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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산진달래 May 15. 2024

출발

1995년 여름, 나는 인천 국제 여객터미널에 서성대며 서 있다. 이제 이 나라를 떠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마음은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와 불안으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당장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떠나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은 든든했다.

중국으로 떠나는 나를 배웅 하러 나온 사람은 인천에 살고 있던 언니였다. "잘 가라 " 인사를 하는 언니의 모습은 이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에게 작별을 고하는 사람 같았다. 내가 눈물을 흘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니는 눈물을 흘렸다. 남자아이들이 군대에 가는 마음이 이런 마음이려나!
내가 이 땅을 떠나는데 나에게 작별을 고하러 온 사람이 단 한 명 뿐이라니 씁쓸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중국 천진을 향해 배는 서서히 출항했다.

중국 천진항에 도착 할 때까지 하루를 꼬박 가는 뱃길에서 우리는 배 멀미에 시달렸다. 그래서 인지 어느 누구도 선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흑룡강성까지 가는 팀원들이 배를 타고서야 처음으로 모두 함께모였다. 의사 간호사 의료팀으로 구성된 12명의 팀원과 함께 하고 있다. 선실에서 다같이 모여 연습하지 못한 것들을 연습 해야만 했다. 중국인교회에 방문할 경우 특송으로 할 부채춤 이나 무언극 등이다. 팀장인 나는 마음이 분주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중국을 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중국 북경에 처음으로 한국유아원이 생긴다. 북경한인교회에서 교민들의 자녀를 위해 유아원을 개원 한 것이다. 유아교육에 몸 담고 있었던 나와 2명의 선생님은 낯선 땅 북견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아직 유아원 개원 시기가 남아있던 관계로 단기팀으로 구성된 의료팀에 우리 세명이 선생님으로 합류했다. 의료팀이 진료를 할 시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일정이 끝나 의료팀이 한국으로 돌아가면 세명의 선생님은 북경에 남아 유아원 개원 준비를 해야 한다.

배는 서서히 서해를 지나 국경선을 넘었다. 다음날 어스름한 밤중에 중국 천진항(텐진)에 도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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