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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Aug 31. 2020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

episode #01


결혼을 하고 아이를 기다리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선택지의 일 순위는 배란 날짜를 체크하는 것이다. 배란테스트기를 사용하거나 매일 기초 체온을 체크하거나 아니면 병원에 가서 배란일을 체크하는 방법이다. 나보다 전문가의 판단이 더 효과적이겠지 하며, 배란일 체크를 위해 방문했던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바로 옆 난임 병원을 추천했다.



나이가 있으시니 바로 난임 병원으로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정상적인 부부관계에도 1년(만 35세 이후는 6개월) 내에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경우'

공식적인 난임의 판단 기준은 이렇다.

결혼 전이나 결혼 후, 난 한 번도 '난임'이란 것을 떠올려보지 않았다. 기다리면 자연스레 아이가 생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고령이니 빨리 임신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산부인과에 찾아간 것이었는데, 산부인과에서는 배란일도 알려주지 않고 나를 거절했다. 시간 낭비하지 말자는 얘기였다. 의사 의견에 끄덕일 수밖에 없었지만, 내가 주류의 삶에서 한 발자국 멀어졌다는 느낌은 씁쓸했다.

바로 찾아간 난임 병원은 시스템부터가 달랐다. 첫 단계는 난임 검사였다. 검사 결과가 있어야만 다음 스텝을 진행할 수 있다. 생리 2~3일째 질초음파, 피검사, 나팔관 조영술, 남편의 정액검사 등이었다. 검사 결과도 바로 나오지 않는다. 내 기억에 1~2주는 기다렸어야 했다.

타이밍 참 교묘하다. 아무 생각 없이 검사 결과를 기다리던 바로 그 시기에, 덜컥 취직이 되었다. 하루 만에 입사지원서류를 준비해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 오히려 민망한 상황에서 합격통보를 받은 것이다. 이 합격통보가 장차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 줄 그때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한 치 앞도 모르고 마냥 기쁘고 설렜던 기억이다.

그렇게 취직과 함께 난임 검사는 내 머릿속에서 잊혔다. 나는 갓 입사한 사람이 임신하는 것은 민폐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입사 첫날부터 성과, 성과, 성과 타령을 들어서였을까. 성과는커녕 민폐는 끼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임신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자연스럽게 임신이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일부러 인위적인 임신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학위에, 결혼에, 취직까지 일사천리였기 때문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첫 장면에서 김희애가 했던 대사가 바로 내 얘기였다.

"완벽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완벽했다."


그해 10월. 입사 후 6개월이나 지나서야 다시 찾은 난임 병원에서 의사는 내 눈 앞에서 검사지를 흔들며, 나에게 야단을 치고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나보다 어려 보이는 여의사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나는 넋이 나갔다.

내가 난임이라고요?

그것도 단순 난임이 아니라 심각한 수준의 난임이었다. 폐경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일촉즉발 응급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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