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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Oct 10. 2020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

episode #11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사'를 찾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감사를 '회복'하는 것이다. 불평과 불만만 가득할 때, 무기력과 좌절감에 휩싸여 있을 때, 억지로라도 감사한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쉽게 우울이 사라지고, 존재 가치에 대한 의심이 사라진다.


처음 난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마음을 가득 채운 것은 원망과 불평과 불신이었다. 크리스천인 나는 스스로를 꽤나 신앙 깊은 사람,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믿음의 척도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고난을 겪어봐야지 그 믿음의 진짜 수준이 드러난다. 일생에 이런 고난이 있을까 싶은 그때의 믿음이 내 진짜 믿음이다. 내가 그랬다. 고난이 깊이 찾아든 그때, 울면서 기도하며 온갖 원망을 쏟아냈다. "대체 내가 뭘 그리 잘못했습니까? 왜 나만 이런 힘든 일을 겪어야 합니까?"

내 믿음의 현주소를 보게 된 시간이었다.


새벽 5시 반 새벽예배에 나가기 시작했고, 금요일에는 금요기도회에 가서 기도했다. 여름휴가를 근교 기도원에서 보내기도 했고, 어느 겨울에는 태백산골짜기에 있는 수도공동체인 예수원에 찾아가 난방도 되지 않는 기도방에서 오들오들 떨며 기도하기도 했다. 송구영신예배 때마다 뽑은 말씀 카드를 내 바람에 맞춰 해석하고 기대하곤 했다. 주님은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니,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좋은 때에 주실 것이라는 마음이 막연한 두려움을 이기게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보내고 또 1년... 이제 4년쯤 되자,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그 4년간 끊이지 않고 병원에 다녔다. 내가 예상한 시간을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우울이 폭발했다. 앞선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이식이 또다시 실패로 마무리되자, 역대급의 우울감이 찾아왔다. 어떤 것도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 무기력이 나를 휘감았다. 그런 상황 속에서 매일 하던 큐티(Quiet Time)와 성경통독, 기도로 이루어진 영성 루틴은 형식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그저 매일 하던 것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왠지 모를 불안감 때문에 부여잡고 있었던 듯하다. 기도가 되지 않았고, 기도의 자리에 갈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렇게 우울감의 구렁텅이 깊숙한 곳에서 아무 힘도 내지 못하고 있는 그때, 남편의 제의로 집 근처 교회의 금요기도회에 갔다. 그 교회는 내가 청년시절 섬겼던 교회로 청년시절의 추억이 가득한 교회였다. 오랜만에 찾아간 교회는 별로 바뀐 게 없어 보였다. 예배가 끝나고 기도 시간. 한참 기도하고 있는 데,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석사학위논문이 잘 안 풀려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고, 마음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지도 교수님은 너무 무서워 말 한번 건네기가 어렵고, 동기들과 같은 시기에 졸업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으로 매일 새벽까지 학교에서 논문을 쓰다 집에 오곤 했다. 새벽 집에 오는 길, 어느 날부터 바로 집으로 오지 않고, 이 교회에 들려 컴컴한 예배당에 들어가 혼자 펑펑 울다가 귀가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반복한 것 같다. 결국 마지막 논문 심사 날, 지도교수님께 '기적'이라는 말을 들으며 학위논문이 무사히 통과되었고, 동기들과 나란히 졸업할 수 있었다.


왜 그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을까. 알 수 없지만, 그 기억이 내 우울한 마음의 전환점이 되었다. 석사 졸업이 위태로웠던 나였다. 부족함 투성이었던 나였다. 내 능력으로 라면, 내 힘으로 라면 제때 졸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루어졌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은혜'로 이루어진 선물과 같은 일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모든 삶이 그러했다. 석사논문은 그중 하나의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다. 삶의 모든 순간이 다 은혜였다. 지금까지 나의 직장, 학위, 재정, 사회적 관계, 부모님이나 남편까지도 다 내가 잘해서, 잘나서 이루고 성취한 것이 아니라 거저 받은 은혜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로 된 것이니'라는 바울의 고백이 떠올랐다. 내 삶의 모든 과정 가운데 감사가 아닌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즈음 주변 지인들에게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폐암 말기로 투병 중이던 친구가 사망했다는 소식. 항암 치료가 잘 되어 올해 초까지만 해도 새 사업을 구상하면서 새 차까지 샀다고 들었는데, 어느 순간 급격히 나빠지더니 먼저 가버렸다. 아이가 셋인 다른 한 친구는 신장암 진단을 받았다며 기도를 부탁했다. 마흔이 넘으니 여기저기서 아픈 소식을 들린다. 이런 소식들도 현재의 내 상황을 감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했다.


감사의 마음이 싹 틔워지기 시작하니 세상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없는 것, 부족한 것만 보다가 나에게 있는 것, 넘치는 것을 헤아리니 절로 감사가 되었다. 좋은 부모와 시모, 사랑스러운 남편, 특별히 아픈데 없이 건강한 몸, 노력하면 쓸만한 머리, 내가 선택한 일, 아담한 집과 내 공간, 함께 기도해주는 공동체와 지인들, 부담 없이 수다 떨 수 있는 친구들... 나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사거리가 있었다.


감사의 기억은 우울감의 변곡점이 되었다. 감사를 떠올린 그 순간부터 우울감은 저절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완전한 원래의 일상으로 회복되기까지 시간은 걸렸다. 우울감이 최고조에 다다를 때까지의 기간만큼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니 바로 일상 회복이 안된다고 서두를 필요가 없다. 변곡점에 도달했다면 천천히 기다리면 된다. 중요한 것은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쉽게 변곡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내 경험상 가장 빠르고 쉬운 변곡점 도달 방법은 '감사 찾기'이다.


감사란 '하늘의 보물창고에서 매일매일 쏟아져 내려오는 보물을 발견하는 것'이다.

근래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감사노트 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매일 하루에 다섯 가지씩 감사거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공동체 식구들과 공유한다. 나 혼자만 감사 보물을 간직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감사가 몇 곱절이나 풍성해진다. 특히 가족 식구끼리 감사노트를 쓰고 나누면 그동안 쑥스러움에 말할 수 없었던 서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게 되어 더 친밀해진다.


또다시 우울 증세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 '감사'라는 우울의 천적을 알아냈으니 다음번엔 힘들이지 않고 우울과 맞짱 뜰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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