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 ma vie doit être légend c'est-à-dire lisible et sa lecture donner naissance à quelque émotion nouvelle que je nomme poésie. Je ne rien, q'un prétexte.
(나의 삶은 읽혀질 수 있는 하나의 전설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읽혀지면 시라고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정서가 탄생할 것이다.)
기억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못하는 저 먼 시간에서부터 s는 항상 말이 많은 아이였다고 한다. 그 시간의 s를 키운 것은 삼촌의 낡고 소진된 빈 방이었다. 방 안 가득 들어찬 주인의 흔적들이 돌아오지 않을 주인의 부재를 선명하게 보여주던 곳. 부재가 스멀스멀 벽지를, 천장을, 장판을 서서히 갉아먹어 들어가던 외로운 공간. 그 시절 나에게 글자들은 헛헛한 시간의 허기를 채워주는 군것질거리였었나 보다. 그 골방에서 s는 장난감 대신 민주주의니, 자유니, 혁명이니 하는 수수께끼 같은 문자들을 그림책의 그림처럼 보고 외우며 말이 많은 아이로 자랐던 듯하다. s는 특히 책 어딘가에 누군가가 끼워놓았던 보라색 책받침에 적힌 윤동주의 서시를 그렇게도 잘 외웠다. (그래서 그 동네 어르신들은 지금도 s가 천재라고 굳게 믿고 계시는데 슬프게도 s는 자신이 그 정반대의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한다.) s의 소소한 이 놀이거리는 s의 부모에게는 버거운 날들을 버티게 하는 큰 위로가 되었다. 주말이면 차 창밖으로 흔들거리던 s의 작은 손이 망막을 찔러 그토록 눈이 시렸다던 s의 아빠. 그 당시 아빠의 주사는 늦은 밤 잠든 s를 깨워 공중전화의 수화기 너머로 시 낭독을 듣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잠이 덜 가신 입으로 수화기에 대고 중얼중얼 "죽는 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하던 그 모습이 그렇게도 웃기고 신기했다며, 당시 중3이었던 둘째 삼촌은 마흔이 넘은 지금도 그 모습을 기억한다.
"거봐, 거짓말 아니라니까. 우리 딸 이제 겨우 세 살인데 윤동주시를 외워. 이야, 근데 임마, 너는 쪼끄만 게 무슨 잎 새에 이는 바람이 괴로운걸 알어, 허허"
s는 그 목소리가 귓가에 떠오를 때마다 자신에게 꽤나 심오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의 말이 그토록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앞으로의 인생까지 모두 통 털어 과연 몇 번이나 될까?’ 20년도 넘게 지난 지금도 그 기억의 부서진 조각들을 꺼낼 때면, 엄마의 눈가에 반짝이며 어리는 그 파편들이 주름 사이사이를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로 메우곤 한다. 그렇게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은 s에겐 행복이었고 기쁨이었다. 말이 무지하게 많던 어린이는 자라면서 무언가를 말하는 것보단 쓰는 것이 더 적성에 더 맞다 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 종이위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27살이 되었다.
s는 왜 끊임없이 종이 위에 무언가를 떠들어대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나, 왜 글을 쓰는가. 굳이 합당한 이유를 찾자면 두 가지 정도로 추릴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앞서 말한 것처럼 글이 s의 오래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어디까지 표현해볼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 즉, 언어가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하는 것이며 이는 동시에 언어 속에서 태어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s는 언젠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말했던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에 관한 에피소드를 기억한다. 본인은 꽤 오랜 시간동안 시인을 꿈꿔왔었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던 은밀한 고백. 들은 바로는 그랬다. 20살, 처음으로 대면한 낯선 도시에서 맞이한 봄, 캠퍼스를 같이 내려가던 그 순간에 봤던 첫사랑의 얼굴을 그 어떤 말로도 집어낼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나온 거리가 무색하게 생생한 그 얼굴을 단어들의 짜임 위로 건져 올려 보면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고. 어떻게 그물을 짜도 단 한 번도 그때 그 얼굴을 건져 올리지 못해서 시인이 되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
언어는 지시하는 대상, 시니피앙에 닿지 못한 채 끊임없이 그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언어로 삶을 포착한다는 것, 즉, 글을 통한 재현의 본질은 왜곡이고 은폐이자 변질이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인생의 문을 두드리는 그런 획기적인 순간들, 어떻게든 그 두드림을 간직하고자 그 어떤 미사여구와 단어들로 쥐려고 발버둥 쳐도 결국엔 그 손가락 틈새 사이로 어떻게든 흘러 나가버리고야 만다. 우리는 감당하기 벅찬 무엇인가를 마주 하게 되는 순간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는 말로 그것들을 표현하지 않던가. 이게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슬픈 운명을 보여준다. 진정으로 쓰고자 소망했던 것은 절대 쓸 수 없다는 역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s는 비장한 마음으로 결말을 알고 있는 이 운명에 도전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토록 존경하는 스승조차 해내지 못했던, 가늠조차 어려운 그 거대한 장벽에. 거창하게 말하자면 제신의 소굴을 향해가는 시지프의 심정으로.
s는 항상 고민한다. 사랑하는 것들은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까. 예를 들자면, 여름의 입구에 맴도는 초저녁의 냄새, 여명의 하늘색, 일요일 오전의 평온함, 기나긴 하루의 고요를 깨는 수다, 자신도 모르는 새 웃음 짓게 만드는 모든 것들, 빛이 부서져 반짝거리며 반사되는 것들을 보는 기분.
그렇다면 누군가를 슬프게 만드는 것들은 또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하는 걸까. 신촌으로 가는 버스 창밖에서 엄마가 사라지는 순간, 정당치 않은 비극을 떠안은 사람들, 멜로드라마, 더 이상 사랑이 남지 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연인의 눈, 사랑해서 관계를 끝내야한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순간, 돌아올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의 무게. 이런 것들을 위해 종이 위를 헤매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또 그 방랑이 즐거웠던 때가 한 때 있었다. 그러나 학점, 고시, 불합격, 취업과 같이 현실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더 중요해지는 시간이 길 위로 몰아닥쳤다. 그러면서 s는 대학을 졸업했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만나지 않게 되는 일들이 점점 잦아졌으며, 테두리 밖을 꿈을 꾸는 것이 더 이상은 가치 없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 순간들을 더 자주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게 s의 인생에는 무수하게 많은 크고 작은 구멍들이 생겨났고 글을 쓰지 않는 날들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자기가 있어야할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s는 무엇이 왜 아픈지를 몰라 아픈 시간들이 s에게 찾아왔다.
책의 겉표지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사람들처럼 무언가 자랑스럽게 꺼낼만한 그런 고상한 계기가 있었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s에게는 다시 글을 쓰게 된 번듯한 이유가 없었다. 물론 길거리를 지나치다가, 혹은 책장을 훑어보다가 한 때 가슴을 뛰게 했던 그런 시인들의 구절들을 다시 발견하고 한 두 구절을 손닿는 가까운 어딘가에 묻어두고 언젠가 꺼내보리라 다짐을 하는 일들이 종종 있긴 했지만 그 구절들이 다시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진 못했다. 학교를 떠나야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것이 무엇인지를 찾지 못했던 s는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학업에 대한 열정이 강해서라기보단 학교를 떠나 ‘나’를 단 한 번도 몰랐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자기소개서에 익숙하지 않은 거짓말을 미처 지어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익숙하고 안전하리라고 자신했던 그 길의 한가운데에 놓인 거대한 장벽과 장벽 앞에서 마주할 익숙한 낯섦과 외로움들을 그 당시의 s는 몰랐을 것이다. 익숙하고 사랑했던 것들을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부수고 재단하던 s는 자신이 만들고 있는 구멍이 s는 고개를 돌려보려 여태 노력했던 그 구멍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 구멍을 정면으로 마주한 자신의 옆에서 공백을 함께 애도해주는 것들이 자신을 괴롭게 했던 과거의 모든 것들이라는 것 또한. s는 그 애도에 감사를 표하고자 하는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그 모든 것들, 먼 길을 돌아 위로와 추억의 얼굴을 보여주는 ‘나’의 경험들. 부모도, 출신지도 모르는 채 태어나 이야기가 되지 못해 방황하다 죽어간 내 과거의 조각들이 이제는 이야기가 되기를, 그들에게 번듯한 묘비를 하나씩 세워주고자 하는 것, 그게 s가 다시 글을 쓰고 싶어 하게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