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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질녘 Feb 21. 2024

돌다리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릴 테니까요

해방직후 그 많은 지식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조선문학가동맹은 그때 당시에 무슨 활동을 한 것일까. 근대사회를 만들고 간 그들의 문장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기 위해 책을 펼친 것인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못해도 다시 그 책이 태어난 해로 돌아갈 수 없어도 나는 그 시대를 느끼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들이 하려 했던 그 말들 속에서 인생의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소설은 두꺼울 필요도 없다. 그 이야기가 말하는 인간의 내면이 내가 읽기에 나쁘지 않았다. 열 페이지도 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건져 올렸다면 나는 문학의 바다에 언제든 낚싯줄을 드리운다. 그들의 낯선 표현들과 사투리는 언제 읽어도 정겹다.


그들 문학의 바탕은 무엇이었을까. 일본 문학인가. 베이스를 알 수 없는 그들의 문장이 조선시대의 것은 아닌 듯한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것은 그들의 삶과 닮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삶이 이야기가 되어 오늘 내가 읽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이름들이 낯설지가 않다. 가족 누군가의 죽음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 길이 명확해진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 명확한 길도 누가 보기에도 자명한 길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세월은 세상을 바꾸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은 바꿀 수 없다.


"네가 뉘 덕으루 오늘 의사가 됐니? 내 덕인 줄만 아느냐? 내가 땅 없이 뭘루? 밭에 가 절하구 논에 가 절해야 쓴다. 자고로 하눌 하눌 허나 하눌의 덕이 땅을 통허지 않군 사람헌테 미치는 줄 아니? 땅을 파는 건 그게 하눌을 파나 다름없는 거다


땅을 밟구 다니니까 땅을 우섭게들 여기지? 땅처럼 응과가 분명헌 게 무어냐? 하눌은 차라리 못 믿을 때두 많다. 그러나 힘들이는 사람에겐 힘들이는 만큼 땅은 반드시 후헌 보답을 주시는 거다. 세상에 흔해 빠진 지주들, 땅은 작인들헌테나 맡겨버리구, 떡 도회지에 가 앉어 소출은 팔어다 모다 도회지에 낭비해 버리구, 땅 가꾸는 덴 단돈 일 원을 벌벌 떨구, 땅으루 살며 땅에 야박한 놈은 자식으로 치면 후레자식 셈이야. "


"제 배 속이 고픈 것은 참아 가며 입에 얻어 문 것은 새끼들부터 먹여 길렀으나, 새끼들은 자라서 나래에 힘을 얻자 어디로인지 저희 좋을 대로 다 날아가 버리어, 야위고 늙은 어버이 제비 한 쌍만 가을바람 소슬한 추녀끝에 쭈그리고 앉았는 광경을 묘사하였고, 나중에는 그 늙은 어버이 제비들을 가리켜, 새끼들만 원망하지 말고, 너희들이 새끼 적에 역시 그러했음도 깨달으라는 백낙천 풍자의 시였다."


이태준

소설가.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조치 대학에서 공부했다. 1925년 시대일보에 단편소설 오몽녀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구인회 회원으로 활하고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했다가 월북했다. 주요 작품으로 달밤, 까마귀, 복덕방, 패강랭, 농군, 해방전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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