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우리가 바로 그 1위
야구 입문 3년 차를 보내고 있다. 야구에 이응도 모르던 내가 남편 따라 야구장에 치맥 먹으러 갔다가 봄, 여름, 가을 저녁에는 야구를 보는 생활을 와, 벌써 그렇게 됐다. 나는 지금도 문득문득 궁금해서 묻는다.
"여보, 난 야구 안 볼 때는 원래 이 시간에 뭐 했어?"
"책도 보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뭐 이것저것 했지."
"근데 어쩌다 이렇게 됐어?"
"다 내 잘못이지..."
남편은 하나도 반성하지 않는 얼굴로 반성을 한다.
한화이글스는 올해 새 구장으로 옮겨 시즌을 보내고 있다. 올해 홈 개막전을 보러 갔을 때도 별 감흥은 없었는데 나는 새집의 번듯함보다 우리 팀의 성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엄격한(?) 팬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순위는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기만 했다. 기어이 10위에 안착했을 때 또 한 번 다짐했다.
'이놈의 야구, 내년에는 끊어야지...'
야구팬들은 대부분 비슷한 것 같은데 응원하는 팀이 잘하면 보통 좋아하기보다 고개를 갸웃한다.
'왜 저러지?'
내 고개가 갸웃거리기 시작한 게 4월 말이었던가. 2연승, 3연승일 때만 해도 그동안 너무 진 게 미안해서 조금 이겨주나보다(?) 했다. 그럴 수 있지. 그래도 양심은 있네. 그러다가 5연승? 어? 6연승? 뉴스를 보는데 화면 하단에 한화이글스 연승 자막이 흘렀다. 그치, 뉴스 나올 일이지. 하지만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러지?
친구를 만나기로 한 어느 저녁, 약속 장소로 가면서 점수를 보니 역시나 지고 있었다.
'드디어 오늘이구나.'
이기면 단독 1위로 올라서는 날이었는데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혹시나 1위가 된다면 집에 안 들어올 거라고, 나를 찾지 말라고 큰소리를 쳤는데 한화는 나의 외박을 원치 않는 것 같았다. 친구와 한참 먹고 떠들다가 다시 검색을 했는데... 역전이 돼 있었다.
"와, 언니 축하해요!"
한화가 야구를 잘해서 내가 축하받는 날이 올 줄이야. 그날 한화는 삼성을 10대 6으로 이기고 단독 1위에 올라섰다.
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운을 위해 쓰레기를 줍는다는 얘기를 좋아한다. 한화의 연승을 위해 내가 공을 던지거나 방망이를 휘두를 수는 없으니 착한 일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요즘 분리수거를 더 열심히 한다. 지난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빈둥대다가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단독 1위 한화이글스가 이렇게 게으르면 안 되지(?)!"
이것이 국뽕보다 무서운 야구뽕일까.
야구 없는 심심한 월요일이 지나가고 다시 화요일이 왔다. 내년에 야구 끊겠다는 다짐은 이미 취소다. 이겨도 져도 좋으니 다치지만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