어떻게 해도 내가 뒷전이 안될 거라고.

항상 내가 일등일 거라고.

당신한테만은...


믿는 구석에 발등이 찍히고 알았다.

노력하지 않아도

항상 일등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조금만 일찍 알았어야 했다.

아주 아주 늦었더라도

내 곁에 있을 때 알았어야 했다.


믿지 말걸 그랬어요.

믿지 않았어야 했어요.

당연한 것들을 믿지 않았어야 했어요.

엄마가 해주던 것들이, 일상이

언제가 가능할 거라고 믿지 않았어야 했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알려주신 것 잊지 않을게요.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엄마.

이제 아빠랑 외할머니 절대로 믿지 않을 거예요.

내가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고,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절대로 믿지 않으려고요.

걱정하지 마요. 엄마.

엄마가 그랬듯 아빠와 외할머니....

항상 저한테 일등이 되도록 할게요"


글을 읽는 중반부터 아빠는 교실 사물함 뒤로 돌아서 계셨다.

그 어깨가 조금씩 떨리는 것을 보고, 순간 목이 메어왔지만

끝까지 글을 읽어 내려갔다.

저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엄마에게 약속하듯이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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