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씀에서 글을 쓴다.

맡기다라는 글감을 읽고 나의 과거를 쓴다

by 해질녘

맡기다.

타인에게 인생을 맡기기에는 인생이 짧다.

지금의 사회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옛날에도 학교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학교에 가는 것보다 검정고무신 끌고 소 풀 먹이고 밭에 가서 일 도와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다 피곤에 쓰러져 지쳐 자는 것이 일상인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겨울에 뜨거운 물이 없어서 곤로에 성냥불을 갔다 대고 이리저리 흔들면 불이 붙었다.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데워놓으면 그것을 아껴 쓰느라 바가지에 찬물과 섞어서 씻었던 기억도 화장실에 휴지가 없어서 신문지 구겨서 뒤를 닦고

구더기가 기어가는 화장실에 다리 벌려 냄새 참고 똥을

싸고 나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절이 정말 있었던 것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니 아득하다.


외할머니 집에는 신기한 것이 더 많았다. 가로등조차 없어서 저녁에 집에 가는 길에 논두렁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하며 걸어가던 기억과 안방 문풍지에는 네모난 유리가 달려 있어서 누가 왔는지 문을 열지 않고서 알 수 있었다. 집안에는 따뜻한 화로와 기다란 담뱃대가 있었다. 회색재를 뒤집으면 뻘건 불이 방의 온기를 유지해 주는 것처럼 뜨거웠다. 커다란 나무 문은 큰 나무 걸쇠를 길게 밀어서 잠글 수 있었고 삐그덕 거리는 문소리는 누가 왔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곰팡이 핀 메주덩 어리와 곶감들 드리고 오래된 문갑은 기다란 열쇠를 꽂아야만 열 수 있었다. 우물은 나무 뚜껑으로 덮여 있었고 그 옆에 기다란 물펌프기가 있었다. 물을 퍼올리기 위해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 하던 기억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 물은 그렇게 차가워서 여름에 등물을 하면 몸이 얼어버릴 것만 같은 시원함을 가져다주었다.


할아버지 몰래 경운기를 타기 위해 힘들게 온 힘을 다해 팔을 돌리며 시동을 걸었던 기억도 엊그제 일 같다. 우리를 뛰쳐나간 돼지를 다시 데리고 우리로 데리고 왔던 기억도 옛날이야기였다.


외갓집 동네 잔칫날에는 돼지를 잡았는데 그 분위기가 살벌했다. 창문 밖에서 돼지를 마당에서 잡는 것을 보고 있었다. 돼지 머리통에 큰 고무물통으로 눈과 입을 가리고 큰 부엌칼로 목을 따고 있었다. 돼지는 한 번에 죽지 않았다. 고통스럽게 몇 번의 칼질 끝에 죽었다. 사람들은 큰 고무대야를 가지고 와서 돼지의 여러 부위를 나눠가지고 가고 있었다. 오줌통도 있었지만 그걸로 공놀이를 해보지는 못했다.


여름에는 문풍지에 구멍이 나면 풀을 개서 한지를 바르는 것도 문을 잠그기 위해서 동그란 쇠고리를 걸쇠에 걸었고 추운 겨울 요강이 없었다면 집 밖 화장실을 한참 걸어가야만 했던 기억들 이제는 내 기억 속에만 있구나.


나무 커튼이 달린 텔레비전은 동그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면 만화 영화가 나오고 뉴스가 나왔다. 텔레비전 수상기를 이리저리 만지며 화면 조정을 했던 기억도 이제는 옛날이야기였다 검은색 다이얼이 달린 전화기를 돌리며 친구 집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 다 옛날이야기라니 믿기지 않는다.


집 앞 돼지우리에 음식물 쓰레기를 부어 주면 돼지들은 꿀꿀하며 잘도 먹었고 집안에는 소를 키우는 축사가 있었다. 소여 물을 주기 위해 작두로 볏짚을 썰고 가마솥에 끓이던 할아버지의 모습도 이제 옛날이야기였다.


유치원이라는 곳은 부자들만 가는 곳인 줄 알았다.

유치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코흘리개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몰랐다. 그냥 잘 놀다 오겠지라고 생각했다. 선행학습이 무엇인지 모르고 학교에 갔더니 바보 취급당했다.


학교에 도시락을 싸는 일이 그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끼니때마다 반찬 준비해야 하고 이른 아침부터 밥을 해야 하고 미리 만들어 놓은 반찬을 싸기도 하지만 아침 일찍

필요한 반찬을 아이들보다 먼저 일어나서 만들어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몰랐다.


점심때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아이들은 수돗가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일도 없어졌고 머리카락에 이를 달고 오는 아이들도 많이 줄었고 참빗으로 후두득 떨어지는 이를 잡을 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더군다나 버짐 피는 아이들도 많이 없어졌다. 손톱 밑이 새까매지도록 흙놀이하는 아이들도 없었고 골목 어귀에서 놀이(오징어 땅콩, 말(비석) 맞추기, 오자마, 마리, 제기차기, 칼싸움, 구슬치기, 딱지치기) 하던 아이들도 없어졌다.


똥봉투 들고 학교 가는 일도 없어졌고 곱추가 골목을 어슬렁 거리는 일도 없어졌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필요도 없어졌고 학교 운동회 때 힘들게 기계 체조를 연습할 일도 없어졌다. 교련복을 입고 총술을 배우는 일도 없어졌다.


모든 것을 사회가 하라는 대로 맡겼더니 유치원도 공립이

되고 초등학교도 공립이 되었다. 심지어 학교에서 밥도 주었다.


더 이상 힘든 일이 없을 것만 같았는데 세상은 아직도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아직도 농촌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변하지 않은 세간살이를 그대로 사용하고 계셨고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는 낮은 천장에 흙담이 그대로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아직도 같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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