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야~"
어디로 간 걸까.마당에 나와 부르던 목소리는 텅 빈 공기를 맴돌 뿐, 돌아오는 발걸음은 없었다. 동네 마실을 나가도 늘 일정한 시간 안에 돌아오던 녀석인데, 오늘따라 너무 늦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그래도 기다려야 했다.
어제 시골에 내려왔다. 하지만 밤사이 엄마의 기침이 유난히 심해 오늘은 다시 광주로 올라가기로 했다. 집에 들어서자 개들이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었다. 막내의 반가운 인사를 시작으로 초코의 목줄을 풀어주고, 이어 마루의 목줄도 풀어주었다.
그러나 집 안은 이미 개들의 영역이 되어 있었다. 작은방 앞 마루에는 이불 하나와 사료가 놓여 있었고, 막내가 지내는 자리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안방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흙과 개털이 침대를 뒤덮어 아무리 치워도 다시 나타났다. 엄마는 그 방에 누워 있으면 기침을 멈출 수 없었다. 그 때문인지 나 역시 밤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골의 아침 공기는 한낮과 달랐다. 해가 저문 뒤 텃밭에서 잠시 토마토를 따올 때만 해도 땀이 줄줄 흘렀는데, 아침에 가지와 토마토를 따러 나가니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어왔다. 이 정도면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낮의 태양은 다시 열대야의 기운을 퍼부어 잠깐만 움직여도 금세 땀에 젖어버렸다.
아랫집 오빠네는 이른 아침부터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었다. 어제 인사드리러 갔을 때, 오빠는 “너무 덥다”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당에서 깨를 까부르던 아랫집 언니를 보니, 예전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그리움이 밀려왔다. 며칠 전 고동을 잡았다며 얼려둔 것을 내게 건네며, 엄마 반찬으로 해드리라던 언니의 손길은 더없이 따뜻했다.
차 밑에 웅크려 있던 마루를 불렀다. 내가 떠날 것을 눈치챈 듯 마루는 꼬리를 내리고 몸을 움츠렸다. 그 녀석을 안아 다시 자리에 묶어두며 초코를 기다렸다. 그러나 한 시간이 지나도 소식은 없었다. 더는 시간을 끌 수 없어 짐을 챙겨 나오려던 순간, 마당의 작은 마루 밑에서 초코가 기어 나왔다. 떠나는 나를 알면서도 묶이기 싫어 그 자리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막내는 벌써 집 밖으로 도망가 버렸다. 서운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도 묶일까 봐 두려워서였을까. 혹은 내가 데리고 떠날까 봐 그러는 걸까. 막내의 행동은 늘 물음표로 남는다.
잘 지내고 있으렴. 시골집은 이제 개들의 집이나 다름없다. 풀어놓고 싶지만, 시골에서 돌아다니는 개는 금세 떠돌이로 인식되어 어르신들의 돌멩이를 맞기 십상이다. 혹여 밭에라도 들어가면, 땀으로 지은 농작물을 망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불볕더위 속, 불쾌지수가 높아진 여름날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게 초코와 마루, 그리고 막내를 남겨둔 채, 나는 다시 도시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음 한쪽이 시리게 서운하지만, 시골집의 계절은 여전히 흘러가고, 그곳에는 세 마리의 개들이 주인인 듯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