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돈이 아닌 시간을 사는 존재

by 똘맘

세상은 우리에게 교묘한 심리 전략을 쓰면서 더 많은 소비를 하라고 권장한다.

도시락으로 꽁보리밥과 김치만 가지고 다녀도 건강하고 즐겁게 놀 수 있었던 아이들에게,

더 자극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주며, 먹는 것 자체를 소비에 익숙하게 만든다.

집에서는 3가지 김치와 나물로 된 식단에 가끔씩 특식으로 먹을 수 있는 소세지를 먹던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료 급식으로 주는 튀김, 떡볶이, 호떡, 치킨, 돈까스, 짜장, 크림 소스 파스타, 달달한 디저트 등 고지방, 고당, 고염 음식들을 매일 접한다. 이 식단들은 맛있게 느껴지지만, 도파민 시스템을 자극하는 '초가공식품'으로 설계되어 평범한 집밥이 맛이 없어지고, 더 많은 음식, 더 비싸고 다양한 음식을 원하게 만들어 인간의 상태를 만족이 아닌 갈망의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플러스로 집에서 먹어보지 못하는 소위 '좋은 음식'을 먹은 아이들은 집에 와서 부모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자기의 현재 상태를 '가난' 이라고 스스로 칭하며 '흙수저' 라고 비하한다.

elena-mozhvilo-Un0rdO4Nifs-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Elena Mozhvilo

방송에는 럭셔리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여주며, 손주는 키워주면 안 된다는 내용이 반복된다.

매일 아침 호텔 조식을 먹는 사람을 보여주며, "내 돈 내가 쓰고 죽어야지!" 라는 말이 유행어 처럼 떠돈다.

손주를 봐주는데 얼마를 받아야 하네, 자식에게 생일 선물로 브랜드 가방을 받았네, 해외 여행을 보내줬네를 들으며, 손주를 무료로 봐주고 있는 내가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같고, 이기적인 자식에게 역겨움을 느낀다.

"손주를 돌봐주는데 얼마를 받아야 하는가?" 라는 비 정상적인 프로그램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조부모로 누릴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즐기지 못하게 방해 해버린다. 진짜 돈 버는 것은 아이 용품점과 어린이집 뿐이다. 가장 따듯해야할 가정의 유대감이 돈으로 환산해야 하는 '상품'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과연 우리는 누가 행복한 것인가?

janosch-lino-snDUMdYF7o8-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Janosch Lino

드라마에서는 평범하고 가난한 여주인공을 내세워, 돈 많고 잘생긴 실장님들이 일은 안하고 그 평범한 여자의 꽁무늬만 졸졸졸 따라 다니면서 명품 옷을 선물하고, 비싼 호텔과 레스토랑을 데려가며 럭셔리 라이프를 보여준다. 반면에 내 옆에 있는 오징어는 맥도날드에서 할인 행사를 한다고 점심은 맥도날드에 가자고 한다. 생일 선물로 10만원 짜리 상품권을 받고는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화가 난다. 물질이 사랑의 증거라는 가치관이 세워지고, 현실 도피와 상대적 박탈감을들 조장한다. 그로 인해 소비를 통해 그 결핍을 메꾸려고 가짜 인생을 살게 된다. 하지만 돈을 쓸 수록 나는 더 가난해지고, 내 삶은 더 비참해진다.

crew-xCmvrpzctaQ-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Crew

여기에 하나를 더 하면, 교육 산업으로 인해 '개천에서 용난다'는 아름답고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하며, 모든 아이들이 수많은 돈을 쓰면서 대학을 가도록 교육을 상향 평준화시킨다. 공부를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주입하고, 부자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모두 노력하지 못한 자신에게 돌린다. 부모는 많은 돈을 쓰면서 자식의 삶을 병들게 만들어 버리는데, 이는 사랑의 뿌리를 두고 있기에 부모를 탓하지도 못하고 용이 되지 못한 죄책감과 자기 비판을 심어준다. 아이들의 자존감은 낮아지고, 부모와 자식 관계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린다.


하루 8시간의 수면,

세끼 식사,

비 바람을 막아 줄 화장실이 있는 집,

몇벌의 옷,

깨끗한 물,

이동 수단이 되어 줄 차 혹은 대중교통,

연락 가능 한 핸드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

복잡한 현대 시대를 사라가는 우리가 필요 한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하지만 좀 더 좋은 차, 좀 더 좋은 집, 좀 더 좋은 음식 이런 것들에 매달려가며,

가장 중요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등지거나 혹은 포기 하며 살아간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우선순위를 인간이 먼저가 아닌 돈이 먼저인 사회로 만들어 버렸다. 이름처럼 우리는 자본이 우선인 사회에 살고 있고, 하루를 보내는데, 자본이 들어가지 않는 날이 없게 만들어 버렸다. 즉 돈이 없으면, 살수 없는 사회를 살고 있었기에 힘들고 숨막히게 살고 있던 것이다.

gabrielle-henderson-pL1qsBqCatk-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Gabrielle Henderson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돈을 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 자본주의를 조금 피해서 살려면, 아프리카에 가거나 자연인이 되는 방법 빼고는 없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만 충족하고 살기 위해서 집에 살려고 해도 세금을 내야 하고, 물을 쓰려고 해도 수도세를 지불해야 한다. 돈 없이 생존하기에는 불가능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약 2백년 전까지만 해도,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셨고 세금은 물건이나 쌀로 지불 했으며, 전기도 없었기에 전기세를 낼 필요도 없었다. 김치와 보리 밥을 먹고, 논 농사와 밭 농사를 하며 내가 생산 할 수 있는 야채를 먹고 살았으며, 만약 다른 것을 원하면 물물교환을 하며 살았다.

sven-V7WkmXntA8M-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Sven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돌보고, 어른들은 농업, 어업, 채집을 하며 간단하게 살았다. 병원도 없어서 병원비 때문에 걱정 하거나 암에 걸렸다고 걱정 하지 않고, 죽음이 다가오면 순응하여 살았다. 고단하게 살았겠지만, 남과 비교 하지 않고, 아니 할 수도 없이 살았기에 하루 앞도 모르는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닌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살지 않았을까?


왜 풍요로운 삶 속에서 걱정을 하고,
에어컨과 히터가 나오는 편안한 환경에서
일을, 동료를 사랑하거나 감사해하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하며 존버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그동안 나는 자본주의가 그려준 길을 걸었다. 더 좋은 걸 사는 게, 더 비싼 걸 보여주는 게, 더 많이 나누는 척하는 게 ‘잘 사는 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샀고, 보여줬고, 나누었고, 그럴수록 죄책감은 커졌고, 자존감은 작아졌다.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는 대신 서로의 틈새를 파고들어 “너는 틀렸어”라고 외쳤다. 그 소리가 메아리칠수록 우리 주변은 점점 더 조용해졌다. 고립이란, 소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서로의 목소리가 더 이상 닿지 않는 거라는 걸 늦게야 알았다.


그 속에서 행복 할 수 없던 것은 당연한 결말이었다.


내가 돈이 조금 생겼을 때, 남들에게 우월감을 과시하기 위해 명품을 사고, 외제차를 샀었더라면 어땠을까?

식당을 더 키우고, 아이들을 비싼 학원에 방치 해 놓고, 손님 더 끌어모으고, 직원 더 뽑고, 업장 더 크게 키우는 데만 미쳐 살았더라면?

arnaud-padalle-VPRnUFM0eX4-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Arnaud Padallé

한국에서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건, 바로 자본주의가 설계한 대로 살았기 때문이었다. 남들 눈에 보여주기 위해 샀고, 보여줄수록 통장 잔고는 쪼그라들고, 질투와 무시가 오가고, "나도 저만큼 줘야 해" 하며 또 주고받는 그 이상한 고리 속에서, 인생의 절반을 그렇게 허비했다. 보여주기 위한 삶이, 결국 나를 가장 가난하고 외롭게 만들었다. 만약 그렇게 살았었다면, 20년 후쯤 나는 더 큰 집에, 더 비싼 차에, 더 화려한 삶에 갇혀 "이게 다 뭐였나" 하고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towfiqu-barbhuiya-3aGZ7a97qwA-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Towfiqu barbhuiya

찌릿한 마비의 순간에 중독됐다. 그 찌릿함을 위해 소비하고, 소비하고, 또 소비했다. 마약처럼 내성이 생겨 더 강한 걸 찾았고, 그걸 사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에 팔아넘겼다.

결국 가장 비싼 대가는 내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큼 나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고 내 아이들과 보낼 시간은 줄어들고 있었다.


"파이어족이 되고 싶어..."

다른 사람들은 비웃었다. 현실성 없고 멍청한 꿈이라고 손가락질 했다.

그 작은, 웃음거리처럼 보이는 생각 하나가 내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갈대처럼 흔들리던 나에게, 처음으로 단단한 뿌리를 내려주었다.


caleb-jones-J3JMyXWQHXU-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Caleb Jones

누구를 만날지 아니면 만나지 말지.

무엇을 먹을지 아니면 먹지 말지.

무엇을 소유할지 아니면 소유하지 않을지.

어떤 직업을 가질지 아니면 가지지 않을지.

어디에 살지, 무엇을 배울지, 어떻게 살지.

시간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이 모든 선택 앞에 '돈'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서 있지 않다. 그 자리에 '나'가 섰다.

그 동안의 혼란과 질문들은 나를 더 조용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수요일 연재
이전 19화파이어족을 꿈꾼다는건 변화가 찾아 올 것이라는 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