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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똥(손)의 사정

다 이유가 있어요

by 초롱


요리 못하기로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내가 1년에 꼭 한 번 주방에 혼자 서는 날은 남편 생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날이 돌아왔다. 벌써 결혼 7년 차, 그러니까 요리 똥손이 끓이는 일곱 번째 미역국 되시겠습니다.

못 일어날까 봐 잠을 설치다 눈을 뜨니 알림 울리기 5분 전, 5시 55분이었다. 조용히 침대에서 빠져나와 주방 불을 켰다. 창밖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 난 왜 요리를 못하는 걸까. 엄마 사위는 전생에 약간 죄를 지은 걸까. 엄마가 와서 좀 끓여주면 안 될까.


나는 미역국 킬러이지만 남편은 소고기미역국을 좋아하기 때문에 1인분만 끓인다. (<치킨 좋아하세요?> 참고) 전날 불려 놓은 미역을 조물조물 씻어서 물기를 꼭 짜고 쌀뜨물도 야무지게 받았다. 조그만 냄비를 올리고 가스불을 켰다. 참기름을 두르고 미역을 넣고 볶기 시작했다. 끓으면 국간장이랑 액젓 조금 넣고 팔팔 끓이다가 소고기 넣으면 완성. 신나게 미역을 휘젓다가 혹시 빠진 게 없나 싶어서 네이버에 '소고기미역국 끓이기'를 검색했다. 첫 줄은 이랬다.


소고기는 핏물을 제거하고 참기름에 볶습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네이버도 항상 정확한 건 아니구나. 소고기를 왜 볶아. 하긴 뭐 기계도 틀릴 수 있지. 그리고 계속 미역을 볶았다. 다 볶고 쌀뜨물을 부으려는데 뭔가 쎄했다. 정말 네이버가 틀린 걸까...? 정말로...?

레시피 두 개를 더 찾아보고 패배를 인정했다. 볶은 미역을 허둥지둥 그릇에 덜어놓고 시키는 대로 소고기를 볶았다. 쌀뜨물을 붓고 천천히 끓는 미역국을 보면서 깨달았다. 아, 내가 이래서 요리를 못하는구나.


요리를 망치는 기술은 정말 다양한데 나는 계량 안 하기, 순서대로 안 하기, 익기 전에 불 꺼버리기 등을 잘한다. 성격이 급하고 입맛이 둔해서 그따위로 만든 음식도 꾹 참고 잘 먹는다. 하지만 남편은 엄청나게 발달한 미각을 가지고 있고 식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우리는 여러 번 부딪혔고 결국 요리의 전권을 가져갔다. 본인 생일날만 빼고.


"아침부터 고생했네, 잘 먹을게."

"여보, 소고기를 볶아서 넣는 거래."

"그걸 몰랐어? 작년에도 했잖아."

"나는 네이버가 고장 난 줄 알았어. 그래서 약간 맛이 없을 수 있어."

마음씨 고운 남편은 미역과 소고기를 먼저 먹고 밥을 말아서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고 일어났다.

"뜨끈하고 맛있네. 고마워."

"아냐, 내가 고맙지."

올해도 남편 생일에 신세를 지고 말았다. 내년엔 진짜 잘해야지. 여보,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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