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정말 ‘현재’일까



[ 나는 지금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과거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 오시는 고객 중에 중국인 부부가 있다.

온라인 어패럴 사업을 하는 남편분과는

말이 잘 통해,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어느 날, 그분이 내 머리를 보며 말했다.

“쇼트커트, 정말 잘하신 거예요.

훨씬 젊어 보이고, 느낌도 지금이 더 좋아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이번에 한국 갔을 때 엄마가 예전처럼 머리 길었을 때가 더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표정이 너무 진심이라,

다시 길러볼까 고민 중이에요.”


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전혀요.

어머니는 본인 시대의 ‘예쁨’을 기준으로

보시는 거예요.

지금의 기준은 지금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해요.

저는 사업도 그렇게 합니다.


‘지금 좋아 보이는 것’은 현재를 따라야 하니까요.”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마음이 멈췄다.


나는 그동안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익숙한 기준’으로 돌아가려 했던 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어떤 색이 유난히 예뻐 보인다 싶으면

그 해의 유행 컬러인 경우가 많다.


내 감각의 일부는

이미 ‘현재’의 흐름 안에 있다.




그렇다면

‘현재’란 무엇일까.


나는 과거의 축적 위에 서 있으면서도,

미래를 향해 기울어진 채 살아간다.


그 사이에서

사람은 자주 착각한다.


지금의 선택이 ‘나답다’고 믿지만,

사실은 과거의 나에게 익숙한 방향을 택하고 있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때로는

낯선 선택이

오히려 더 ‘현재다운 선택’ 일 수도 있다.


오늘의 나는

두 발은 단단히 땅에 붙이고 있으면서도,

시선과 마음은 아주 조금 위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



고개를 너무 들면 불안해지고

너무 숙이면 멈춰버린다.


딱 15도 정도.

지금보다 아주 조금 앞을 보는 정도.


그 정도의 긴장이

현재를 살아가게 만든다.


과거는 이미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

굳이 다시 끌어와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미래의 나는

지금 내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내가 과거가 아니라

미래와 연결된 방향으로 서 있는가이다.


언젠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마주한다면,


서로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와 잘 맞는 사람을 금방 알아보듯이.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