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눈물이 났을까
추석날 저녁에 본가에서 저녁을 먹던 중 엄마한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까 차례 지내고 할머니한테 갔다 왔거든. 할머니가 너 보고 싶대."
"... 거짓말."
100세를 바라보는 할머니는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계신다. 내 반응에 옆에 있던 동생이 엄마 말을 거들었다.
"진짜야. 진짜 그렇게 말했어. 나도 들었어."
"할머니가 죽기 전에 초롱이 한 번 보는 게 소원이래."
"... 왜?"
할머니가 손녀 보고 싶은 게 이상할 일은 아닌데 적어도 나의 할머니는 그럴 분이 아니다. 딸만 내리 다섯을 낳은 큰어머니에 이어 엄마가 나를 낳자 할머니는 스물두 살 어린 며느리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이런 거 또 낳을 거면 나 부르지 마라."
엄마는 다행히 둘째를 이런 거 말고 저런 걸 낳았고 할머니는 이런 것과 저런 것을 대놓고 차별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할머니는 우리 남매를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게(동생) 더 이뻐. 저건(나) 정이 안 가."
그때 할머니를 싫어하겠다고 결심했다. 죽을 때까지 미워하겠다고.
그랬던 할머니가 나를 보고 싶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건 할머니 생각이니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할머니의 아들이라서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이틀 전 할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 다녀왔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할머니가 나를 알아보시기나 할까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병원 로비에서 큰어머니와 사촌 언니를 만났다. 코로나 검사를 하고 있는데 멀리서 큰 소리가 났다. 할머니를 실은 침대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할미, 할미 나 왔어. 잘 있었어?"
매주 면회를 온다는 사촌 언니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언니를 물끄러미 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할미, 초롱이 왔잖아. 보여? 할미가 보고 싶다 그래서 멀리서 왔어. 빨리 봐봐."
"할머니, 저 알아보시겠어요?"
할머니는 잠시 나를 보더니 언니에게 물었다.
"밤이(사촌 언니의 동생)냐...?"
"아니, 초롱이잖아. 초롱이."
옆에서 알려주지 않았다면 할머니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 같다. 4년 만에 만난 할머니는 주름이 많은 아기 같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할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면회 시간 30분이 금세 지나갔다.
"할미, 우리 갈게. 다음 주에 또 올게. 초롱이도 가야 해. 잘 가라 그래. 잘 가고 또 오라 그래."
내내 표정이 없던 할머니 얼굴이 아쉬움으로 가득해졌다. 병실로 돌아가면 언제 또 손녀가 올까 하염없이 기다리겠지.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할머니, 저 갈게요. 또 올게요."
툭하면 못된 말을 뱉던 사람. 우리 엄마 속을 자주 뒤집어 놓은 사람. 내가 평생을 미워한 사람. 할머니를 향한 그런 마음이 순식간에 눈 녹듯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또 오겠다는 말도 지킬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눈물이 났던 건 내가 싫어했던 할머니에게서 아빠의 얼굴이 보여서였다. 지금 아빠가 할머니를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나도 언젠가 내 부모를 그렇게 바라보는 날이 오겠지. 그때 나는 또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하게 될까. 돌아오는 길, 기차를 기다리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고 다짐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