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비 Sep 02. 2020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내 아이가 될지니

episode #03

임신을 위해 했던 첫 번째 노력은 식습관 바꾸기였다.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에도 운동을 시작하기보다 음식 줄이기를 먼저 시도하지 않던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빵과 커피를 끊고, 생전 사 먹을 일 없었던 아보카도와 견과류를 챙겨 먹는다. 비타민D, 오메가3, 이노시톨, DHEA, 항산화 영양제 등 각종 난임에 좋다는 영양제 목록을 수집하고 꼬박꼬박 먹는다.


대학원 시절 내 별명은 '빵순이'였다. 이중적 의미였다. 빵을 너무나 좋아하기도 하고, 얼굴이 빵빵하기도 하고. 어디 빵뿐이던가. 밀가루 요리라면 환장했다. 밥보다 국수, 파스타, 피자, 떡볶이를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밀가루만 먹어도 좋았다.


그랬던 내가 밀가루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언젠가부터 소화도 잘 안됐을 뿐 아니라 한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밀가루 음식 제한 섭취를 권유받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밀가루 제외한 음식을 찾는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밀가루 빼고 먹으려니 먹을 게 없었다. 각종 튀김, 과자, 만두도 밀가루였다. 심지어 좋아하던 어묵도 알고 보니 주재료가 밀가루였다. 딱 한식 백반만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한식 위주, 쌀 위주로 식단을 재편성했다. 국수 대신 쌀국수를, 빵 도우 대신 고구마 도우로 한 피자를, 파스타 대신 리소토를, 쌀떡볶이를, 글루텐 프리 어묵을 선택했다. 의외로 먹을 게 많았다. 무엇보다 맛있었고, 소화도 부담이 없었다.


밀가루 내려놓기보다 더 힘든 것은 사실 커피였다. 나의 취미 중 하나는 드립 커피 내리기였다. 과거 얘기다. 그렇다고 다양한 도구를 챙길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일 예가체프를 내릴지, 케냐 AA를 내릴지 고민하며 행복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면서 커피를 끊었다. 매일 음미하던 커피 향이 못내 아쉬웠지만, 참았다. 인스턴트커피보다 드립 커피에 더 많은 카페인이 있다는 것도, 아메리카노보다 콜드 브루의 카페인 함량이 높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안 그래도 언젠가부터 오전 이후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을 못 자는 현상 때문에 커피를 줄이려던 차였기에 과감히 끊어버렸다.


그러나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난임에 커피가 안 좋은 이유는 카페인 때문인데, 이 카페인이란 녀석은 커피에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녹차나 홍차에도, 초콜릿에도, 탄산음료에도 들어있다. 내가 좋아하는 코코아도, 밀크티도, 그린티 아이스크림도 하루아침에 적이 되었다. 지금이야 브랜드 커피숍에서는 모든 커피 음료를 '디카페인'으로 변경할 수 있게 해 줘서 가끔 디카페인 음료를 마시긴 하지만, 처음 시험관 시술을 시작한 4~5년 전만 해도 디카페인은 외국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사실 디카페인이라고 해도 카페인이 0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커피와의 단호한 결별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과거 회사에 갓 신입으로 입사해서 직장인으로 적응하는 시기, 처음 배웠던 직장인 문화는 출근하자마자 탕비실에 가서 믹스커피를 타 먹는 것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배우게 되는 것이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노란 믹스커피 봉지 하나를 뜯지 않으면 그날 오전은 왜 그런지 머리가 멍한 듯 느껴졌다. 결국 점심때라도 믹스커피 한잔은 기어코 마시게 되었다. 믹스커피 한잔의 달달함과 쌉쌀한 카페인이 하루 업무를 좌우할 정도였다. 그렇게 믹스커피 중독자로 살던 때를 지나 아메리카노의 세계로, 또 드립 커피의 세계로 고급진 여정을 달리고 있던 그 시기에 갑작스럽게 커피를 끊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큰 금단 증상은 없었다. 커피로 시작하지 않은 하루는 어쩐지 정신이 온전히 깨지 않은 듯한 느낌도 들었지만,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니 그런 금단 증상도 사라졌다.


임신을 위해 식습관을 조정하면서 밀가루나 커피와 같이 먹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먹어야 하는 음식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항산화 식품이다. 세계 슈퍼푸드라고 불리는 베리류, 아보카도, 브로콜리, 토마토, 콩, 견과류와 같은 식품을 들 수 있다.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하고 유익한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는 좋다는 식품들을 찾아 먹기 시작했다. 샐러드로도 먹고, 주스로도 먹고, 밥에도 넣어 먹는다. 챙겨 먹어야 하는 또 하나는 단백질이다. 건강한 배아를 얻기 위해서는 난자와 정자의 질이 중요한데, 이것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영양소가 단백질이다. 세포 구성물질이기 때문이다. 닭가슴살, 콩, 생선, 소고기 등 질 좋은 단백질 섭취는 필수적이다. 매끼마다 두부나 계란이라도 단백질을 섭취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먹는 것들을 하나씩 바꿔나갔다. 난임 병원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 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임 의사들이 쓴 블로그와 같은 인터넷 정보를 통해서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내 아이가 될 것"이라는 마음으로 식단을 바꿔나갔다. 물론 100% 완벽하게 지키는 것은 어려웠다. 다이어트할 때도 치팅데이가 있지 않은가.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 피자, 케이크, 냉면(찬 음식도 난임 세계에서는 금기다)을 인생에서 지워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1년 안에 끝날 줄 알았던 난임 기간이 길어지니 먹는 것에 유연해지게 되었다. 먹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차라리 맘 편하게 는 게 난임에도 더 좋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까.


무엇보다 식습관이 바뀌면서 건강관리가 저절로 되었다. 변비가 해결되고 카페인으로 인한 가슴 두근거림도 사라졌다. 위장장애가 줄었고, 고혈압도 관리되고 있다. 난임으로 인해 유익한 음식과 유해한 음식을 구별할 줄 알게 되고, 건강한 몸이 되어가고 있다. 난임이 가르쳐 준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몸의 불리한 증거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