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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레네 Feb 08. 2024

사별일기 #11. 결혼한다는 내 동생

축복해 정말 많이

내 사별의 전 과정에 가장 깊이 함께했던 동생.

부모에겐 오히려 걱정 끼칠까 봐 힘든 내색을 못하던 것도 동생 앞에서는 다 쏟았던 것 같다.

죽을 만큼 길고 힘들었던 그 시간, 밤길을 걷고 야식을 먹고 쇼핑을 하며 가장 많이 내 옆에 붙어있던 사람이 바로 동생이다. 내 우울한 기운을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많이 흡수했던 사람이며 내 사별의 그늘을 가장 많이 보고 함께 울었던 사람.


그랬던 동생이, 결혼을 하다니! 결혼을 하다니!

나는 정말 소리치며 뛸 듯이 기뻤다.

그 모든 사별과 사후처리의 과정에서 겪는 통증을 어찌할 수 없어 울부짖던 수많은 밤들. 그 밤중엔 언제나 곁에 동생이 있었고, 나는 내 우울의 에너지를 동생 앞에서 다 필터링 없이 쏟아내면서도...

내 그림자가 동생이 그려왔던 미래에 마치 탄 자국처럼, 그을음으로 남게 될까 너무나도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결혼이 더 기쁜 걸까!


엄마는 동생의 결혼이 성사된 기쁨보다, 나에 대한 안쓰러움이 더 큰 것 같다. 날 보고 한 번씩 이유 없이 운다. 나 정말 괜찮은데. 물론 사별에 대해선 아직 안 괜찮을 수 있지만, 동생의 결혼에 대해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오히려 결혼한다고 해줘서, 얼마나 기쁜데.


사별 직후엔 동생도 참 많이 울었다. 나도 남자친구가 갑자기 죽으면 어떻게 사냐고. 그냥 결혼 안 하는 게 맘 편하겠다고. 한동안 그런 소릴 했다. 너무 이해가 간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비혼이 나쁜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 비혼의 이유가 내 사별은 아니었음 했기에.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언니가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언니의 하루가 어찌어찌 살아지는 것을 보니, 결혼도 할만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동생은 결혼을 결심했고 남자친구와 마음이 잘 맞아 날을 잡게 되었다.


나 너무 기쁜데, 자꾸 사람들이 날 안쓰러워한다. 동생도 나한테 미안해한다. 언니는 정말 기쁘다고! 네가 결혼 안 한다고 안 해줘서. 그것만으로도 기쁘다고 진짜...!


물론 여전히 걱정도 있다. 동생이 남편이 갑자기 아프거나, 일이 있어 멀리 출타하거나 할 때, 남들보다 더 불안해할까 봐. 다른 곳에 더 생산적이게 쓸 수 있을 에너지를 걱정과 염려에 쏟고 있을까 봐. 언니로서 걱정이 되고, 미안하기도 하다. 없어도 될 불안을 나 때문에 한층 더 깊이 겪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인간이 겪는 슬픔 중에 배우자와 자식을 잃는 슬픔이 제일 고통스럽다는데... 언니가 잘(?) 이겨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버텨나간 이 모습이 동생에게 힘든 순간이 올 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울 언니같이 저런 슬픔도 견뎌지는데,
내가 앞으로 뭘 못 견디겠나.


이런 배짱으로 동생이 조금 더 담대하게,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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