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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질녘 Apr 03. 2024

나의 이중 언어 시절의 이중성

박완서

기울어진 국운을 바로 잡기엔 내 힘이 무력하기 그지 없고, 망국노의 수치와 설움을 감추려니 비분을 금할 수 없어 스스로 순국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구나. 피치 못해 가는 길이니 내 아들아, 너희들은 어떻게든지 조선 사람으로서의 의무와 도리를 다하여 나라를 기어이 되찾아야 한다.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고 먼 훗날에라도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벽초 홍명희 부친의 유언.     


국어가 두 개였던 그 시절은 일본어가 국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일본어는 국어가 아니다. 그런데 일본이라는 국가가 대한민국을 식민지(경술국치)로 삼으면서 1910년부터 1945년을 대한민국 사람들은 일본어를 국어라고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참 슬픈 사실이다. 


수많은 식민지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대한민국이 독립을 하지 못했다면 나는 한국어가 아니라 일본어로 글을 쓰고 있고 일본어가 당연히 국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십년도 아니고 삼십년을 넘게 일본인으로 살아야 했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는 다시 들어도 슬프다. 나라를 잃은 슬픔에 끝나지 않고 자신의 언어와 문화마저 쓸 수 없었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학창시절에는 머나먼 옛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국사 시간이 그렇게 중요한 스토리들의 집합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들의 역사일 뿐 나의 역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관심을 가질 필요도 관심 가지지도 못했다. 나는 오히려 소설을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역사를 배워가고 있었다. 국사 시간은 시험을 치기 위한 암기과목일 뿐이었고 내가 배운 역사들은 소설 속에 있었다. 소설이 없었다면 나는 역사라는 과목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 같다.


삶이라는 것은 스토리에 깃들어 있었다. 내가 태어난 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서 태어나게 되었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부모님의 러브 스토리를 더 궁금해 하는 것이 역사가 아닐까. 역사가 가진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 시대의 흐름이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사실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스토리라는 것이었다. 그 스토리에 깃든 애환에 감동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을까.


한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아니 글을 쓸 수 없었다. 글도 쓰지 못하고 나는 늘 피곤에 지쳐있었다. 몰입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할 때 몰입을 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몸이 피곤하고 눈꺼풀의 무게가 천근 만근이 된다고 해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되면 다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랜 만에 수필 한꼭지를 읽고 글을 쓴다. 평소같으면 버렸을 시간을 나는 글 한페이지를 작성하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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