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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01. 2020

내 몸의 불리한 증거들

episode #02

AMH 0.08

난임 검사( 혹은 가임력 검사)를 받아본 사람이면 이 영어 약자에 익숙할 것이다. AMH는 향 뮬러 호르몬(Anti-mullerian hormone)의 약자로 난소의 예비력을 가늠하게 해 준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평생 사용할 일정량의 난자를 가지고 있으며, 2차 성징 이후 매달 배란하면서 많은 수의 난자가 소멸되는 시스템을 갖는다. AMH는 난자 보유량을 말해주는데, 그 수치에 따라 난소 나이가 정해진다. 나의 난소 나이는 48세. 그 당시 실제 나이가 만 38세였으니 10년은 더 높게 나온 것이었다. 이는 난소기능저하(이하 난저)이다. 난저에게 '시간은 금'이다. 그러니 그 의사가 혼낼 만도 했다. 검사는 4월쯤 했는데,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간 것은 10월이 다 되어서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뿐 아니었다. 방사선과에서 나팔관 조영술도 시행했는데, 한쪽 나팔관 미발달에, 쌍각 자궁 소견으로 나왔다(난임의사는 조영술 결과 영상을 보더니 단각 자궁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쌍각이든 단각이든, 정상은 아니었다. 자궁기형이었다. 나이도 많고, 난자 수도 모자라고, 난자 질도 안 좋은데,  한쪽 나팔관은 없고, 자궁까지 기형이었다. 이런 걸 설상가상, 엎친데 덮친 격, 첩첩산중이라고 해야 하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갑상선 호르몬도 임신에 꽤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갑상선 자극 호르몬 수치(TSH)가 4.0 이상인 경우, 임신을 위해서는 호르몬 치료를 통해 수치를 2.5 이하로 유지시켜주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내 경우, 첫 검사에서 TSH수치는 4.8로 갑상선 기능 저하 경계 수치였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굳이 호르몬 약을 먹지 않아도 되지만, 임신을 위해서는 호르몬 약을 먹어서 수치를 떨어트려야만 했다. TSH 수치는 컨디션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3개월마다 체크하면서 호르몬 약 용량을 조절하고 있다.


난임 초기에는 '엽산 대사 이상'이라는 말도 들었다. 엽산은 건강한 태아를 출산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엽산이 부족하면 태아의 신경관결손증이 생겨 뇌와 척추기형이 될 수 있다. 보건소에서 산전검사를 받으면 꼭 챙겨주는 것이 바로 엽산이다. 그만큼 엽산은 임신에 필수적인 영양소이다. 보통 임신을 준비 중인 경우 엽산 400mg 정도 섭취를 권장하는데, 엽산 대사 이상은 10배 정도인 4,000~5,000mg을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한동안 (다행히 병원 처방받아) 5,000mg짜리 엽산을 복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검사 수치도 컨디션에 따라 변하는 것인지, 추후 다른 병원 검사에서 엽산 대사 이상이 아니라고 고용량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도 고령이고, 잉여 엽산은 소변으로 배출된다고 해서 나름 고용량 섭취 중이다.


최근에 내 몸에 대해 알게 된 또 한 가지는 고혈압. 부모님 두 분 다 고혈압이어서 유전적, 생활습관적 고혈압이 언젠가는 들이닥칠 줄 알고는 있었다. 평소 혈압을 잴 기회가 없어 별다르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면서 혈압체크를 자주 하게 되었다. 보통 시술 전 혈압을 재고, 시술 후 몇 시간 안정을 취하고 퇴실 때에도 혈압을 잰다(여러 병원에서 경험해 본 결과, 병원마다 다르다). 나는 시술 전이나 시술 후 상관없이 혈압이 높았다. 내 기억에 평균 140~150/90 정도였다. 고혈압약을 먹어도 시험관 시술이 가능하다며, 난임 의사도 검사를 받아보라며 권유했다. 대학병원에서 24시간 심장검사를 해보니, 수축기 혈압보다 이완기 혈압이 더 문제였다. 사실 수치만 본다면 심장내과 의사는 나에게 고혈압약을 처방했을 것이다. 하지만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 사정을 듣고는 약 복용보다 식습관 조절하기를 권했다. 그 후로 혈압계를 집에 두고 아침, 저녁으로 재고 있다. 식단도 되도록 저염식을 하려고 한다.


난임 기간 동안 배운 최대의 지식은 몸에 관한 지식이었다. 결혼 전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배란이 되고 착상이 되는지 그저 중학생 성교육 수준의 지식이었다. 그 얄팍한 지식은 내 몸의 문제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보완되고 재구성되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몸에 대해 배웠다. 신체 각 기관이 이렇게나 복잡하게 연동되어 있는지 인체의 신비는 알수록 놀라웠다. 이를테면 비타민 B군에 속하는 엽산은 사실 임신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고혈압과도, 치매와도 관여되어 있다. 갑상선 호르몬이나 에스트로겐과 같은 성호르몬은 모두 뇌하수체와 관련되어 있어 어느 한 가지라도 문제가 생기면 다 꼬이게 된다. 임신은 거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신체 각 기관이 서로 서로 조화를 이뤄 제 역할을 적절히 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누가 손만 잡아도 임신이 된다 했던가. 자연임신 성공률도 25%에 불과한데 말이다.


내 몸이지만 나는 내 몸을 잘 몰랐다. 내 몸이 임신이라는 목표를 이루는 데에 꽤나 제한적이라는 것도 결혼 전에는, 아니 병원을 찾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시험관 시술 회차가 거듭될수록 내 몸의 불리한 증거들이 하나씩 드러났고, 이와 비례하여 조급증은 늘어갔다. 미력한 몸뚱이 하나만 믿고 3~4백만 원 든다는 시험관 시술을 선택하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컸다. 신체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뭐든 해야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시도한 것은 식습관 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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