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내가 느낀 K방역의 진실
"저는 코로나 환자랍니다"
네이버 뉴스나 카카오톡 일일 확진자 란에 뜨는 '일일 위중증 환자 최고치 경신', '일 확진자 7000명...'은 한번도 나와 상관있던 적이 없었다. 의료현장의 부담이 가중되고 국내 확진자 수가 최고치를 경신하는 그 때에도 이 커다란 여의도 XX건물에서 확진자는 한 달에 한 명이 나올까말까했다. 하지만 카카오톡으로 전송된 "박민지님은 PCR 판정 결과 양성(Positive)입니다."는 내가 이 팬데믹 속 세계시민의 일원으로서 피해갈 수 없는 조류에 휩쓸리고 말았다는 것을 선언하는 말과도 같이 느껴졌다.
처음엔 황당했다. 머릿 속에는 '왜 내가?'라는 질문 밖에 들지 않았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적도 없는 내가? 클럽이나 홀덤펍 근처에는 얼씬도 않던 내가? 집순이인 내가? 하지만 황당함도 잠시, 일단 내게 닥친 이 감당하기 벅찬 사태를 공유해야만 하는 사람들과 공유해야 했다.
처음 전화를 건 것은 회사의 부서장이었다. 부장님, 제가 글쎄, 코로나 양성이래요. 수화기 너머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장님은 이번만큼은 조금 당황한 듯하였다. 그럼 어떻게 해야해? 부장님, 저도 모르겠어요. 일단 집에만 있으래요. 일단 알겠어. 커뮤니케이션은 1분이 안되는 시간안에 신속하게 되었고, 이후 회사에서 밟아야 하는 절차는 재빠른 부장님 덕분에 모두 해결되었다.
회사에 알린 다음에는, 1주일 동안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빠르고 정확하게 알리는 것이었다. 일주일 전에 잠깐 참석했던 6인 저녁모임 멤버와 단톡방을 파서 "미안하지만 내가 코로나야"라는 말을 전해야만 했다. 야속하지만 나는 사실 내가 코로나에 걸려야만 했다면, 이 모임의 누군가 또는 이 모임의 장소에서 옮았다고 확신했다. 이 모임 말고 모임이란 모임을 나간 적이 없었기 떄문이다. 내 이야기로 인해 그 날 회사에 연차를 내고 PCR검사를 받으러 간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제/그제 회사에서 시켜서 받았는데 나 음성이었어.'라는 말을 전해왔다. 결론적으로 그 모임에서 코로나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은 나 뿐이었다.
"선생님은 재택치료 대상자입니다."
이후 나는 국가가 이 사태를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게 해결해주리라고 믿었다. 어쨌든 대한민국이라는 선진국에 살고 있고, 언론에서 연일 보도되고 있는 중차대한 사태이고, 각계각층에서 모두 주목하고 있는 사태이니까.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코로나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0시였고, "집에 머무르세요"라는 이야기만 듣고 6시간 동안 나는 책상에 앉아만 있어야 했다. 6시간 이후 02로 시작하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는, 약 1분동안 "위중증 환자는 아니시니 재택치료 대상입니다. 이후 전화를 기다리세요."라는 말만 하고 수화기를 끊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다라고?
나는 이렇게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구글과 네이버를 총동원하여 "확진된 다음 어떻게 되는지"를 찾아 헤맸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그런 것이 안내되어 있는 책자나 팜플렛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작년부터 언론에서 쉴새 없이 떠들어대고 있는, 의회에서 쉴 새 없이 떠들어대고 있는, 정부에서 매일 발표하고 있는 이 사태에 대해서 '확진 이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제대로 안내하고 있는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여차저차에서 들어간 "서울특별시 코로나19https://www.seoul.go.kr/coronaV/coronaStatus.do" 사이트에서는 일목요연하게 백신 및 예방접종, 발생동향과 같은 것들에 대해서 안내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힘든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위하여 정부가 상생지원금을 제공하고 있다는 안내라던가, 오늘 서울시에서 환자가 몇명 발생했다던가, 코로나 백신에 대한 루머들 같은 것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정보 중 여기서도 '확진 되고 나서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정리해놓은 글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다음 날이 되어서도 나는 멍하니 소파에 앉아 넷플릭스만을 보고 있어야할 뿐이었다. 오전 쯤되면 전화가 올 줄 알았던 역학조사관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사태가 너무도 이상했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것이 언론에서 호들갑떨고 있는 것처럼 '위기상황이지만 통제 하에 있는' 상태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압박은 심해지지만 상황은 통제 하에 있는 줄 알았고, 코로나 환자수는 연일 증가세에 놓여 있지만 통제하에 놓여있는 상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아니라는 것은 명백했다. 나는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무언가 해야겠다는 시민의식을 발휘하여, 역학조사관과 연락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보건소에 오전에 하루종일 전화했으나 그들은 절대 전화를 받지 않았고, 오후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오기가 생겨서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다산 콜센터에 전화하였으나, 그들도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는 2주일간 카드사용내역을 인쇄하여 방문했던 음식점이나 카페, 헬스장 등에 일일이 전화하여 '내가 방문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과정에서도 이상한 점을 느꼈다. "보건소에서 전화가 안왔으니까 딱히 저희가 취할 조치는 없네요"라는 답변만을 들을 뿐이었다. 추가적인 방역이나, 그 시간대에 방문했던 사람들에게ㅡ그러니까 우리가 매일 미칠듯이 찍어대는 그 QR코드를 통해 어딘가 입력되어있을 정보를 통해ㅡ 안내가 갈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나는 코로나가 걸리고 이틀이 지나서야 역학조사관이 내게 전화를 하였고, 요구하는 정보를 알렸고, 수동감시대상자 등에게 연락이 갈거라는 안내를 받았다. 이 날이 되어서야 "확진자 키트"라는 것도 받아볼 수 있게 되었다.(그 안에는 전문의약품이 아닌 일반종합감기약 두 통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K-방역과 K-치료라는 것의 민낯을 조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건 아무 문제 없이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너무 많지만 더 큰 문제(위중증환자 대처, 대응인력부족 등) 때문에 모조리 방치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