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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허정 Oct 14. 2019

마음이 세모인 날엔 치킨 한 마리

그런 날이 있다. 괜스레 힘이 빠지고, 누군가 무심코 건넨 한 마디가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맴도는 날.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에 왠지 모르게 어깨가 처지는 날. 그런 날은 치킨 한 마리를 포장했다.




사람이 좋아 시작한 일인데 매일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상처를 받는 날이 많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지나가는 말로 건네는 한 마디조차도 내게는 상처가 될 때가 있었다. 그런 날은 퇴근길에 혼자 음악을 크게 틀고 드라이브도 해보고, 근처 바닷가에 차를 세우고 쉴 새 없이 치는 파도를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간 날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 나에게 주는 위로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신 퇴근길에 치킨 한 마리를 사서 집에 들어간다. 부엌에서 일을 하던 엄마도, 안방에서 티브이를 보던 아빠도 거실에 모여 함께 치킨을 먹는다. 둘러앉아 치킨 한 마리를 함께 먹으며,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한다. 늘 똑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도 우리 마음의 모양은 가지각색이었다. 동그란 원처럼 무난하게 흘러간 날도, 뾰족한 세모에 찔려 이리저리 상처를 받은 날도 다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마음이 세모였던 날에 치킨을 샀다. 힘들었던 하루를 들키지 않으려 오히려 더 신나게 떠들면서 맛있게 치킨을 먹었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인데, 엄마 아빠는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직장에서 안 좋았던 날이면 치킨과 맥주를 사서 들어간다는 것을. 무슨 일 있었냐고 물으면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은 그런 날들에, 엄마 아빠는 말 대신 마음으로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그 날들이 쌓이다 보니 문득 아빠의 퇴근길, 아빠의 한 손에 들려 있던 치킨 한 마리가 생각났다. 어릴 때는 아빠가 사 오는 그 치킨이 마냥 반갑기만 했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아빠에게도 그 날은 마음이 세모인 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맛있게 먹는 아내와 딸들을 보며 그저 잔잔한 위로를 느끼셨으리라. 그 힘으로 세모인 마음의 뾰족한 끝을 동그라미로 수없이 고쳐 가는, 땀과 눈물로 가득한 시간을 견디신 것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오늘도 수고하셨다며 아빠에게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따라드리고 싶다.




그 시절의 아빠처럼, 지금의 나에게도 세모인 마음을 동그라미로 바꿔가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그 시간들에는 늘 내 얘기를 들어주는 가족들이 있었고, 그 자리를 이제는 신랑도 조금씩 채워주고 있다.


퇴근길의 치킨 한 마리가 내게 주는 것은, 바로 그런 위로가 아닐까. 그 위로 덕분에 나는 다시 동그라미가 된 마음을 안고, 새로운 내일을 시작할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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