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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봄날편지247

2023.12.22 이색 <동지(冬至)>

by 박모니카

동지(冬至), 큰 설을 앞두고 문안 인사드리는 작은 설날. 밤이 가장 긴 음(陰)의 기운이 하늘을 찌르는 날. 하지만 동시에 양(陽)의 새싹이 꿈틀꿈틀 배시시 눈을 뜨려 애쓰는 날. 그래서 예전부터 조상들은 새해가 시작된다고 떡과 죽을 끓이며 하늘에 제사를 지냈겠지요. 동지에 대한 여러 속담이 있지만 저는 이 속담이 좋아요. ‘동지가 지나면 푸성귀도 새 마음 든다.’ 만물에 마음 없는 것이 없으니, 어찌 사람만이 진짜 마음을 갖는다고 우길 수 있을까요. 연 사흘째 하늘이 내려주시는 천경 속 설경을 보면서 제아무리 뛰어난 글이라도 당당하게 제 속을 다 보이는 나뭇가지와 그 위를 덮어주는 눈송이의 배려를 어찌 나타낼소냐...하는 부끄러움이 일었습니다. 눈을 감고 이마에 부딪히는 눈송이를 새기고 있자니 미약한 차가움은 이내 죄책감으로 바뀌어, 이태원 참사규명특별법을 외치며 이 추위에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눈발을 온몸으로 맞으며 함께할 수 있는 작은 일, 첫 세례 받았던 마음을 다시 모아 이 세상 모든 가난한 사람과 억울한 사람을 향해 두 손을 모으는 일. 오늘 새벽도 온 천지가 하얀 세상입니다, 붉은 팥죽의 눈과 마주한 당신. 분명 추위에 웅크려 있었을 당신 마음속 어린 푸성귀에게 그 양(陽)기가 전해질 거예요. 새 마음 새 다짐으로 불끈하며 일어설 거예요. 사람이 만든 날은 다 속뜻이 있으려니 하며, 가까운 지인들과 따뜻하고 붉게 피어나는 동지팥죽 드셔 보시길... 송년과 새해를 향한 일상의 담소가 곁들어지는 시간 만드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동지라서 오랜만에 한시 한편 올려요. 고려시대 시인 이색의 <冬至동지>입니다. 봄날의 산책 모니카


冬至 동지 - 李穡(고려의 시인)

冬至陰乃極 동지에 음(陰)은 곧 극에 이르니

故有一陽生 이런 까닭에 양(陽) 하나 생긴다

聖人喜之甚 성인은 이를 매우 기뻐하여

考卦以復名 괘를 헤아려 복(復)이라 말했다

是曰天之春 이를 일러 천의 봄(春)이라 한다

萬物所由萌 만물이 움이 돋는 이유인 바

人心敝於欲 인심도 욕심으로 가려져 있다

善端時露呈 선한 마음이 드러날 때인지라

養之在君子 이를 키움은 군자에게 있도다

匪他先立誠 다름 아니라 먼저 성(誠)을 세우고

勤勤去非禮 부지런히 예가 아님을 없애라

始見本然明 비로소 본연의 밝음을 보려니

豆粥澡五內 팥죽으로 오장 안을 씻어내면

血氣調以平 이로써 혈기가 고르게 퍼진다

爲益信不淺 믿음의 유익함은 얕지 않으니

可見聖人情 가히 성인의 정(情)이 보인다

世道漸以降 세간의 도는 차츰 깎아내려지니

理功何日成 다스린 공을 어느 날 이루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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