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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Nov 13. 2024

꼬링갓 마을 이야기

아랫집에  계시던 어르신들이 모두 떠나고 오랫동안 쓸쓸한 빈집으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몇 년이 세월이 흘러 그 집큰아들인 찬옥이 오빠 부부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내려왔다.  덕분에 잠시 다니러 가도 적막하기만 한 시골이  활기가 가득하다 정갈한 텃밭에 감탄을 하고, 돌담에 봉숭아꽃이 소담하게 핀 것을 보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삼삼오오  아랫집 고롱나무 아래로 동네 어르신들이 몰려와 담소를 나누었다. 고롱나무는 그동안의 세월과 함께 더 큰 나무가 되었다. 오늘도 동네 남자들은 고롱나무 아래에서 찬옥이 오빠가 갖다 놓은 평상에 앉아 술파티를 벌였다.

윗집 할머니는 올해 무더웠던  여름 나기가 힘들었는지 얼굴이 퀭해지셨다. 90의 고령에도 여전히 정정하시던 분이 한해 전부터는 짓던 농사도 거의 내려놓고 집 옆 텃밭만 일구신다. 이제 힘이 부치신 것이다.

연두부를 가져다 드리러 집에 들렀더니, 그냥 가려는  나를 한사코 다시 세워 불러 깨를 나누어 주셨다. 시골인심이다.

우리 집 밤나무가 윗집 할머니 담장을 넘어 가지가 뻗어 무성하게 자랐다.  잎사귀가 가을이면 할머니네 집 마당으로 나뒹굴어 청소하기 힘들다며 구시렁대셔서 3그루는 밑동만 남고 베어버린 것이 다섯 해도 넘은 것 같은데, 다시 담장만큼 자라 버렸다. 할머니는 아직 잎사귀가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밤나뭇잎 때문에 쓸어도 쓸어도 안 없어진다며 구시렁대셨다.

"할머니 가을에 밤 떨어지면 다 주워 드세요"

나의 한마디에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다.

"할머니 오빠 오면 마당 쓸어달라고 하세요"

더 이상 할머니는 나뭇잎이 떨어진다며 구시렁대지 않는다.  지난해 겨울 할머니가 아들집에 간 후 그 집 마당을 쓸러 갔을 때 밤나무 잎이 얼마나 많이 윗집 할머니네로 떨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할머니네 마당은 먼지 한 톨 없이 갈끔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옆집에서 날아온 밤나무 잎사귀에 얼마나 짜증이 나셨을까? 오늘도 윗집 할머니는 동네 어귀에 나가 누가 지나가나 인적 없는 마을을 지켜보고 계신다.



미네 엄마가 요양원에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산책하는 나를 불러 깨나, 전복등을 나누어 주시던 분이셨다.

"느그 엄마가 나한테 정말 잘해줬재'

하시며 뭐든 나누어 주시려고 하신 분이신데,

지난해에 노인정에 가면 얼굴을 뵙기 힘들었는데, 무슨 일인지 알아보니  치매가 걸리셨다고 한다. 마음이 아리다. 나이를 먹고, 홀로 되고, 그리고 병들어 가다 마지막은 아무것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인생이다. 우리는  무얼 그리 많이 가지려고 아등바등거리며 난리법석을 치는 것일까.


오랜만에 강아지들과 밤마실을 관산리 쪽으로 나가보았다. 담벼락의 그림이 바뀌어있었다. 꽃그림으로 아동틱했던  벽화가 예술작품으로 바뀌어 있었다. 동아리가 아닌 이번에는 마을벽화를 그리러 화가가 다녀간 것 같다. 밤이라 어두워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동네 사람들의 얼굴도 그려놓았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의 얼굴이  외국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떠나고 벽화로 얼굴만 남아있는 곳에 엄마나 아버지의 얼굴을 찾아보았지만 더 이상 이 마을에 있지 않아서 인지 찾을 수 없었다. 사람이  살지 않은 것처럼 마을은 조용했다. 가로등 불빛을 벗 삼아 강아지들과 엄마가 주무시는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꼬랑갓은 봄일까 여름일까 가을일까 겨울일까 사계절 어디에 서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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