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자주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도
12월이 되면 “우리 얼굴 봐야죠?” 하는 연락들을 해온다.
나는 평소 일도 혼자 하고,
산책, 카페, 혼밥, 쇼핑까지 대부분 혼자 하는 편이라
누군가에게 시간과 감정을 맞추는 일이 은근히 힘들다.
그래도 예외가 하나 있었다.
가까운 동네 친구들과의 저녁 술자리만큼은
나를 내려놓고 편하게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술자리는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오랜 시간 술과 수다가 이어지고,
나이를 먹으며 특히 50이 넘어가자
몸 이곳저곳에서 보내오는 신호들 때문에
점점 모임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한 번은 치과 치료를 받던 중
주말이 끼어 약을 먹으며 버티던 상황에서 모임에 나갔다가
술을 마신 탓에 주말 내내 이가 아파 고생했던 적이 있다.
그다음 해에는 몸에 두드러기 기미가
조금 보이던 때
또 모임이 생겨 술을 마셨더니,
다음날부터 팔, 다리, 목, 심지어 얼굴까지
좁쌀 같은 두드러기가 올라와
근 석 달을 피부과와 내과를 오가며 고생을 했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해야 했고,
피부과에서는 약과 주사를 처방하며
“당분간 술은 절대 마시지 마세요”라는 주의를 받았다.
약과 주사로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밤마다 가려워 잠도 못 자게 되니
그때부터 술은 쳐다보기도 싫은 독한 약물처럼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술과의 이별’을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세 달 후, 지긋지긋하던 피부 발진은 거의 사라지고
팔에 자잘한 흔적만 남았다.
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러자 생긴 변화들이 참 놀랍다.
건조하고 거칠던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화장을 하지 않아도 윤기가 흐를 정도로 달라졌다.
둘째는 아침이 늘 상쾌해졌다는 것.
예전엔 술 마신 다음날 특유의 무거운 취기가 남았는데
이제는 주말마다 가볍고 맑은 아침을 맞이하니,
“원래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였구나…” 싶다.
가장 좋은 변화는,
내가 술을 끊자 남편도 자연스럽게
집에서 술을 거의 마시지 않게 되었다.
그러자 빈 캔과 병이 줄어 재활용 쓰레기가 확 줄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맥주며 와인을 마셨던 건지...
하지만 어려움도 있다.
동네 친구들과 만나면
맨 정신으로 긴시간을 버티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처음에는 이성적으로 대화를 하다가도
술이 몇 잔 들어가면 늘 하던 말이 반복되고,
평소 묻어두었던 불만이 갑자기 튀어나오고,
알코올이 뇌의 포장 기능을 방해하면서
결국 작은 다툼으로 번지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쁘게 하고 나온 화장기는 다 사라지고
눈은 흐려지고 피부는 붉어지고…
그러다 보면 친구들은
"2차 가자, 3차 가자" 하며 일어난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2차까지는
못 갈것 같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
친구들도 2차를 카페로 가주기도 하지만...
이렇게 2차까지 함께하고 집에 돌아오면
맛있게 먹은 음식은 다 어디 가고
오히려 몸무게가 빠져 있을 때도 있다.
무엇보다 힘든 건,
맨 정신으로 술기운 가득한 친구들의 대화를 받아주는 일이
정말 고통이라는 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술기운으로 흔들리며
저런 모습이었겠구나 싶어
다시는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은거다.
그래서 이제는
‘술을 마시는 모임’과는 작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20년 가까이 이어온 소중한 모임이라
마음 한편이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술을 정말 사랑하는 이들에게
“우리 이번 연말에는 점심에 만나 브런치 먹자”라고
제안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50, 몸은 더 이상 술을 받아주지 못하고
술 취한 친구들의 감정까지 받아줄 여유와 체력도
점점 소진되는 시기가 되는 것 같다.
50은 나를 즐겁게 했던 것들과
어쩔 수 없는 이별을 준비하고 맞이해야 하는 시기인가 보다.
50, 술 없는 연말로 건너가는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