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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가 울리면

by 약산진달래

고향의 종소리와 하나님과의 언약

차창 너머로 따스한 봄볕이 스며든다.
차는 서서히 마을 어귀로 접어들고 있다. 산이 울타리처럼 마을을 감싸고, 멀리 다도해의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산 아래로 아지랑이가 연둣빛으로 피어오르고, 겨우내 방치되었던 밭은 이제 땅을 갈아엎고 씨앗을 뿌릴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한때 사람들로 북적이던 상점가는 이제 적막만이 감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여전히 우뚝 솟아 있는 종탑이 보였다.
어린 시절, 그토록 나를 부르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댕댕땡.'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새벽이면 종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어린 나는 늘 교회 종을 쳐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예배를 알리는 종을 처음 치던 날.
작은 손으로 종에 매달린 긴 줄을 힘껏 잡아당기자, 줄이 흔들리며 ‘댕댕’ 소리를 냈다.
그 신성한 소리를 울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종소리가 울리면, 금요일 저녁엔 구역모임, 토요일엔 학생 예배, 그리고 주일이면 주일학교에 갔다.
엄마가 “청소해라” 하시는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교회로 향하던 날들이었다.

전도사님을 따라 친구들과 함께 언덕을 넘고, 공동묘지를 지나, 칠흑 같은 밤길을 오직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걸어갔다.
토요일 저녁엔 예배를 마친 후, 작은 단칸방 사택에 모여 명화극장이 끝날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곤 했다.
그렇게 불빛 하나 없는 까만 밤길을 언니들과 함께 걸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헌신의 기도를 드리던 순간

학습을 받기 전날 밤, 식구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이불 속에서 쪽지에 적어둔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을 속으로 외웠다.
그리고 일요일, 어린 나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중학교 1학년 여름.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주최한 수련회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헌신의 기도를 드렸다.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너는 하나님 옆에 꼭 붙어 있을 거야.
목회자가 되지 않아도, 사모가 되었거나 교회 선생님이 되어 있을 거야."

박 전도사님의 그 말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언약처럼 가슴 깊이 새겨졌다.
고향을 떠난 후에도, 어디를 가나 나를 따라다녔다.
내 멋대로 살고 싶었던 청소년기에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청년기에도,
그 말씀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고향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하나님과의 언약

종탑 옆으로,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듯 단단한 돌들로 지어진 아담한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어린 시절, 내가 다녔던 교회다.

이곳은, 먼 낙도까지 내려와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의 피땀이 서린 곳.
백 년이 넘는 선교 역사를 자랑하는 장로교회다.
몇 해 전 100주년을 맞아 도로 옆에 새로운 교회 건물이 세워졌지만,
고향에 올 때면 내 눈은 언제나 내 영혼의 고향을 향한다.

"너는 하나님 옆에 있을 거야."

노아가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했듯,
나도 이 교회를 바라보며 하나님과 나 사이의 언약을 다시금 기억한다.

지금 나는 목회자도, 선교사도, 주일학교 교사도 아니지만
여전히 하나님과 함께 있다.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세기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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