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소중한 것을 알아차리는
— 타샤 튜터
지난주 시작된 타샤 튜더 전시회에 다녀왔다.
정원을 가꾸며 그림동화를 쓰는 할머니라는 정도의 짧은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궁금해지는 전시였다.
11월에 얼리버드로 구입한 티켓을 쥐고 기다리는 한 달 동안
그녀의 그림책 〈타샤의 크리스마스〉를 사서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읽다 잠이 들었다.
책을 읽을수록 타샤의 삶 속에 나도 함께 들어가
잠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그녀는 12월 한 달 내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그 과정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함께 사는 동물들을 위해 손수 만드는 선물들은
모두가 핸드메이드였고
그 안에는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여름 내내 키운 과일로 잼을 만들고
진저브레드를 굽는 시간,
맛있는 냄새만으로도 집안이 들썩이는 풍경이
그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림마다 꼭 등장하는 코기들은
식탁 옆이나 벽난로 곁에서
기다림마저 설레는 표정으로 음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샤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보고 관찰한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림이 얼마나 작고 아기자기한지
실제 원화를 감상하려면 돋보기가 필요해
전시장 곳곳에 돋보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들판에 핀 노랑 코스모스, 패랭이꽃, 제비꽃,
수많은 들꽃과 열매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그림들은
화가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 그림에 이야기를 입혀 나온 동화책이
백 권이 넘는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그 많은 살림을 손수 해내면서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책으로 남긴 삶.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별도의 회사나 에이전시 없이
늘 쓰고 그린 일상이 작품이 되어
칼데콧 명예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는 이야기는
더 놀라웠다.
타샤는 직업을 묻는 질문에
두말없이 ‘가정주부’라고 답했다고 한다.
가정주부는 찬탄할 만한 직업이라고,
자랑스러워하며 말이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고
꽃을 키우고, 염소를 돌보고,
사과 농사를 지으며 살아낸 일상이
그녀에게는 그대로 이야기와 그림이 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전업주부를
‘노는 사람’, ‘하찮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여겨오기 시작했을까?
타샤의 잼처럼
우리는 겨울을 대비해 김장을 하고
매일의 밥상으로 가족에게 수많은 선물을 건네고 있다.
그 사실을 스스로 알아보고
기뻐해도 괜찮지 않을까.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배달 음식 대신
건강한 국과 찌개를 끓여
가족의 몸을 돌보는 일에 대해서도
스스로의 자존감을 더 높여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점점 밖으로 나가 경제 활동을 해야만
멋진 삶을 사는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의 소리에 속아,
건강하고 맛있는 주방에서의 요리를 포기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는 시간마저 빼앗긴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그랬다.
세상에 나가 일하고 인정받는 삶이
더 멋진 삶이라 믿으며
쫓기듯 살았고,
살림은 늘 뒤로 밀려 있었다.
그렇게 지내온 시간이 쌓여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온 요즘에서야
비로소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그 시기에 타샤를 만났다.
50이 넘어 연말을 맞으며
그동안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니
내게 와주었던 모든 일들이
참 소중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내가 만든 시간 속에서
달콤해진 잼을 나누어 먹는 삶.
50, 그래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