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2 송진권 <미복 이용원>
<80일간의 세계일주>와 <해저 2만리>의 작가 쥘베른(1828-1905, 프랑스)의 일화에 이런 얘기가 있데요.
-나는 공장에 들어가서 기계들의 작동법을 몇 시간씩 들여다보았다. 지금도 그것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경험이다 – 라구요.
이렇게 태어난 그의 소설들의 공통점은 과학과 기술과 픽션의 조합이었다는 평과 함께 과학소설의 아버지라도 부릅니다. 산업혁명초기 보았던 기계들 모습이 글의 소재가 되었죠.
글쓰기의 소재를 찾기 어렵다고 말하지요. 거창한 것을 찾으려는 순간 글쓰기는 실패한다고, 그냥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것, 그 모든 것이 글의 소재가 된다고 말하지요. 그래야 글의 생명 원천이 되는 담백하고 솔직한 마음이 나오니까요.
요즘에 글을 써야 할 일이 있는데, 도저히 마음이 잡히지 않네요. 시국이 언제 안정이 되려는지 오로지 그 날만 기다리는데요. 춘삼월이라는데, 벌써 3월도 보름이나 되어가는데, 이번에 오는 봄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지 정말 알 수 없습니다. 처음으로 봄을 사 주어야 하나, 산다면 그 가격이 얼마쯤 될까, 엄청 비싸겠지, 나 같은 사람은 그렇게 비싼 봄을 살 만한 돈도 없는데... 별의별 생각이 꼬리를 물고 아침에 일어납니다.
하여튼 글 쓰기 싫으니까 별의 별 핑계를 다 대는 모양이지만, 마음이 그리 복잡하고 헝클어져 있다는 고백을 하게 되네요. 친구가 책방에 꽃도 심어주고, 바리스타 강의의 고소한 맛도 참 좋았지만 다음 시를 읽으면서 터지는 웃음소리에 한 시름이 사라졌답니다. 조금 길어도 에세이 읽듯이, 함께 읽어보시게요. 아마도 시인의 동네 이야기겠지요. 일상의 소재로 빛나는 시, 송진권 시인의 <미복 이용원>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미복 이용원 – 송진권
미복이용원의 할아버지 이발사는 팔십이 넘고
거동이 불편해서 겨우겨우 걸음을 뗀다
이발의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가
안채에 머리 깎으러 왔다고 소리를 지르면
한참 만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가래 돋워 뱉는 소리가 나며 삐이걱 문을 열고 가게로 나 오는데
귀가 먹어 묻는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들고
진지 잡수셨냐고 물으면 마누라가 아들네 집에 갔다는 둥
엇그제 멧돼지가 동네에 내려와서 난리가 났었다는 둥
엉뚱한 소리나 퉁퉁 한다
덜덜 떠는 손으로 면도칼을 혁대에 갈아 내 목을 누를 때면
바짝 긴장해서 침을 꼴깍 삼키며 움츠러드는데 어떻게나 느린지
성질 급한 나는 식은땀이 흐르고 황천길 몇번이나 다녀온 듯 속이 탄다
흰 보자기를 벗기고 손수 연탄난로의 들통에 든 따순 물과
찬 수돗물을 섞어 머리까지 감겨주시는 것이 황송하기도 한데
아직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센지 내 머리 벅벅 긁어가며
거품을 내고 구석구석 씻겨주실 적엔 시원하기도하다
드라이까지 싸악 끝내고 손때 문은 이발 가위로 새떼 지저귀는 소리를 내며
머리를 다듬다가 젊은 날 주워다 모아놓은 진열장 수석들의 내력과
먼지 앉은 고목나무 뿌리의 이야기까지 들려주실 때면
저절로 고개가 숙어들기도 하는데
이발과 조발 염색 면도 가격이 빛바랜 틀에 사업자등록증과 나란히 있는 걸 보며
사업자등록증의 스무살 청년이 팔십이 넘을 때까지의 내력을 들으며
미복이용원 가운데 자릴 잡은 연탄난로와 들통과
진열장에 안전히 놓인 수석이며
정년 퇴임이며 수연 회갑 결혼이 박힌
수건들이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 것인데
만원짜리를 꺼내놓으면 지금도 공손히 구십도 인사를 하며 두 손으로 받으신다
늙은 이발사의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받으며
미닫이문 옆에 고개 숙인 해바라기의 인사도 함께 받으며
한참이나 젊어져서 삼색등 도는 이발소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참고로, 커피바리스타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요,,, 앞으로 재밌는 커피 이야기도 들려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