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세기말의 분위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고, 다가오는 새천년을 향한 기대감으로 들뜨게 하기도 했다. 희망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그때, 나는 회색빛 도시 북경에 있었다.
어린 시절, 하나님 앞에 올려드렸던 헌신의 기도를 나는 잊을 수 없었다. 제자훈련과 선교훈련을 받은 후, 단기 선교사로 중국에 파송되었고, 북경의 한 유아원에서 2년 동안 평신도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갔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치의과대에서 공부 중인 한국인 룸메이트가 남자친구를 만나러 외출한 저녁, 북경 의과대학 기숙사에는 나 혼자 남아 있었다. 한국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하느라 중국어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시간이 없었지만, 한 학기 동안 언어연수를 마친 상태였다.
내가 머무는 작은 방 안에는 이제 가구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남은 것은 라탄 수납장과 파란 쿠션 의자 하나뿐. 구석에는 까만 여행 가방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가방을 들고 낯선 땅을 떠돌며, 결국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만, 이제는 다시 새로운 여정을 향해 떠나야만 한다.
"하나님,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온 이곳이 이제는 제2의 고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나아갔듯, 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홀로 길을 걸을 때도, 자전거를 탈 때도, 운동장을 달릴 때도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을 감싸고 있었다. 숙소 밖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고, 나는 조용히 하나님 말씀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내 안에 성령의 바람이 뜨겁게 불어왔다.
나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나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 심령 깊은 곳으로 울려 퍼지는 하나님의 음성에 나는 방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얼굴이 바닥에 닿고, 두 손을 양옆으로 뻗으며 내 몸은 십자가 모양이 되었다.
"이곳은 거룩한 곳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었던 것처럼, 나도 감히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그분 앞에 완전히 굴복했다. 마치 신부가 사제 서품을 받는 순간처럼, 하나님 앞에서 나의 신을 벗었다.
"하나님, 제가 듣겠습니다."
"너는 왜 여전히 두 마음을 품고 있느냐?"
"하나님만 따르겠습니다."
"너는 한 발은 세상에, 다른 한 발은 나에게 두고 있구나."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너의 두 발을 나의 땅에 놓아라."
나는 깨달았다.
나는 북경에서 한국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도, 선교사님을 도와 비밀리에 주일학교 교사 강습회(한족 및 조선족)와 제자훈련을 진행했다. 북경 한인교회에서 유아부를 맡아 섬겼고, 여름이면 중국 내 한인교회 성경학교 봉사에 참여했다. 또한, 중국을 찾아오는 단기 선교팀을 안내하고, 매주 토요일에는 북경성경연구원 간사로서 한국 유학생들을 섬겼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 편에 서 있는 듯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나는 아스팔트 한가운데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하나님께 둔 채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온전히 헌신하지 못한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이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너를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다.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다."
그 순간, 세상을 붙들고 있던 내 한 발이 하나님께로 옮겨졌다.
이제, 나는 두 발 모두 하나님의 땅 위에 서 있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1~2)
두려움을 안고 중국으로 떠나왔던 나는, 이 말씀을 붙잡고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거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땅을 떠나야 한다. 다시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아야만 했다.
"하나님, 제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듣기를 원합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기도를 마친 후에도,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내 영혼은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한 소망으로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