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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04. 2020

임신에 대한 오만과 편견 그리고 무지

episode #05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가 생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는 대표적인 착각 중 하나이다. 그야말로 착각이다. 이 시대 난임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난임 통계(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국민관심질병통계)에 따르면, 난임 환자 수는 2019년 약 23만 명에 이른다. 매년 약 5%씩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가 그 23만 명 안에 속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십수 년 전 이미 난소혹 수술 경력이 있었음에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수술했던 삼성의료원에서 매년 검사를 받아왔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산부인과면 다 같은 산부인과인 줄 알았다. 산부인과 의사라고 해서 난임 분야까지 다 알지는 못한다는 것을 몰랐다. 결혼 후 삼성의료원을 방문했을 때에도 임신이 잘 안된다고 하자, "임신을 위해 노력하세요"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단각 자궁에, 한쪽 나팔관이 없었다. 난임 병원에 가서야 듣게 된 내 신체의 비밀이었다. 박사의 박이 넓을 박이 아니라 얇을 박이라더니, 박사 닥터에게는 전문분야가 따로 있음을 간과했다. 산부인과는 산과, 부인과, 난임으로 구분된다. 미래 임신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난임클리닉도 병행했어야 했다.     




나는 오만했다. 40세가 넘어서 임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솔깃했고, 뇌리에 박혔다. 고령이라 임신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했을 뿐 아니라 들었다 해도 귓등으로 듣고 흘렸다. 유학 가서 성공한 스토리는 많이 듣지만, 실패한 스토리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실패자는 말이 없다는 걸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다. 때문에 내가 고령이어도 임신에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했다. 만약 조금의 거리낌이라도 있었다면, 아마도 결혼 초 아니 결혼 전부터 병원에 다녔을지 모른다. 나는 결혼 후 거의 1년이 되어서야 시험관을 시작했으니, 자신감을 넘은 오만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오만은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잘 드러났다. 결혼 전, 주변에서 누가 쌍둥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쩐지. 걔 너무 말라서 힘들 것 같더라니... 결국 시험관 했나 보네." 혀를 차며 속으로 생각했다. 자연임신으로 쌍둥이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생각과 요새 시험관 시술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정보가 절묘하게 합쳐진 왜곡된 결론을 나는 확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결론의 밑바탕에는 "나는 안 말랐으니 시험관 할 일 없을 것이다."라는 오만과 편견이 깔려있었다.       


나의 둘째 큰아버지는 꼬장꼬장한 분이다. 은퇴한 외과의사로, 대학병원 근무 시절에도 학점을 짜게 주는 교수로 유명했다고 한다. 내 나이 서른 중반 즈음, 가족 모임자리에서 큰아버지는 내게 빨리 결혼하라며 훈계하셨다. 남자와 생식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여자는 결혼을 서둘러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생식이고 뭐고 그 당시 나에게는 공부가, 일이 우선이었고, 딱히 남자 친구도 없었기에 그 말이 편하지 않았다.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분위기 싸해질 정도로 거만하고 퉁명스럽게 받아쳤던 것 같다. 난임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그때 그 상황이 종종 생각난다. 그때가 임.알.못(임신을 알지 못하는)인 나의 무지를 일깨우는 순간이 될 수도 있었었다. 서른 중반에 그 말씀을 새겨듣고,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더라면 지금쯤 이런 고통은 안 겪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와 자책이 가끔 들기도 한다.     




나는 혼전임신, 낙태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언젠가 후배가 울먹이는 얼굴로 찾아와 긴히 상담할 것이 있다고 했다. 남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임신했다는 것이었다. 그 남자 친구는 사실을 알고도 책임을 회피한다고 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이야기를 내 눈 앞에 앉은 아이에게서 들은 거다. 충격이었지만, 언제나 공감보다는 문제 해결 방안을 내는데 최적화된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워야지"라고 말해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이러한 문제의 답을 어떻게 조언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 후배는 나와 같은 종교를 가졌고, 종종 나에게 신앙상담을 해왔던 터였다. 아마도 그녀는 내게 같은 종교적 가치관을 지닌 선배로서 보다 신앙적인 조언을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종교적인 신념보다 그 후배의 앞날에 더 초점을 두었었다.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후배의 앞날이 구겨진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데, 나는 완벽에 가까운 확신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의견 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녀는 용감히(?) 실행했다. 그런데 몇 개월이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 후배는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녀의 혼전임신을 의한 급작스런 결혼 소식을 듣게 되었다. 미혼에, 혼전순결주의자였던 나에게 '낙태'도 버거운 주제였지만, 낙태 사건에 이어 일어난 혼전 임신 사건은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그래도 마지막이 '다시 낙태'가 아니라 '결혼'으로 끝난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혼전 임신 자체보다 혼전 임신한 사람을 더 문제시했던 것 같다. 속도위반 결혼 스토리를 들으면 겉으로는 "부모님 좋아하시겠네~ 요즘은 그게 최고의 혼수품이라며~ "라며 응수했지만, 속으로는 "마지막 때에 절제하지 못하고, 음란과 쾌락주의가 판을 친다더니. 세상 말세구만.. 쯧쯧" 혀를 찼다. 마치 심판자가 된 듯 사람을 나의 잣대로 판단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나만 고상하고, 품위 있는 사람인 양 고개를 높였다.


임신에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어떠한 과정으로 태어났던지 생명의 탄생은 큰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명에 대해 내가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저 소중한 한 생명이 이 세상에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잘 깨닫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기도만 하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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