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7 김종삼 <누군가 당신에게 물었다>
‘내 멋대로 해석해서 미안해’라고 수십번 말해주었습니다. 새벽 1시, 신음소리에 눈을 뜨니, 얼마나 아파하는지, 마치 사람의 신음소리 같았어요. 엄청난 대 수술 후 하루도 안되어 저를 보고 걸어나오고, 이틀째, 밥을 먹고, 어제는 햇볕 따뜻한 책방에 앉아, 사람들도 만나고 하길래, 아무 생각없이 다 나은 것 같은 착각에 말했지요. ‘사람과 달리 확실히 고통을 덜 느껴요. 앞으로 몇 년은 더 살겠어요.’
이 얼마나 무지하고 이기적인 판단이었는지. 한 순간의 모습을 보고 제 멋대로 해석하여 타인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았으니... 진통제를 먹이고, 두 시간 가까이 거친 호흡을 바라보며, 복실이 내면의 말을 들었습니다. 아니, 귀를 기울이니, 저절로 들려왔어요. 의사가 제 아무리 빨리 회복되고 있다고 말했어도, 수술 전처럼 아픈이의 소리를 먼저 듣고, 끝까지 기다리며 재촉하지 말아어야 하는 일이었지요. 벌써 아침이 밝았군요. 복실이도 저도 언뜻 잠이 들었나봐요.
관계는 혼자만이 맺을 수 없네요. 잘 맺어진 관계의 첫 발은 잘 들어주는 일, 본질을 잘 살펴보는 일임을 알면서도, 역시나, 머리에서 가슴으로 앎이 내려오기까지는 평생이 걸려도 힘든일인가봐요. 오늘은 만사를 내려놓고, 타인과 타 물성의 본질을 헤아리기에 좋은 묵도의 시간만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김종삼시인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사진, 지인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