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를 꼽으라면 고동(보말)잡이를 들 수 있겠다. 육지에서는 누릴 수 없는 바다가 있는 마을에서나 즐길 수 있는 재미이다. 바지락을 캘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우리 섬에서는 바지락 캐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바지락을 캘 수 있는 곳이 있다 하더라도 어촌마을의 수익이 되고 있어 자유롭게 바지락을 캐는 것도 힘들다.
우리 가족들은 시골에 모이기만 하면 고동잡이를 나선다. 그 누구도 고동을 잡지 않기 때문에 우리만의 황금 어장에서 양껏 고동을 잡아 집으로 돌아온다. 고동을 삶은 다음 온 가족이 둥글게 모여 앉아 바늘을 하나씩 들고 고동 까기에 바쁘다. 처음엔 즐거운 수다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힘이 든다. 그러나 고동을 다 까기 전까지는 아무도 자리를 뜰 수 없다. ‘다시는 고동을 잡지 않을 거야’ 하면서도 시골에 오면 다시 고동을 잡으러 나선다.
고동을 쉽게 까기 위해서는 고동 삶는 방법이 중요하다. 한번은 바로 씻은 고동을 펄펄 끓은 물에 넣었더니 뜨거운 물에 놀란 고동 살이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려 고동을 바늘로 빼낼 수가 없었다. 잘 씻은 고동을 솥에 가만히 두었다가 고동을 삶기 시작하면 고동이 익었을 때 어렵지 않게 살을 바로 빼낼 수 있다. 삶은 고동을 바늘로 한 번에 똥까지 쏙 빼는 재미가 있지만 바로 깐 고동을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고동도 철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여름철에 잡는 고동 맛이 가장 고소하다. 시골에 내려왔으니 잡는 재미가 쏠쏠한 고동잡이를 떠났다. 이미 고동이 많이 있는 곳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통만 들고 가기만 하면 쉽게 고동을 잡을 수 있다. 물이 나갈 때보다 물이 들어올 때 고동을 더 쉽게 잡을 수 있다. 물이 나간 뒤 바위 밑에 숨어있던 고동들이 물이 들어오면서 둥둥 떠오르기 때문이다.
밀물 시간이 가까워졌다. 얼굴을 모두 가려주는 빨간색 모자를 쓰고 작은 호수를 지나 바다를 막아놓은 둑으로 향했다. 그런데 바다 안에 포클레인 한 대가 보였다. 무슨 일인가 궁금하여 가까이 가서 보니 돌을 깨서 바다의 둑을 다시 반듯하게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올해는 바다를 막아 논을 만들어 놓은 원안의 모내기를 하지 않는 걸 보니 이 넓은 평지의 논들이 모두 태양광으로 변하려나 보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아쉽기만 하다. 이 평지의 논을 갖기 위해 우리 아버지 세대가 흘린 피와 땀 그분들의 희망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이제는 사람들이 떠나버린 적막한 섬마을의 풍경을 바라보며 섬의 활발했던 과거의 모습을 그리워해본다.
아쉽게도 고동잡이는 쉽지 않았다. 포클레인이 고동이 서식하는 돌들을 마구 파헤쳐 놓은 바람에 고동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도 한두 개 보이는 고동을 주워보려고 애를 썼다. 고동의 크기가 아주 컸다. 일이십분 고동을 줍다가 포기를 하고 말았다. 고동잡이의 재미는 한두 개 어렵게 잡는 것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쓸어 담는 맛이기 때문이다.
바다의 돌담을 쌓는 공사가 끝나면 다시 고동이 돌아올까? 고동잡이 황금 어장을 잃어버렸다. 섬의 어디로 가야 고동을 잡을 수 있을지 다른 장소를 물색해 보기 위해 이동했다. 그러나 옮긴 곳은 작은 고동 한두 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고동을 잡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시골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 고동잡이를 할 수 없다는 아쉬움에 한동안 바닷가를 떠나지 못했다.
2023년 9월 월간 에세이에 실린글
독자 투고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