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새벽 5시에 일어나 이불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나서 잠시 가만히 앉아있었다. 익숙한 곳에서 마지막 날.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의 첫날을 맞이한 아침은 생각보다 멍한 상태로 시작했다.
8시가 되자마자 정신없이 이사 시작. 이미 짐을 싸놓은 상태가 많아서 짐이 다 나갈 때까지 베란다에 서 있었는데 자잘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연휴가 끝나면 온다던 가구가 갑자기 아침에 배송이 돼서 기사님과 통화를 하고 나니 집이 어느새 텅 비어버렸다.
짐이 다 내려가고 혼자 남은 나는 마지막으로 집을 둘러보는데 복잡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잘 갈무리하고 한 바퀴 잘 둘러보면서 마음속으로 너무 고마웠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마지막 '우리 집'과 그렇게 잘 인사했다.
비가 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진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집에 짐을 다 옮기고 나니 거짓말처럼 날이 좋아져서 살짝 허탈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적게 와도 비가 와서 패킹 작업이 훨씬 오래 걸렸었는데, 금방 날이 좋아지다니 참...
(뭔가 나올 때 비가 오고, 들어올 때 날이 좋아졌으니 내 마음과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_+;;)
짐을 다 넣어놓고 잠시 자리에 앉아 시계를 보니 12시. 이사하는 날은 짜장면이라는 국룰을 따르기 위해 짜장면을 시키고 혼자 이사해서 걱정이 된다며 먼저 새로운 집에 와서 자리를 지켜준 선영이와 잠시 앉아있었다. 배고픔과 부산스러운 그 정신없는 가운데 짐은 익숙한데, 집이 익숙하지 않은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싶어 좀 고민이 되었던 것도 같다.
짜장면에 탕수육을 거하게 먹고 선영이가 짐 정리하는 걸 도와주다 갔다. 짐은 산처럼 쌓여있는데 정리할 힘은 없겠다 싶어 좀 쉬려는데 가구가 들어오고, 설치 기사님들이 속속 방문하고 어느 정도 큰 것들이 마무리되니 7시. 들쑥날쑥 들어오는 가구와 사람들로 인해 짐 정리는 반도 못했는데 저녁이라니 정말 이사는 피곤한 일이 맞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혼자 이사하는 게 걱정이 되는 건지, 아니면 우리 집에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아는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전화가 오고, 혜미는 퇴근하고 맥주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혜미를 보고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혼란스러웠다는 걸 인식했던 것 같다.
모든 과정이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에서의 모든 시간과 과정이 생각이 나 갑자기 울컥. 아마도 이건 다 혜미 때문이다. 혜미는 가끔 의도치 않게 내가 숨겨둔 모든 감정을 건드리기도 하니까.
그래도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일 뿐, 후련함이 더 컸던 이사였기에 마음이 복잡했을 뿐 슬프지는 않았다. 물론 셋이 들어가 혼자 나와야 했고,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우리 집'이라는 공간이 없어져서 좀 서글프긴 하지만 다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이사가 나에겐 단순함이 아닌 결심이어야 했으니.
이제 진짜 내가 혼자 독립하고 시작하는 '내 집'
엄마가 옆에 있었으면 걱정을 하면서도 "잘해봐. 넌 잘할 거야."라고 말했을 것도 너무 분명해서 작은 공간이지만 이제 내 집이니 씩씩하게 지지고 볶고 즐겁게 살아보기로!
이 나이에도 처음 해보는 일이 수 없이 많은데, 그중 이사가 그랬기에 시작을 하기에 적잖은 고민이 많았고 겁도 많이 났었다. 그리고 이사를 결정하고 실행시켜 나가는 과정 중에서도 진짜 혼자 신경 쓰고 생각할 것들이 많아서 힘들었지만 해보고 나면 별거 아닌 것들이고 잘 결정한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집에서의 처음이 부족하더라도 시작하길 잘한 것 같아서, 우리 집에서 5년 동안 맘고생 하고, 내려놓고, 정리하고, 받아들이고 수 많이 느꼈던 감정들을 잘 봉합하고 과정들을 충실히 겪고 나온 것 같아 정말 고생했다 싶다.
이제 뒤돌아보지 말고 진짜 시작이니만큼 잘 헤쳐나가야지 :)
이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