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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이레네 Feb 23. 2024

사별일기 #13. 또 하나의 사별

기도할게요

부고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배우자의 이름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계시는 선생님의 이름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부 모임에 사이좋게 다녀왔다는 얘기도 들었고, 결혼기념일이라 외식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은데. 마음이 무거웠다.


검은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였다. 우리 오빠 가는 날도 이렇게 비가 내렸는데. 그래서 조문 온 사람들이 하나님도 우시는가 보다고 많이들 그렇게 말했었는데. 또 하나의 사별을 만나니, 오빠 생각이 많이 났다.


원래의 나는 나이 있으신 어른들에게 살갑게 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친근함의 표시로 손을 잡거나 끌어 안거나 하는 그런 것도 잘 못하는 성격이다. 그러던 내가, 도착하자마자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분을, 그냥 말없이 와락 안았다. 한참을 울었다.


사별을 먼저 겪었어도, 여전히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끌어안고 함께 우는 것 외에는. 나의 존재가 그분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존재로 그분의 두 다리가 조금이라도 버틸 힘을 가질 수만 있다면. 밤을 새워서라도 함께 울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먼저 겪은 자로서 해줄 수 있는 얘기, 건넬 수 있는 위로가 참 많을 줄 알았는데. 별 거 없었다. 그저 이렇게 펑펑 울어줄 수 있는 것.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울어줄 수 있는 것. 그뿐이었다.


오빠가 떠나고 난 뒤 학교에 복직했을 때, 수시로 내 안부를 정말 많이 물어봐 주신 분이다. 일하다 갑자기 울고 싶을 때 혼자 울면 비참하게 느껴지니까 나 불러서 울라고, 그랬던 분이다. 그래서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던 분이었는데, 왜 이렇게 좋은 분들에겐 힘든 일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은 요즘인지.


슬프고 아팠다. 그리고 울렁거렸다.

오빠가 가고 난 뒤 한동안 있다가 서서히 사라졌던 반응들이 오랜만에 올라오는 걸 느꼈다. 힘들었지만, 익숙한 느낌이어서 괜찮았다. 이 익숙한 몸의 반응으로 그분의 애도에 동참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다른 이들은 마음으로 애도하겠지만, 나는 마음과 더불어 몸으로도 애도할 수 있어서.


“샘 보고 힘낼게. 샘 보고 잘 버텨볼게.
학교 가면 나 많이 위로해 줘. “


내 사별이 또 하나의 사별에게 위로가 된 오늘이다.

그저 선생님의 시계가 남들보다 조금만 더 빨리 가길, 그래서 지금의 나처럼 빨리 덜 아프고 덜 힘들어지길. 하루라도 빨리 자기를 찌르는 수많은 자책과 회한의 화살에서 벗어나 편안한 잠을 주무실 수 있게 되길. 얼른 음식이 다시 예전처럼 잘 넘어가고 맛이 느껴지고 소화가 잘 되는 시기가 오길...


덜 힘드시기를. 덜 아프시기를.

얼른 기운 차리셔서 남편을 건강하게,

마음 놓고 편안히 그리워할 수 있게 되기를.


내가 할 수 있는 기도는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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